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SC03953 (2)

[스포츠서울 김효원기자]배우 송일국의 연기에 물이 올랐다. 이토록 능청스러울 수가 없다.

연극 ‘대학살의 신’이 공연되고 있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은 배우들이 뿜어내는 열기로 뜨겁다. 이 연극은 남경주, 최정원, 이지하, 송일국 네 명의 배우들이 벌이는 교양있는 소동을 다룬다. 대 선배들과 한 무대에서 연기하며 조금도 눌리지 않고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는 송일국을 만났다.

송일국은 이 공연을 시작하기 전 스트레스가 컸다고 고백했다. 코미디 연극인데 대본을 읽었을 때는 전혀 코미디 같지가 않았고, 등퇴장이 거의없이 시종일관 네명의 배우들이 핑퐁처럼 대사를 주고 받아야 한다. 스트레스는 첫공을 올리고 난 뒤 비로소 사라졌다.

“첫공을 올리고 나서야 스트레스가 풀렸다. 이 대사가 과연 웃길까 싶었는데 관객들이 의외의 곳에서 웃어주더라. 좋은 작품, 좋은 연출, 좋은 선배들을 만나 공연하게 된 것이 행운이다.”

동명 프랑스 연극을 번안한 블랙코미디 ‘대학살의 신’은 알렝(남경주 분)-아네트(최정원 분), 베로니끄(이지하 분)-미셀(송일국 분) 두 쌍의 부부가 열한 살 아들의 폭행 문제로 만나 설전을 벌이는 과정을 담았다.

뮤지컬에서 오랜 경륜을 자랑하는 남경주 최정원, 연극 무대의 베테랑 이지하 등 선배들에게 많이 의지했다는 송일국은 “특히 상대역인 이지하 선배에게 많이 의지했다. 이지하 선배가 첫공을 올린 뒤 뒷풀이에서 술 한잔을 마시고는 ‘처음엔 답이 안나왔는데 이제는 봐줄만해졌다’고 해주셨다. 이 공연의 최대 수혜자가 나다”라고 말했다.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는데다 관객이 바로 코 앞에서 보이는 소극장 무대여서 긴장감이 컸다. 무조건 연습이 답이었다. 첫 대본 리딩 때부터 연습 과정을 모두 동영상으로 찍어 집에 가서 되돌려보면서 연습했다. 개막 후에는 매일의 공연을 촬영해 집에서 모니터링했다. 그런 노력이 결과로 이어졌다.

“첫공 전에는 관객들을 만나는게 두려웠다. 소극장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전에 KB하늘극장 무대에서 관객과 눈 마주친뒤 대사를 잊은 적이 있다. 그 트라우마가 있어 소극장 공연이 두려웠는데 이 연극으로 두려움을 떨쳤다. 내 안에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게 장난기가 나온다. 이제는 관객들을 빨리 만나고 싶을 정도다.”

송일국이 열연하는 미셀 역은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소시민이자 마초맨이다. 어눌하고 선량하지만 욱하는 성격도 있다. 송일국은 미셀과 놀라운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능청맞은 연기로 관객들을 폭소하게 만든다.

관객은 물론 가족, 지인들로 부터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대학살의신_송일국_미셸[제공-신시컴퍼니] (2)

“아내가 원래 제 공연에 대해 점수가 짠데 이번에는 무려 85점을 줬다. 여동생은 ‘50점 예상하고 왔는데 80점을 주겠다’고 하고 갔다. 어머니는 ‘얘 걱정많이 했는데 걱정 한거 보다 낫다’고 하셨다. 박정자 선생님도 ‘일국이가 미셀이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잘하더라. 부족한 게 있지만 미셀 캐릭터와 잘 맞아 나쁘지 않다’고 하셨다.”

그동안 스스로 늘 부족한 배우라고 생각해왔다는 송일국은 이 연극으로 이제야 비로소 배우라고 말할 자신이 생겼다고 밝혔다.

“그동안 틀에 박힌 연기만 한 것 같다. 이번 ‘대학살의 신’ 연극을 통해 풀어지는 연기에 처음 도전했고 자신감이 생겼다. 앞으로 어떤 연기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공연장에 있는 게 너무 행복해서 1등으로 나오곤 한다. 배우로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데 연극만큼 좋은 게 없다.”

연극 ‘대학살의 신’은 오는 23일까지 계속된다.

eggroll@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