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K 좀비의 시작점에 연상호 감독이 있었다면, 그 진화의 끝에도 결국 연상호 감독이 있다. 영화 ‘부산행’으로 K 좀비의 시대를 열었던 연상호 감독이 이번엔 한층 기괴하고 영악해진 감염자들과 돌아왔다.

‘군체’는 정체불명의 감염 사태로 봉쇄된 건물 안에서 고립된 생존자들이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진화하는 감염자들과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서 월드 프리미어 상영을 마친 뒤 국내에선 21일 개봉한다.

영화는 생화학 테러를 예고하는 서영철(구교환 분)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이후 권세정(전지현 분)이 머무는 둥우리 빌딩에서 감염 사태가 벌어지고, 생존자들은 유일한 백신인 서영철을 데리고 건물을 탈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연상호 감독 특유의 K 좀비 세계관이다. 앞서 ‘부산행’으로 한국 좀비 영화 최초 천만 관객을 돌파했던 연상호 감독은 이번에도 자신의 장기를 꺼내 들었다. 그러면서도 단순한 좀비물의 반복이 아니라 이번엔 ‘업그레이드되는 감염자’라는 설정으로 또 다른 차별점을 만들어냈다.

작품 속 감염자들은 집단지성으로 움직인다. 서로를 통해 학습하고 생존자들의 행동 패턴까지 따라 한다. 인간의 움직임을 흉내 내며 방심을 유도하고 점점 더 효율적인 방식으로 공격한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움직이는 감염자들의 모습은 기존 좀비물과는 또 다른 공포를 만들어낸다.

특히 기괴하게 몸을 뒤트는 감염자들의 움직임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순간 관객들은 숨 돌릴 틈 없는 긴장감에 휩싸인다. 단순히 잔인해서 무서운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영특해지고 진화해가는 존재라는 점에서 공포는 배가된다. 말 그대로 연상호 감독이 또 한 번 ‘연상호했다’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 전지현과 구교환의 조합도 강렬하다. 영화 ‘암살’ 이후 11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전지현은 이번 작품에서 몸을 아끼지 않는 액션을 선보인다. ‘피땀눈물’ 액션으로 끝까지 생존자들을 이끄는 권세정은 전지현 특유의 카리스마와 만나 강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반면 구교환은 감염 사태의 중심에 선 서영철 역으로 기괴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감염자들과 몸짓, 표정으로 소통하는 그의 모습은 섬뜩하면서도 묘하게 시선을 끈다. 구교환 특유의 껄렁하고 예측 불가능한 분위기가 서영철이라는 인물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그러면서도 연상호 감독 작품 특유의 ‘인간다움’에 대한 시선 역시 빠지지 않는다. 극한 상황 속 이기심을 드러내는 인간 군상, 장르물 특유의 답답한 캐릭터들, 그리고 서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곳곳에 녹아 있다.

특히 하반신 마비를 가진 현희(김신록 분)와 현석(지창욱 분) 남매의 서사는 익숙한 K신파의 결을 담당한다. 다소 클리셰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처절한 생존극 한가운데 놓인 인간적인 감정선은 연상호 감독이 무수히 말해온 이야기와 맞닿아있다.

무엇보다 ‘군체’의 가장 큰 무기는 속도감이다. 세정 일행이 건물 안에 고립된 이후 감염자들과 맞서는 과정은 숨 돌릴 틈 없이 전개된다. 감염자들이 진화할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영화는 빠른 호흡으로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그리고 그 속에서 ‘군체’는 단순한 좀비 영화를 넘어선다. 익숙한 K 좀비 장르 위에 집단지성과 진화라는 설정을 더하며 또 다른 방향성을 제시한다. 연상호 감독은 이번에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한국형 장르물의 새 보법을 만들어냈다. sjay09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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