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돈이 있어야 힘이 생기고, 힘을 쓰는 순간 돈이 사라진다. 넷플릭스 시리즈 ‘캐셔로’는 생활밀착형 히어로라는 신선한 설정이지만, 그 현실성이 오히려 히어로물의 쾌감을 제한한다.
지난 26일 공개된 ‘캐셔로’는 히어로물의 공식을 가장 현실적인 방식으로 비틀었다. 손에 쥔 돈만큼 힘이 강해진다는 설정부터가 그렇다. 더욱이 주인공 강상웅(이준호 분)은 공무원이다. 신혼집 집값에 허덕인다.

평범한 월급쟁이가 능력자가 된다는 설정은 히어로 장르에 생활 밀착형 현실극을 덧입힌 신선한 실험이다. 이는 곧 ‘캐셔로’의 가장 큰 매력이다. 기존 히어로물들이 초능력을 얻은 뒤 정의와 악의 대립을 중심으로 전개됐다면, 이 작품은 출발부터 조건이 다르다.
상웅은 능력을 사용할수록 자신의 돈을 잃는다.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지갑을 열어야 하고, 그 선택은 곧 그의 가치관과 생존을 동시에 시험한다. ‘힘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말이 통장 잔고라는 지극히 구체적인 숫자로 드러난다.
문제는 이 설정이 히어로물의 쾌감과 충돌한다는 점이다. 히어로 장르는 기본적으로 사이다 전개와 권선징악, 대리만족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캐셔로’에서 상웅의 선택은 매번 마음 편히 응원하기 어렵다. 그의 선행이 곧 자금난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시청자는 히어로가 아닌 ‘서민’ 강상웅에게 이입하게 된다. 이러한 설정이 반복될수록 답답함을 유발한다.
또한 작품은 서민의 애환과 현실 풍자를 담아내면서도 가볍고 유쾌한 대사, 블랙코미디를 섞었다. 하지만 극의 기본 무게가 묵직하다 보니 농담이 긴장을 풀어주기보다는 오히려 맥이 빠진다.

히어로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액션 연출도 아쉽다. 돈을 써야 능력이 발동된다는 설정 덕분에 동전이 떨어지는 효과음이 눈에 띄지만, 그것이 액션의 차별점이 되진 않는다. 매번 ‘얼마를 썼는가’에 초점이 맞춰질 뿐, 전투의 박진감이나 쾌감은 부족해 히어로물의 백미인 액션신이 김빠진 콜라처럼 밍밍하게 느껴진다.

서사의 허점도 눈에 띈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사연을 지닌 듯하지만 충분히 풀리지 않는다. 박정자(김국희 분)와 조원도(김의성 분)의 과거사는 짧은 만남만 있을 뿐 명확히 드러나지 않고, 상웅이 능력을 잃었다가 되찾는 과정 역시 소년만화식 교훈 뒤에 뭉뚱그려 처리된다. 결말부 또한 히어로 캐셔로와 인간 강상웅의 이야기를 엮으려 하지만 감정적 설득력은 크지 않다. 또 다른 능력자의 도움으로 갈등을 수습하는 방식 역시 편의적이다.

조연 캐릭터 활용도 제한적이다. 만취하면 초능력이 발현되는 변호인(김병철 분), 먹는 칼로리만큼 염력을 쓰는 빵미(방은미/김향기 분)는 매력적인 설정을 갖췄지만, 결국 주인공을 보조하는 역할에 머문다.
빌런 집단 범인회 역시 생체실험이라는 단순한 플롯에 머무른다. 다만 첫 악역 연기에 도전한 강한나(조안나 역)와 이채민(조나단 역)은 인상적이다. 특히 강한나는 만화적인 톤이 강하지만, 허구성이 짙은 세계관 안에서는 오히려 개성으로 작용한다.
‘캐셔로’는 돈과 정의, 생존과 선의 사이에서 흔들리는 히어로라는 설정만큼은 분명 매력적이다. 다만 그 무게를 감당하기에는 톤과 전개, 액션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했다. sjay09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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