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강성경찰서에 갓 들어온 박대호(류해준 분)는 사건보다 사람이 먼저 보이는 인물이다. 선배 강태주(박해수 분)를 존경했다. 현장에 뛰어들 때마다 어딘가 서툴렀다. 그래도 진실을 향해 달려가고 싶어 했다.

지난 26일 종영한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 초반부에서 박대호는 시청자가 마음을 놓고 따라갈 수 있는 인물이었다. 무거운 사건 속에서도 아직은 믿고 싶은 쪽에 서 있는 막내였다.

하지만 ‘허수아비’는 그를 끝까지 그 자리에 두지 않았다. 사건은 점점 깊어졌고, 경찰서 안의 침묵은 더 짙어졌다. 진실을 향해 가던 막내 형사는 어느 순간 진실을 덮는 자리에 서게 됐다.

윤혜진의 시신 은폐에 가담하는 장면은 박대호라는 인물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밀어냈다. 순수했던 눈빛은 흔들렸고, 존경하던 선배의 등 뒤에 서 있던 인물은 결국 시대의 폭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배우 류해준은 이 변화를 피하지 않았다. 그는 ‘허수아비’에서 강성경찰서 막내 형사 박대호 역을 맡아 신입 형사의 패기와 순수함, 그리고 잘못된 선택 앞에서 무너지는 복합적인 감정을 함께 보여줬다. 간극을 큰 감정 표현보다 미세한 호흡과 눈빛의 변화로 따라갔다.

‘허수아비’는 최종회 시청률 8.1%(이하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 성적으로 종영했다. 2.9%로 출발한 작품은 6회 만에 ENA 월화드라마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이어 ENA 역대 드라마 시청률 2위에 올랐다.

최근 스포츠서울과 만난 류해준은 작품의 반응을 두고 “이렇게까지 결과가 따라올 줄은 몰랐다”고 했다. 다만 현장에서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글이 좋았고, 배우와 스태프 모두 작품의 결을 신중하게 붙잡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물론 어느 정도 잘되겠다는 생각은 다들 했던 것 같아요. 글부터 촉이 왔어요. 모든 스태프분들과 배우분들이 열심히 한 만큼, 최소한 장르 팬분들은 좋아하시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은 있었죠.”

그가 작품의 성공을 실감한 건 시청자들이 진범을 두고 뜨겁게 추측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스릴러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반응이다. 누가 범인인지,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어떤 인물이 감추고 있는 게 있는지 의견이 갈릴수록 작품은 더 살아난다.

“초중반까지 시청자분들이 ‘범인이 이 사람이다, 저 사람이다’ 하면서 의견이 너무 갈리더라고요. 스릴러 장르물에서는 그런 반응이 하나의 지표 같잖아요. 그때 실감이 났어요.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커뮤니티 반응이나 댓글을 지인들이 보내주기도 했고요. 이태원이나 합정처럼 사람 많은 곳에 갔을 때 저를 알아보시는 분들도 종종 계셨어요.”

류해준에게 ‘허수아비’는 시작부터 가볍게 접근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였고, 이미 많은 이들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 있는 소재였다. 그는 2019년 실제 진범이 붙잡혔다는 뉴스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 뉴스 장면이 사진처럼 저장돼 있어요. 저는 사건 당시 세상에 없었지만, 영화나 드라마로 다룬 작품들을 통해 알고 있었고요. 그래서 처음엔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어요. 단순히 연기를 잘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이 시대상을 살아내고 반영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어요.”

박대호의 가장 큰 전환점은 후반부에 있다. 중반까지 그는 강태주를 따르며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인물처럼 보였다. 그러나 차시영(이희준 분)과 장명도(전재홍 분), 도형구(김은우 분)의 압박 속에서 살인사건 피해 아동 윤혜진(이아린 분)의 시신을 암매장하고 은폐하는 데 가담한다.

류해준 역시 그 장면을 쉽게 말하지 못했다. 촬영 전부터 감독에게 흐름을 듣고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막상 그 순간을 직면하는 일은 괴로웠다고 했다.

“그 장면은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어요. 아마 평생 남아 있을 것 같아요. 대본을 받기 전부터 감독님이 ‘뒤에 이렇게 흘러갈 거야. 한번 잘해보자’고 말씀해주셨는데, 그 순간을 마주하는 게 너무 괴롭더라고요. 감정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크게 와서, 오히려 그걸 깎아내고 절제하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그 장면에 참여한 모든 선배님, 배우분들이 힘들어하셨어요.”

박해수, 이희준 등 선배 배우들과의 호흡은 류해준에게 큰 공부였다. 처음엔 긴장도 컸다. 대부분 10살 이상 차이 나는 선배들이었고, 인상도 강했다. 그는 솔직하게 “처음엔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다.

“큰일 났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박해수 선배님이 첫 만남부터 친근하게 풀어주려고 해주셨어요. 대호 자체가 태주 선배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캐릭터라서, 해수 선배님 인터뷰도 찾아보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너무 잘 챙겨주셨어요. 자연스럽게 존경심이 생겼고, 정말 많이 배웠어요. 리스펙하게 됐습니다.”

작품을 통해 이름을 더 알리게 된 류해준은 차기작으로 첫 연극 무대를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확장시키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는데 마침 인사드릴 기회가 생겼다”고 말했다. 드라마를 통해 얼굴을 알린 뒤 무대에서 다시 기본을 확인하려는 선택이다.

“연기의 폭을 더 넓히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는데, 마침 인사드릴 기회가 생겼어요. 처음이라 긴장도 되지만, 무대 위에서 배우로서 다시 배워가는 시간이 될 것 같아요. 앞으로도 기대해주세요.” khd9987@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