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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2009년 4월 20일. LG는 KIA에 내야수 김상현과 박기남을 내주고 투수 강철민을 받아들이는 2 대 1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2002년 시즌 도중 KIA에서 LG로 옮겼던 김상현은 7년 만에 친정팀에 복귀해, 그 해 타율 0.315, 36홈런 127타점으로 홈런·타점 1위, 타격 7위에 오르며 팀 우승을 이끌었고 정규시즌 최우수선수상(MVP)까지 차지했다. 이적 선수의 첫 MVP 수상이었다. LG는 ‘차세대 4번타자’로 육성했지만 기대에 못미쳤던 김상현이 이적하자마자 대활약을 펼치며 우승과 MVP의 영광을 안자 쓰린 속을 달래야만 했다. 그 때 LG 팀내에서는 “홈런타자 감은 절대 트레이드하면 안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내가 활용하지 못해도 다른 팀에 가서 펄펄 나는 꼴은 볼 수 없다’는 속내였다. 구단 고위 관계자가 공공연하게 이 같은 발언을 토해냈다. 다른 구단들도 그 취지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던 LG는 2년 뒤인 2011년 7월 31일 또 한차례 비슷한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4번타자 후보로 2005년 입단 이후 7년째 공을 들이던 박병호가 포함된 2대2 트레이드였다. 박병호와 투수 심수창을 넥센에 내주고, 투수 송신영과 김성현을 영입했다. 마운드 보강을 위해 2년 전의 쓰라렸던 기억을 뒤로하고 결단을 내렸다. 박병호는 넥센에 안착한 뒤 전혀 다른 선수가 됐다. 그 해 적응기를 지낸 뒤 2012년과 2013년 2연속 정규시즌 MVP를 차지했고, 2014년에도 11년 만에 50홈런 고지를 넘어서며 3년 연속 홈런·타점왕에 올랐다. 국가대표 4번타자·주장으로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에도 앞장섰다.
LG의 대표적인 트레이드 실패 사례다. 그러나 LG가 김상현과 박병호를 잃은 뒤 얻은 것도 그에 못지 않다.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10년을 넘게 가을잔치에 진출하지 못하면서 침체됐던 팀 체질을 개선한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흙 속에 묻힐뻔한 홈런타자들이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LG가 한국 프로야구의 인재를 살렸다’는 농반진반의 얘기는 괜한 흰소리가 아니다. LG는 또 2012년 말에는 ‘트레이드 불가 구단’으로 여겨지던 삼성과 합의해 포수 현재윤, 내야수 손주인 등을 영입했다. 그 결과 2013년과 2014년 2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의 성과를 거뒀다.
2015년부터 새로운 10구단 체제를 맞으면서 경기력 약화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은 현실에서 LG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려의 목소리는 당연하지만 입을 벌리고 있다고 나무 위 열매가 떨어지진 않는다. 해법을 찾아야 한다. 위기는 곧 기회가 아니던가. 우수한 선수 자원의 부족을 당장 해소할 수는 없지만 숨은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제2의 김상현,박병호’가 탄생할 수 있는 길을 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구단이 바뀌어야 그 길이 열린다. 이기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전체 판을 키울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을 꾀해야 한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야할 길을 내팽겨치고, 현실만 탓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한다.
LG의 트레이드 실패 사례가 제시하는 역설적 발상이 소중한 경험으로 다가오는 이유이다. 구단들은 활성화되지 못한 이적 시장에 대해 ‘트레이드를 시도해도 카드가 맞지 않다’고 곧잘 변명을 한다. 여기에는 트레이드 해당 구단들의 이기심이 작동한다. 내 손을 떠나는 선수는 크게 보이고, 남의 손에서 나오는 선수는 폄하하는 것이다. ‘제2의 박병호’를 찾기보다 나에게 당장 닥칠 손해를 먼저 걱정하는 근시안적 발상이다. 보완해야할 자리가 있고 필요한 선수가 있다면, 양보와 결단도 따라야한다. 나 혼자 배를 불릴 생각만 한다면 배는 난파의 길을 헤쳐나올 수 없다.
불과 한 달 전에 LA 다저스가 내야수비 보강을 위해 마이애미, LA 에이절스와 삼각 트레이드를 실시한 것을 보지 않았던가. 메이저리그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 같은 전력 보강책이 왜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일까. 구단이 바뀌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모기업이 야구단을 일개 계열사나 부서처럼 여기고 사장·단장을 그 곳의 중역 중 한 명으로 여기는 현실이라면 더욱 힘든 일이다. 대형 트레이드 같은 큰 변화를 책임있게 시도하기 어려운 구도이기 때문이다. 3년 안팎의 임기에 그룹 정기인사철이면 휘둘리는 사장·단장이 어떻게 구단의 미래를 걱정하며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겠는가. 모기업이, 오너 구단주가 사장·단장의 영역을 전문적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야구단의 전문화와 발상의 전환이 따라올 수 있다. 그렇게 구단이 바뀌어야 한국야구위원회(KBO)도 변화할 수 있다. KBO를 움직이는 실행위원회와 이사회, 총회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구단 관계자들이 아닌가.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진리는 진화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10구단 시대를 맞은 한국 프로야구가 되새겨야할 금과옥조(金科玉條)이다.
박정욱기자 jwp94@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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