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예능은 원래 가볍게 시작하는 장르였다. 웃기고, 놀라고, 잠깐 현실을 잊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예능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이제는 웃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사회적 이슈와 정책, 정보 과잉 시대의 혼란까지 끌어안기 시작했다. 재미는 기본값으로 두되, 그 안에 현실의 질문을 심는 방식이다.

변화가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사례가 웨이브 오리지널 ‘베팅 온 팩트’다. 이 프로그램은 가짜 뉴스와 정보 왜곡이 일상이 된 시대를 정면으로 다룬다. 플레이어들은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뉴스의 진위를 가린다. 여론을 설득하며, 제한된 정보 안에서 진실과 거짓을 구분해야 한다. 공개 직후 이 프로그램은 웨이브 신규 유료 가입 견인 1위에 올랐다. 최근에는 10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드라마와 예능을 포함한 전 장르 통합 성과라는 점에서 더 눈에 띈다.

‘베팅 온 팩트’가 흥미로운 건 사회적 화두를 다루는 방식이다. 젠더, 세대, 계층, 진영 갈등처럼 온라인에서 날카롭게 충돌하는 이슈들을 ‘코인 베팅’과 심리전 문법으로 번역한다. 단순히 사실을 맞히는 퀴즈가 아니라, 무엇을 믿고 누구를 설득할 것인가를 두고 계속 판단하게 만든다. 장동민, 이용진, 예원, 정영진 같은 예능·시사 인물들이 함께 들어오면서 긴장감은 더 커졌다. 시사성은 무겁게 두고, 문법은 철저히 게임으로 설계한 셈이다.

KBS ‘더 로직’은 또 다른 방향에서 같은 흐름을 보여줬다. 이 프로그램은 정책과 사회 현안을 ‘예능형 토론’으로 풀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제작 단계에서부터 “정책은 어렵고 지루하다는 이미지를 바꾸겠다”며, 긴 설명 대신 예능 형식을 빌려 갈등과 합의 과정을 하나의 이야기처럼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더 로직’은 서바이벌, 사회실험, 관찰 카메라 같은 장치를 섞어 토론 프로그램의 진입장벽을 낮췄다.

마지막 회의 논제는 “인구 위기 대응을 위한 적극적인 이민자 유치가 필요한가?”였다. 프로그램은 승패보다 ‘민감하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 의제’를 예능 문법 안에서 끝까지 다뤄냈다는 점으로 주목받았다.

이 두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예능이 더 이상 현실과 분리된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청자도 이제 단순한 웃음보다, 현실을 비추는 이야기와 구조화된 갈등에 더 쉽게 반응한다. 가짜 뉴스, 이민, 노동, 세대 인식 같은 주제는 원래 시사 프로그램의 몫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예능이 그 주제를 더 넓은 대중에게 전달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어렵고 무거운 의제를 그대로 설명하는 대신, 게임과 토론, 관계와 반전의 구조 속에 넣어 끝까지 따라가게 만드는 방식이다.

결국 예능의 역할도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재미가 있느냐’가 기준이었다면, 이제는 ‘재미와 함께 무엇을 남기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사회를 다룬다고 해서 무조건 무거워질 필요는 없고, 웃음을 준다고 해서 의미를 포기할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최근 예능들이 보여주고 있다.

예능은 원래 가장 가벼운 장르로 여겨졌다. 그런데 지금은 그 가벼움 덕분에 오히려 더 넓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르가 되고 있다. 웃음으로 문을 열고, 그 안에 현실을 들여놓는 방식. 경계를 허문 예능의 진화는 이미 시작됐다. khd998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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