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7살에 데뷔해 어느덧 25년 차 ‘원로 배우’라는 소리를 듣는다. 현장에서는 자신보다 나이 많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선배님’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여전히 선배 대접은 어색하다는 배우 유승호다.
데뷔 시기에 따라 연차를 특히 중요시하는 연예계에서 유명세를 더해 어깨에 힘도 줄만 한데, 어렸을 때부터 예절교육을 강하게 시켰던 부모의 덕분도 있다. 그리고 가끔 오해받기도 하는데, 그는 평소 낯가림이 심해 MBTI도 ‘I’만 4개라고 한다. 취미조차 집 안 청소라고 하는 자타공인(自他共認) ‘집돌이’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집이라고.
유승호는 아역배우로 시작해 다양한 연기 경험을 쌓았다. 폭넓은 배역으로 장르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정작 마음을 터놓고 지낼 친구는 사귀지 못했다. 말수가 적고, 어쩌면 소심해 보이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이런 유승호의 마음을 열어준 이들은 바로 동료들과 팬들이었다. ‘국민 남동생’ 타이틀을 가진 그를 조건 없이 귀여운 남동생으로 대했다.
◇ 어려운 ‘시작’ 그러나 후회 없는 ‘선택’
역대급 폭염과 열대야로 지구가 들끓던 8월, 유승호의 심장도 뜨겁게 타올랐다. 연기 인생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한 것. 그는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서 1980년대 미국 보수주의를 남다른 신념으로 깨뜨리려는 주인공 ‘프라이어’를 열연했다.
그에게 익숙한 드라마, 영화 현장으로 따지면 한 큐에 200분을 연기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작품의 주제도 인종, 종교(몰몬교), 에이즈 환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이야기였기에 시대적 배경 이해와 감정선에 대한 공부량도 많았다.
밥을 못 먹을 정도로 무대가 두려웠던 날들이 많았다. 맡은 배역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신으로 인해 어떤 배우는 무대에 오르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미안함까지 몰아쳤다. 그때마다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웃음과 용기를 준 이들이 있었기에 힘든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유승호는 “지금도 이슈인 예민한 부분을 다뤘다. 신유청 연출님과 모든 배우, 스태프들과 다 같이 연습실에 모여 공부했다. 결론은 ‘사랑’이라는 큰 주제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작품이) 암울하고 우울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3시간 20분 동안 함께 달릴 수 있는 힘은 ‘웃음’이라는 것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작품을 하면서 ‘퇴근길’이라는 신박한 팬미팅을 처음 경험했다. 그래서 초반에는 인사 없이 퇴근하거나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였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배우 손호준이 그를 불러세워 조언했다.
유승호는 “(손)호준이형이 ‘네가 몰라서 그러는 것은 어쩔 수 없는데, 비싼 티켓을 사서 와준 팬이든 아니든 그들에게 인사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라고 이야기해줬다. 그날 이후로 한 두 번 빼고 다 인사했다”며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이어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나를 좋아해 주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바뀌었다. 여러 회차를 본 관객들은 무대 위 사소한 다름까지도 알아챘다. 공연 순간마다 정말 집중해서 본다고 느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다양하게 연기하려고 노력했다”라고 전했다.
팬들과의 가까운 소통은 꽁꽁 얼어있던 소심한 심장을 녹였다.
유승호는 “요즘 유행하는 ‘밈’들을 엄청나게 시키시더라. 프라이어의 드랙퀸 연기도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 3시간 반 연기한 사람에게 또 시키냐’고 말해 다 같이 웃었던 기억이 있다”며 이날 가장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워낙 소통하는 배우가 아니었던 것에 죄송한 마음이 컸다. 공연 끝나고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팬들과 짧았던 시간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정말 좋은 순간이었다”며 회상했다.
공연의 막이 내린 지 보름째다. 잠깐 휴식기에 들어간 유승호는 팬들을 찾아다니면서 연기하는 자세를 갖추겠다고 약속했다.
유승호는 “나만 아는 진심이면 누가 알겠는가. 나의 연기에서 진심이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무언가 감정을 느꼈을 때 특별한 감정이 나와 상대가 같이 갈 수 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gioi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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