Kim-Jong-Un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 ]“대회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가 무술년 첫 날 한반도와 세계를 뒤흔들었다. 아울러 40일도 남지 않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분위기를 한순간에 바꿨다. 그가 새해 첫 연설에서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원한 것은 물론 대표단 파견까지 언급했기 때문이다. 평창을 향한 그의 긍정적인 메시지는 ‘북핵 변수’에 노심초사하던 정부와 평창올림픽조직위에 좋은 소식이 됐다. 정부는 “환영한다”고 했다. 이희범 조직위원장은 “새해 선물”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북한 참가와 ▲북핵 변수 일축 ▲성공 개최라는 3대 효과를 평창 올림픽에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1일 조선중앙TV를 통해 방송된 2018년 신년사 육성 연설에서 “새해는 우리 인민이 공화국 창건 70돌을 대경사로 기념하게 되고, 남조선에서는 겨울철 올림픽경기 대회가 열리는 것으로 하여 북과 남에 다 같이 의의있는 해”라고 말한 뒤 “그것(평창 올림픽)은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며 우리는 대회가 성과적으로 개최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대표단 파견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북·남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이후에도 새해엔 남북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그의 신년사는 북한은 물론 남한까지 뒤흔들었다. 평창 올림픽의 최대 위협으로 존재하던 북한 관련 변수 여러 개가 한꺼번에 해결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우선 그의 발언으로 북한은 묵묵부답이던 평창 올림픽에 선수단을 보낼 것이 확실시된다. 북한은 1964년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000m에서 한필화가 은메달을 획득, 한국보다 무려 28년이나 먼저 동계올림픽 메달을 따냈으나 이후엔 쇠락을 거듭했다.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에서 황옥실이 따낸 동메달이 한필화 이후 유일한 입상일 만큼 동계 종목이 취약하다. 4년 전 소치 올림픽 땐 출전 자격을 얻은 종목이 없어 아예 불참했다. 평창 올림픽을 앞두곤 달랐다. 피겨 페어의 렴대옥-김주식 조가 지난해 9월 독일에서 열린 올림픽 예선에서 출전권을 따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10월 말까지 국제빙상경기연맹(ISU)에 피겨 올림픽 참가 의사 표명을 하지 않았고, 출전권은 차순위인 일본 조에 넘어갔다. 평창행과 관련해 사실상 김정은 위원장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됐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북한이 개막 직전까지 참가 의사를 밝힐 경우 렴대옥-김주식 조는 물론 쇼트트랙과 크로스컨트리 등에도 특별 출전권(와일드카드)을 부여하겠다며 문을 계속 열어놓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직위는 북한의 출전이 평창 올림픽 성공 개최와 남북 화해 모색을 위한 좋은 기회로 보고 다양한 방식을 통해 북한 선수단 파견을 권했다. 김 위원장이 마침내 화답한 셈이 됐다. 북한은 10명 안팎의 선수들을 꾸릴 전망이다. 일부에선 예선을 거쳐 참가국(8개국)이 이미 확정됐음에도 단체 종목인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의 추가 출전 가능성까지 내다보고 있다.

평창 올림픽을 둘러싼 북핵 위협이 해소되는 점 역시 반갑다. 북한은 지난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수차례 쏘고, 핵실험까지 하는 등 미국과 정면대결을 불사했다. 이에 유럽을 중심으로 평창 올림픽 보이콧 움직임이 있었다. 북핵 위협이 실존하기 때문에 선수단 보호 차원에서라도 한국에 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독일 등 동계 스포츠 강국에서 이런 얘기가 터져나왔다. 지난달엔 니키 헤일리 유엔 미국대사까지 비슷한 발언을 해서 파문을 몰고 왔다. 우리 정부는 이 때마다 진화하느라 진땀을 쏟았다. 북핵 이슈는 북한 선수단의 참가 여부를 떠나 평창 올림픽 성공을 해치는 최대 요소로 독버섯 처럼 커지고 있었다. 김 위원장이 “민족의 위상을 과시하는 좋은 계기”라며 평창 올림픽을 높게 평가하고 “대회의 성과적 개최를 바란다”고 공개적으로 밝힘에 따라 북한은 최소한 평창 올림픽 기간 중엔 어떤 군사적 도발도 없을 것임을 내비쳤다. 올림픽 출전을 조금이라도 망설이던 국가들은 평창행을 예정대로 추진할 전망이다.

김 위원장 발언은 평창 올림픽의 전체적인 성공 개최과도 궤를 맞물린다. 선수단이 한국행을 주저하는데 외국 관광객이 올 리가 없다. 사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출전 거부, 러시아 선수단의 약물 스캔들 및 평창 올림픽 개인 자격 참가 등 이번 대회를 앞두고 여러 악재가 줄을 이었다. 국내에서도 바가지 숙박 요금과 경기장 사후 활용 논란 등으로 평창 올림픽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줄어들지 않았다. 이를 극복할 최고의 방법이 북한 선수단의 참가와 성공 개최 협력이었다. 북핵 위협 제거는 물론 평창 올림픽이 남·북 화해의 무대로 세계사에 기록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신년사는 명분과 흥행, 안전 등 여러 측면에서 평창 올림픽 성공 개최를 이끌 기폭제가 됐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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