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
무식(無識)은 용납해도 무지(無知)는 참을 수 없다. 무지는 관계에 대한 감각의 부재다.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상상력이 결여된 상태다. 타인이 받을 상처를 조금도 헤아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 때, 대중의 분노는 폭발한다. 최근 배재고 야구단이 광주일고 야구단을 향해 저지른 행위는 심각한 무지에서 비롯됐다. 사회적 공분이 일어나는 것은 수순이다.
사건은 지난달 29일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터졌다. 배재고 일부 선수들이 광주일고 더그아웃을 향해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 데이”를 외쳤다. 기싸움 수준의 야유가 아니다.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특정 밈을 교묘하게 끌어와 상대를 조롱한 혐오 표현이다. 페어플레이 정신이 살아 숨 쉬어야 할 그라운드에 지역 비하와 역사 왜곡의 망령이 똬리를 틀었다.
파장은 곧바로 야구장 밖으로 번졌다. 방송가가 엉뚱한 직격탄을 맞았다. 유튜브 야구 예능 ‘불꽃야구2’ 측은 당초 6일 공개 예정이었던 배재고 편을 전면 취소하고 폐기했다. 몰지각한 언행 탓에 제작진이 흘린 땀과 자본이 허공으로 증발해버렸다.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른 셈이다.


역사 인식이 투철한 오피니언 리더들과 대중 역시 크게 분노했다. 일상에 스며든 혐오 문화를 우려하는 쓴소리가 쏟아졌다. 배우 한정수는 “10·20대 일상에 퍼진 일베적 역사 조롱과 혐오가 사회를 악화시킨다”고 일갈했고, 작가 소재원은 “민주주의를 위해 흘린 피가 비아냥의 소재가 될 수 없다”고 개탄했다.
방송인 홍석천은 “이미지 관리용이 아닌 진정성 있는 사과와 역사 공부”를 주문했으며, 한국사 강사 최태성은 “기성세대로서 부끄럽다”며 고개를 숙였다. 일각에선 “어린애들이 야구하다 벌인 해프닝”이라며 사안을 축소하려는 섣부른 옹호도 있었으나, 폭력을 덮어주려는 위험한 궤변에 불과하다.
이번 조롱 사태를 ‘어린 학생들의 일탈’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얕은 이해와 철저한 무관심이 빚어낸 비극이다. 온라인 익명성 뒤에 숨어 낄낄대던 악질적인 혐오 놀이가 오프라인 현실로 튀어나온 것이다. 타인의 고통과 비극적인 역사를 한낱 농담거리로 소비하는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대목이다.
사고를 친 학생들도 문제지만, 괴물 같은 무지를 잉태한 어른들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야구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성적 지상주의 아래,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인성 교육은 철저히 방치했다. 오직 경쟁과 승리만 강요하는 ‘엘리트 체육 시스템’이 만들어낸 거대한 허점이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배재고에 전국대회 6개월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고, 스포츠윤리센터도 직권조사에 착수했다. 징계는 합당한 결과다. 하지만 처벌만 내린다고 본질이 해결되진 않는다. 핵심은 텅 비어버린 역사 인식의 부재를 채우는 일이다.
학생 선수들에게 공을 던지는 법을 알려주기 전에,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선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법부터 먼저 가르쳐야 한다. 엘리트 체육계는 물론, 교육계 전반의 현대사 교육 점검이 시급하다. 방치된 무지는 곧 혐오로 이어진다. 혐오는 우리 사회를 찌르는 흉기가 된다. 이번 배재고 사태가 한국 사회와 교육계에 남긴 가장 엄중한 경고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지금 그 기로에 서 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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