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김도형기자] 인생은 흔히 롤러코스터에 비유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기쁜 일이 있으면 슬픈 일이 있듯. 프로야구계 레전드 중에서도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산 선수가 있다. 바로 '불사조' 박철순(60)이다.


22연승을 비롯해, 80경기 밖에 치르지 않았던 1982년 프로야구 원년 시즌에 150km의 강속구를 뿌리며 24승을 쌓은 영원한 에이스 박철순. 마운드에서 내려온지도 어느덧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의 얼굴엔 이제 주름이 가득했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20대 청춘처럼 여전히 뜨거웠다.


지난 주말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에서 박철순을 만났다. "이른 아침에 이곳까지 어쩐 일이냐"며 인사를 건넨 그와 한 시간 넘게 야구를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의 말속에는 야구에 대한 철학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 "협력하는 법과 예절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지도한다".


1996년 10월 현역 은퇴를 선언한 박철순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야구와 관련된 일을 하며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있었다. 현재는 일구회와 서울시가 함께 하는 어린이 야구교실 총감독을 맡고 있는데, 이 일도 어느덧 햇수로 4년째 이어오고 있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저 흐뭇하다는 박철순은 "총감독으로서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야구를 통해 요즘 아이들이 잘 배우지 못하는, 협력하는 법과 예절의 소중함을 깨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철순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보람 그 이상을 느낀다.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대견스럽다. 처음에는 대답도 안 하고 인사도 잘 하지 않던 아이들이 조금씩 변하는 걸 보면 뿌듯하다"며 운동장의 선수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편으론 재능있는 친구들이 야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러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전했다.


박철순은 수 없이 '예절'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왜 그렇게 예절을 강조하시냐'는 질문에 그는 "아무리 야구를 잘해도 예절이 없다면 버릇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승엽(삼성 라이온즈) 같은 선수들을 보면 겸손하면서도 야구를 잘하지 않느냐. 그러니 더 존경받는 거다. 야구만 잘하면 기록은 남겠지만 사람은 기억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 지독한 재활과 현역 코치 복귀 그리고 니퍼트


크고 작은 부상 탓에 KBO리그 역사에 족적을 남긴 선동열, 고 최동원, 이만수, 김봉연, 양준혁, 이종범처럼 빼어난 기록을 세우진 못했으나 박철순은 허리, 아킬레스건 부상 등에도 끊임 없는 재활을 통해 마운드에 복귀, '불사조'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래서 그의 열정과 끈기를 현역 선수들에게 쏟았으면 하는 팬들의 바람도 다수 존재한다.


특히 선수 시절 함께 뛰었던 김경문(NC 다이노스), 김용희(SK 와이번스) 등이 감독으로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고, 후배인 김태형도 두산 베어스의 지휘봉을 잡고 한국시리즈 2연속 우승을 노리고 있어 더욱 그렇다.


이에 대해 그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지독한 재활을 거치면서 단맛 쓴맛을 모두 봤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지도자라면 포용력이 있어야 하는데, 열심히 하지 않는 선수들을 보면 '왜 열심히 안 하지'라는 생각부터 든다. 그런 걸 놓고 보면 내 역량이 부족한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박철순은 동양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팀(밀워키 브루어스)과 정식 계약한 선수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여론은 '무관심' 그 자체였지만 말이다.


쓸쓸히 미국 땅을 밟았다는 그는 "당시 선수들이 '일본인이냐'고 묻길래 '한국인'이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한국에서도 야구하냐'고 되묻는 시대였다. 정말 독기를 품고 야구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또한 최근 강정호, 이대호, 추신수 등 한참 후배들의 활약상에 대해선 "존경스럽다. 그만큼 KBO리그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거 아니냐"며 뿌듯해했다.


두산 베어스는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에 이어 올해는 정규 시즌 1위와 한국 시리즈 2연속 우승을 목표로 순항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 선수 더스틴 니퍼트가 20승(지난 13일 SK전서 달성)을 앞두고 있어 박철순 이름이 최근 여러 차례 미디어에 언급되기도 했다.


박철순은 20승 달성을 앞둔 니퍼트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후배들에게 뼈 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그는 "사실 국내 선수들도 충분히 이러한 성적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목들이 많은데, 밑바탕이 덜 된 부분이 많다. 그래서 아쉽다. 조금 더 열심히 해줬으면 좋겠다"며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 프로야구계 뜨거운 감자 '혹사 논란'에 대하여


투수 이야기가 나오자 최근 프로야구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혹사 논란'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꺼낸 그는 그 중심에 있는 김성근 감독을 언급했다. 과거 한 방송 매체와 인터뷰에서 이와 같은 질문에 "혹사라는 단어가 무엇이냐"고 먼저 되물었다는 그는 "프로선수 생활을 하는데 혹사 시키는 사람이 누가 있고, 혹사 당하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그는 "나도 현역 시절에 혹사 논란의 중심이었다. 나는 김성근 감독을 두둔하진 않는다. 그런데 하나 생각해 볼 게 있다. 만약 한화 이글스가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다면 그런 이야기가 나올까"라며 "선수는 몸이 생명이다. 몸이 망가지면 안 되지만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할 수 있다. 부상당하는 건 선수의 잘못이 크다. 이 글을 보고 나한테 욕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난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다친 경험이 있는 분이 어떻게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느냐'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다쳐봤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공인이고, 또 고액 연봉을 받고 있는 만큼 자기 관리에 조금 더 신중하고 철저해야 하는 게 맞지만, 일부 선수들의 안일한 태도와 확실한 의사표현을 하지 않는 KBO리그의 흐름이 이런 논란을 낳고 있다는 게 박철순의 생각으로 보여졌다.


야구계 한 관계자도 최근 전병두의 은퇴 소식을 접하고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다. 그만큼 착하다. 그런데 선수생활 할 때 컨디션을 물으면 늘 '괜찮다'고만 말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아픈 가운데서도 책임감 때문에 마운드에 올랐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자신의 건강 상태와 컨디션을 잘 알고 있는 프로 선수들이니 만큼 이제는 메이저리그 처럼 KBO리그의 관습도 조금씩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후 올시즌 프로야구계 오점으로 남은 여러 사건, 사고들과 선수들의 열정을 이야기 한 박철순은 마지막 한마디를 꼭 덧붙여 주기를 부탁했다.


"누가 김성근 감독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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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스포츠서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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