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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주상기자] 옛날 옛적 에우리디케라는 숲의 님프가 살았지. 너무나 아름다워 고운 발걸음으로 걸으면 그 자리에 꽃이 피어날 정도였어. 모든 남자들이 반했음은 물론이고. 음악의 달인 오르페우스도 마찬가지였어. 오르페우스는 ‘태양의 신’이자 ‘음악의 신’인 아폴론과 예술을 주관하는 뮤즈중의 하나인 칼리오페의 아들이었어. 유전적인 영향이 컸을까? 오르페우스는 타고난 음악가였지. 오르페우스는 항상 아버지가 선물한 황금리라를 들고 다녔는데, 그가 연주하면 모든 식물들과 동물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귀 기울여 듣곤 했어. 온 세상을 평화롭게 했던 거야.
오르페우스도 에우리디케를 보고 반했어. 아름다운 멜로디로 그녀를 유혹했음은 물론이지. 게다가 오르페우스는 아르고호 원정대의 일원으로 참가했을 정도로 용맹했지. 잘생긴 얼굴에 황홀한 음율의 소유자, 그리고 용감무쌍함까지. 요즘말로 ‘엄친아’였어. 두 사람은 서로 반했고 항상 붙어 다녔어. 세상만물이 부러워 할 정도로. 당연히 둘은 결혼했지.
결혼을 했지만 에우리디케를 사모하는 남자들이 너무 많았어. 어느 날 에우리디케는 숲을 거닐다 반신반인인 ‘양봉의 명수’ 아리스타이오스의 눈에 뜨인 거야. 그저 하던 벌이나 쫓을 일이지, 에우리디케를 쫓을 줄이야. 엄청난 비극의 시작이었어. 그 녀석은 한눈에 반해 에우리디케를 뒤쫓았고, 에우리디케는 놀라 도망을 쳤지. 그런데 도망치다 에우리디케가 발을 잘못 디뎌 독사에게 물린 거야. 에우리디케는 숨도 한번 못 쉬고 이내 죽어버렸어.
오르페우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왔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어. 죽은 아내를 안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지. 그 이후 세상은 겨울밖에 없었어. 오르페우스가 울리는 리라의 가락이 너무 슬퍼 온 세상은 얼어붙었고, 꽃들은 죄다 시들어 버렸거든. 에우리디케를 잊지 못했던 오르페우스는 명부의 세계로 내려가 죽은 아내를 데려오겠다고 결심했어. 한번 명부의 세계에 들어가면 빠져 나오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걸은 거야.
사랑의 힘이란!
명부의 세계를 지나면서 수많은 괴물들과 망령들을 마주쳤지만 모두 오르페우스의 아름다운 리라소리에 길을 내줬지. 이윽고 마지막 관문인 암흑의 강이자 지옥의 강으로 불리는 스틱스(Styx)강을 건너게 됐어. 스틱스 강을 건너려면 강의 주인인 늙은 뱃사공 카론의 허락이 있어야 됐는데, 이번에도 오르페우스는 리라를 들었지. 침묵의 카론도 아름다운 선율과 오르페우스의 호소에 강을 내줬어. 드디어 명부의 끝자락에 도착하며 지하세계의 절대신 하데스와 만나게 됐지. 하데스 옆에는 그의 아름다운 부인인 페르세포네가 있었어. 페르세포네는 원래 지상의 여인이었는데 하데스가 미모에 반해 명부로 납치해온 여인이었어.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는 형제지간이자 지상, 바다, 명부를 관장하는 3대신으로 어느 신보다도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 오르페우스가 눈물로 호소하며 아내를 돌려달라고 애원했지만 하데스는 시큰둥했어. 아까웠으니까. 하지만 이내 오르페우스의 리라소리에 ‘운명의 신’인 네메시스 등 명부의 여러 신들이 감명을 받았고 페르세포네도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어. 이쯤 되니 하데스도 별수 없었던 거야. 저승에서 끌려나온 에우리디케는 보일 듯 말듯 정령이었어. 명부의 세계였기에 육체는 없었지. 할 수 없이 에우리디케를 내줘야 하는 하데스는 오르페우스에게 한 가지 조건을 걸었어. ‘지상에 이를 때 까지 뒤 따라 오는 에우리디케를 봐서는 안 된다. 한번 이라도 보면 에우리디케는 다시 명부의 세계로 오게 될 것’이라고 협박(?)하면서 말이야.
어쨌든 오르페우스는 너무 기뻤어. 아내와 다시 합쳐질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드디어 지상으로 올라가는 긴 여정이 시작됐어. 앞쪽의 오르페우스, 뒤쪽의 에우리디케. 아무런 말없이 긴 여행이 시작됐지. 오르페우스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데스의 말을 지켰지만 너무 힘들었어. 뒤에서 아무 소리도 안 났으니까. 그래도 묵묵히 앞으로, 지상으로 나아갔어. 가끔 비파소리를 내거나 아내의 이름을 외치며 힘을 내곤 했지. 며칠이 지났을까. 침묵과 암흑의 기나긴 행렬(두 사람 뿐이었지만)도 멀리서 비치는 지상의 빛에 다다랐어. 드디어 지상으로 열린 문이 보이기 시작했고 오르페우스의 심장은 거칠게 박동을 띄기 시작했어. 그런데, 이제 지상의 문 아니 행복의 문이 보일 즈음 오르페우스는 뒤를 돌아 다 본 것이었어. “왜 이렇게 조용하지?”, “정말 내 뒤에 아내가 있을까?”, “하데스가 나한테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닐까?”, “다시는 명부의 세계로 갈 수가 없는데 아내가 내 뒤에 없다면?” 등등 수많은 생각에 그만 ‘의심’이라는 덫에 걸려들고 만거야.
하지만 오르페우스의 눈에 보인 건 손을 내밀며 잡아 달라고 애원하는 에우리디케의 눈물뿐이었어. 모습을 숨긴 채 두 사람의 행렬을 도왔던 ‘전령의 신’ 헤르메스는 에우리디케를 잡아채며 명부의 세계로 쏜살 같이 사라져 버렸지. 1초만 더 견뎠더라면 지상에서 다시 재회해 잃어버린 사랑을 영원히 이을 수 있었을 텐데. 한 순간의 의심으로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어. 오르페우스는 그날부터 식음을 전폐한 채 살게 됐어. 괴로운 날들의 시작이었지. 하지만 이러한 모습을 반기는 사람들도 있었어. 바로 오르페우스가 태어난 트라키아 지방의 여자들로 전부터 오르페우스를 흠모했던 팬들이었지. 하지만 오르페우스는 눈길 하나 안 줬어. 오직 에우리디케 생각뿐이어서 일체 다른 여자들하고 어울리지 않고 남자들하고만 어울렸지.(이런 것 때문에 오르페우스를 동성애의 창시자로 보기도 해~)
트라키아 여자들의 오르페우스에 대한 연정은 증오로 바뀌었어. 그녀들은 디오니소스 축제 때 오르페우스를 보자 자신들을 경멸했다며 오르페우스를 죽여 버렸던 거야. 그의 시체는 갈가리 찢겨져 강물에 흐르다가 그의 머리와 리라만 레스보스 섬에 닿았어. 섬의 여자들이 가엽게 여겨 무덤을 만들어 줬지(레스보스 섬은 여성동성애를 뜻하는 ‘레즈비언’의 기원이야. 오르페우스의 죽음이후 섬에서 동성애가 유행했나봐~).
그리스 신화에서 이토록 비극적인 장면은 없을 거야. 지상과 명부를 넘나드는 사랑. 불멸이어서는 안 되는 인간에게 주어진 ‘환생’이라는 단 한 번의 행운. 그 행운을 의심으로 저버린 어리석음. 죽음으로 모든 것이 종결되는 비극적인 최후. 두 사람의 애절한 이야기에 감동받은 제우스는 황금리라를 별자리로 만들어 줘 많은 사람들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잊지 않도록 해줬지. 황금리라 별자리는 동양에서는 ‘견우와 직녀’ 별자리에 해당된대(뭔가 통하는 느낌인걸~).
일설에는 오르페우스가 죽은 후 저승세계에서 에우리디케와 재회했다는 거야. 당연히 둘은 행복하게 살았고. 저승에서 오르페우스는 자주 고개를 돌려 사랑하는 에우리디케를 쳐다봤대. 또 사라지지 않을까 두려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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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이야기는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사랑의 비극을 전해주고 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너무 유명해 기원전에 만들어진 고대 그리스의 도자기에 삽화로 그려질 정도였다. 후대에는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 글룩이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라는 걸작 오페라를 만들었고(지금도 자주 무대에 올려 진다), 1959년에는 브라질에서 ‘흑인 올페’라는 현대적 버전의 영화로 만들어져 그해 깐느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다음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는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아르고호 원정대 - 아르고호 원정대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 이아손이 결성한 원정대로 오르페우스를 비롯해서 헤라클레스, 펠레우스, 아탈란테 등 신화 속 유명인물들이 대거 참여했다. 내용은 이아손이 아버지의 왕권을 되찾기 위해 황금양털을 찾아 떠난다는 이야기다. 그리스 로마 시대는 물론 후대에도 유럽의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을 불러일으킨 소재로 오르페우스는 원정대에서도 황금리라의 위력을 마음껏 사용했다. 특히 아름다운 나체와 목소리로 선원들을 홀렸던 바다의 님프 ‘세이렌’을 리라의 선율로 잠재운 것으로 유명하다.
▶ 찰스 리켓(Charles Ricketts 1866-1931) - 영국의 화가, 일러스트레이터, 타이포그라퍼, 무대미술가, 의상디자이너다. 프랑스인 어머니와 영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스위스 제네바에서 출생했다. 1882년부터 미술수업을 받았다. 리켓은 영국의 유명작가인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 ‘미스터 W.H.의 초상’에 삽화를 그려 넣은 것으로 유명세를 탔다. 1900년대 이전까지 삽화와 무대미술에 집중했던 리켓은 이후 미술과 조각에 전념했다. 그의 걸작이라고 일컬어지는 ‘돈 후안의 죽음’, ‘몬테주마’ 등이 이때 제작됐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도 1922년 그의 최절정기 때 만들어 졌다. 1929년에는 영국 왕립아카데미 정회원으로 선출되는 영예를 안았다. rainbow@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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