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흑자 부도’라는 게 있다. ‘흑자가 났는데 기업이 왜 망하나요?’하고 반문할 수 있다. 영업이익은 플러스인데 부채 비율이 높아 도산하는 일은 재계에서 더러 일어난다. 실제로 두꺼비 소주로 유명한 진로그룹이 IMF 이후 이런 흑자 부도를 겪었다. 소주로 큰 회사가 건설, 유통, 제약, 식품 등 문어발식 확장을 한 게 문제였다. 자산규모 3조 5000억 원의 회사가 고작 396억 원의 어음을 막지 못해 회사가 고꾸라졌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영화 ‘소주전쟁’은 바로 여기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글로벌 투자자문사 솔퀸의 직원 인범(이제훈 분)은 국보소주를 탈취하기 위해 회사에 접근한다. 국보의 재무이사 종록(유해진 분)은 인범의 이런 속내를 모른 채 회사 기밀 자료를 다 내준다. 매각을 막고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회장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솔퀸은 이 정보를 토대로 몰래 홍콩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다. 국보 채권을 야금야금 사들인다. 명백한 비밀유지협약 위반이었지만, 이런 기술을 몰랐던 당시에는 눈 뜨고 꼬가 베일 수밖에 없었다.

인범은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는 국보의 주식 대신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채권을 택했다. 고작 1000억원으로 국보의 대주주가 될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국보가 법정관리에 들어가게끔 손을 썼다. 헐값에 사들인 회사채를 훗날 비싼 값에 팔아 시세 차익을 노리려 한 것이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인범이 미국MBA를 거친 뒤 글로벌 투사사에서 배운 ‘선진금융기법’이다.
“선진금융기법은 무슨, 나한테 사기 친 거 아냐!” 종록은 5년 뒤 법원에서 만난 인범을 향해 분노했다. 국보 소주를 놓고 수육 잘하는 집을 찾아가며 동생처럼 따뜻하게 먹였는데 알고 보니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것이니까. 이 둘은 영화 후반부 극적 반전을 맞는다. 양심에 찔린 인범은 종록에게 파산 위기에 처한 국보가 판세를 뒤집을 히든카드를 여러 차례 내밀며 부채 의식을 덜어내려 했다.

이런 복잡한 경제적 배경을 영화화 했다는 점은 용기가 있다. 그리고 매우 준수하게 풀어냈다.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깊이 있는 재미를 느낀다. 다소 전문적이고 김혜수·유아인의 ‘국가부도의 날’(2018)처럼 IMF 고발성 영화 톤에 가까운데, 워낙 탄탄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 흥미를 유지한다.
사법 카르텔 이야기도 등장한다. 변호사법을 어기고 고객 정보를 솔퀸에 내준 로펌의 행태나 뒷거래를 한 판사를 고발한다. 폭 넓게 IMF 당시를 그려냈다.
영화로 담아내기 어려운 경제 사건을 유해진, 이제훈의 맛깔나는 연기가 해법이 된다. 여기에 할리우드 배우 바이런 만의 찰진 대사는 일품이다. 세트장을 홍콩 사모펀드사로 바꾸며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국보그룹 회장 진우 역을 맡은 손현주의 열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상명하복에 충실했던 그 시절 회장님의 꼰대 같은 모습을 현실감 있게 연기했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배워야 했던 IMF 에필로그다. 소주 끝맛이 쓰리게 느껴진다. 유해진의 말대로 “숙취 있는 영화”라는 점은 확실하다. socoo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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