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스릴러에서 ‘진범이 궁금하지 않은 순간’은 치명적이다. 인물은 많고 이야기는 더 많은데, 정작 핵심 사건에 대한 호기심이 떨어진다면 장르의 힘도 약해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자백의 대가’는 긴 호흡으로 촘촘한 스릴러를 목표로 했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알맹이가 비어 있다.

‘자백의 대가’는 남편 살인 용의자로 몰린 윤수(전도연 분)가 ‘희대의 마녀’로 불리는 살인범 모은(김고은 분)을 만나며 벌어지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12부작으로 구성됐으며 지난 5일 전편 공개됐다.

작품은 칼에 찔린 남편 이기대(이하율 분)를 목격하고 119에 신고하는 윤수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 사건으로 윤수는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남편을 잃게 된다.

그러나 세상은 오히려 그런 윤수를 가해자로 몰아가고, “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어요”라는 외침에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때 윤수 앞에 치과의사 부부를 독살한 살인범 모은이 나타난다. 모은은 윤수에게 “언니 남편, 내가 죽였다고 자백할게요. 대신 공짜는 아니에요”라며 은밀한 거래를 제안한다. 과연 윤수는 모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을까.

작품은 ‘윤수의 남편을 죽인 진짜 범인은 누구인가’를 굵직한 축으로 내세운다. 12부 내내 용의자가 뒤바뀌며 추리의 재미를 주려는 의도가 보인다. 보통의 스릴러 장르가 짧고 굵은 전개를 택했다면, ‘자백의 대가’는 긴 호흡을 선택하며 이야기의 밀도를 자신했다.

문제는 이 큰 줄기 주위에 뻗은 잔가지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다. 윤수가 치러야 할 ‘자백의 대가’, 모은의 과거사, 이기대 사건까지 한데 엮으려다 보니 호흡은 늘어지고 밀도는 희미해진다. 그러는 사이 이야기의 연결고리가 모호해지면서 집중력도 떨어진다.

이에 더해 최종회 직전까지도 진범 추적보다 윤수를 노리는 의문의 인물과 모은의 서사에 많은 분량을 할애해 두 사건이 따로 논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는 윤수와 모은을 잇는 관계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지만 설득력은 약하다.

또한 중반부 이후 새 인물들을 무리하게 투입해 혼선을 주는 방식 역시 패착이다. 끝내 밝혀진 진범의 동기는 얄팍하고, 등장 타이밍도 갑작스럽다. 이로 인해 윤수의 고생길에 걸맞은 반전의 쾌감은 터지지 않는다. 거대한 진실이 있을 것처럼 보였던 서사는 결국 빈 껍데기처럼 느껴진다.

윤수와 모은을 제외한 캐릭터들도 단선적이다. 특히 구치소 인물들이 그렇다. 한쪽 어깨를 드러낸 채 욕설을 내뱉는 왈순(김선영 분)은 과거 미디어에서 과장되게 그려졌던 여성 재소자 이미지를 답습한다. 모은의 조력자 뚱띵(심이나 분)의 캐릭터 또한 만화적이라 홀로 톤이 튄다.

윤수를 뒤쫓는 검사 백동훈(박해수 분) 역시 설득력이 약하다. 앞서 배우 박해수는 제작발표회에서 해당 역할을 “멜로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밝힌 바 있다. 후반부 백동훈의 집착이 삐뚤어진 애정에서 비롯된 것임이 드러나지만, ‘애증’으로 보기도 어려울 만큼 그의 수사는 외골수적이고 비호감이다.

결국 배우들의 열연만 아쉬움을 남긴다. 전도연은 메마른 윤수의 얼굴을, 김고은은 삭발까지 감행하며 사이코패스 연기를 펼쳤지만, 매력 없는 캐릭터와 허술한 이야기 속에서 그 빛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다. sjay09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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