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숏폼은 한동안 예능 바깥의 문법처럼 보였다. 휴대전화 화면 안에서 빠르게 소비되고, 짧고 강한 자극으로 승부하는 콘텐츠. 방송은 그보다 조금 더 길고, 조금 더 느리고, 완결된 형식을 갖춘 영역에 가까웠다.

그런데 최근 그 경계가 빠르게 옅어지고 있다. 이제 방송 예능은 숏폼을 단순히 따라가는 수준을 넘어, 프로그램 안으로 직접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숏폼 콘텐츠를 소재로 삼고, 제작 과정 자체를 예능의 서사로 바꾸는 식이다.

MBC ‘놀면 뭐하니?’가 대표적이다. 지난 25일 방송 말미 공개된 예고편에서 유재석은 아예 ‘숏폼 드라마 PD’로 나섰다.

짧은 호흡의 드라마를 직접 만들겠다는 설정 아래 멤버들의 연기력을 점검하고, 외부 배우 섭외까지 시도하는 과정이 그대로 예능의 미션이 됐다. 수지, 변우석 이름을 꺼내며 캐스팅 가능성을 타진하고, 김석훈과 백지영,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황정민까지 섭외 대상으로 거론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웃음을 만들었다.

중요한 건 결과보다 방식이다. 숏폼 콘텐츠 제작이 더 이상 방송 밖 유행이 아니라, 방송 예능 안에서 굴러가는 놀이이자 서사가 됐다는 점이다.

ENA의 새 예능 ‘디렉터스 아레나’는 이 흐름을 더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은 공모를 통해 선정된 감독들이 회당 90초에서 120초 안팎의 숏드라마를 만들어 경쟁하는 형식의 서바이벌 예능이다.

숏폼 콘텐츠를 단순히 참고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짧은 포맷을 프로그램의 중심 규칙으로 삼았다. 이병헌 감독, 차태현, 장근석, 장도연이 패널로 참여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숏폼이 더 이상 ‘짧은 영상’ 정도가 아니라, 방송 예능이 다뤄야 할 새로운 창작 장르로 올라섰다는 뜻이다.

이 변화는 단순히 유행을 좇는 차원이 아니다. 방송 예능이 스스로 달라진 시청 환경을 인정한 결과에 가깝다. 지금 시청자는 긴 설명보다 빠른 상황 이해에 익숙하고, 한 장면만으로도 캐릭터와 분위기를 파악한다.

그러니 예능도 더 이상 숏폼을 외면할 수 없다. 오히려 방송 안에서 숏폼을 직접 만들고 평가하고 소비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변화한 콘텐츠 문법을 예능적으로 소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숏폼이 방송 예능의 ‘적’이 아니라, 새로운 재료가 됐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본방송이 중심이고, 짧은 클립은 그 결과물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제는 반대다. 짧은 호흡의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본편이 된다. 예능이 숏폼을 활용하는 수준을 넘어, 숏폼을 다루는 예능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지금의 변화는 더 흥미롭다. 숏폼은 더 이상 방송 바깥의 속도가 아니다. 방송 예능이 직접 품고, 비틀고, 웃음으로 바꾸는 새로운 문법이 됐다. 예능은 여전히 웃겨야 하지만, 이제 그 웃음이 만들어지는 방식은 훨씬 짧고 빨라졌다. 방송 안으로 들어온 숏폼은 그렇게 예능의 판까지 바꾸기 시작했다. khd998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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