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속는 자가 잘못일까, 속이는 자가 잘못일까.
방송가에 또 한 번 ‘일반인 출연자 리스크’가 번지고 있다. 그간 제작진은 유명세를 노리고 접근하는 부적절한 인물들을 비교적 잘 걸러내 왔으나, 최근 들어 작정한 듯한 기만행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물론 임성근 셰프의 음주운전 이력을 일부 인지하고도 출연을 감행한 넷플릭스 ‘흑백요리사2’ 측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보다 더 빈번하고 심각한 건, 작정하고 거짓말을 앞세운 출연자를 제작진이 미처 거르지 못해 당하는 경우다. 불륜 소송 패소 사실을 숨기고 어머니와 함께 출연한 SBS ‘합숙맞선’ 출연자 A씨가 대표적이다.
특히 연애 예능은 성범죄, 사기, 학교 폭력 등 다양한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어 제작진이 그 어느 장르보다 꼼꼼하게 검증한다. SNS를 샅샅이 뒤지는 건 기본이고, 지원자의 본성을 파악하기 위해 만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는 심층 면접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인을 통해 평판 조회를 하고, 핵심인 범죄경력도 최대한 확인하고, 생활기록부까지 꼼꼼히 뜯어본다. 출연을 담보로 사기업이 할 수 있는 모든 검증을 수행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골적으로 거짓을 고하는 사람을 완벽히 막을 수는 없다. 특히 ‘합숙맞선’ 출연자 A씨 사례처럼 범죄 이력이 남지 않는 ‘민사 소송(상간 소송)’은 제작진이 조회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런 치명적 결격 사유를 숨기고 연애 예능에 지원하는 것 자체가 비양심적이다. 최소한의 양심조차 없는 ‘휴먼오류’를 걸러낼 수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검증의 한계’는 비단 방송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정치권도 비슷한 처지다. 최근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로 지명됐던 이혜훈 전 의원 사례가 같은 맥락이다. 그는 국민의힘 내에서 5회나 공천을 받았고, 3선 의원을 지냈다. 정당의 시스템 안에서 수차례 검증됐기에 믿을 수 있다는 판단이 든다. 그러나 후보 지명 직후 갑질 및 금품수수 의혹 등이 터져 나왔다. 수많은 인력과 정보력이 동원되는 공천 시스템조차 작정하고 숨기는 개인의 비위를 모조리 찾아낼 순 없다.
사고가 터지면 제작진은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쏟아지는 취재진의 전화를 받으며 해명해야 하고, 완성된 편집본을 처음부터 다 뒤집는 ‘편집 지옥’에 빠진다. 큰 그림과 디테일한 서사가 맞물려 있는 편집을 뜯어고치다 보면, 아무리 밤을 새워도 완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프로그램의 질적 하락과 비난의 책임은 온전히 제작진이 떠안는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제작진에게만 가혹하다. 리스크가 터질 때마다 대중은 ‘검증 시스템의 한계’를 꾸짖는다. 물론 시스템을 보완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비난의 화살이 양심 없이 제작진과 시청자를 속이려 한 출연자에게 향해야 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제작진의 한계보다 더 나쁜 건, 거짓을 앞세운 출연자의 부도덕이다.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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