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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박찬호(은퇴)는 지난 7월 광주구장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선수 은퇴식을 치른 뒤 한 가지 질문을 받았다. 향후 행보를 묻는 질문이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코치나 감독으로 활동할 생각이 없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박찬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까진 생각이 없다. 존경받고 사랑받던 야구계 거물들이 조롱과 비판을 받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사실 박찬호 정도의 거물급 인사면, 몇 년간 코치직을 수행하면 프로야구 감독을 맡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박찬호는 이 길을 가는데 주저하고 있다. 현재 국내 프로야구 감독들은 팀 성적에 따라 모든 비난과 조롱을 받는 방탄막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과거, 선수 혹은 지도자 시절 쌓아놓은 업적과 역사들은 현재의 팀 성적에 따라 모두 희석되고 있다.
실제로 감독을 했던 야구계 레전드들은 모두 쓸쓸한 최후를 맞고 있다. 지난 2011년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진행한 ‘레전드 올스타 팬투표’에서 전체 1위를 차지한 이만수 전 SK 감독은 감독 부임 이후 팬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최고의 인기스타에서 놀림감으로 전락했다. 최고의 투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시진 전 롯데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김 감독은 프런트와 팬들에게 모두 외면을 받으며 쓸쓸하게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10번이나 이끈 한화 김응룡 감독도 예외는 아니다. 김 감독은 프로야구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팬들의 무수한 조롱을 받았다. 25일 KIA 감독직에서 사퇴한 선동열 전 감독도 같은 길을 걸었다. 선 감독은 국내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투수였고 삼성 감독 시절 빼어난 리더십과 선수 육성을 성공하면서 명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KIA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자 순식간에 구렁텅이로 떨어졌다.
프로야구 감독직은 ‘레전드들의 무덤’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아무리 선수 시절 좋은 기록을 냈어도 감독을 하면서 팀 성적을 내지 못하면 그동안의 업적이 모두 무너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네티즌들의 낯뜨거운 조롱과 입에 담을 수 없는 비난도 이어진다. 지난 2012년 한화 전 한대화 감독은 가족들을 욕하는 네티즌의 글을 보고 큰 충격을 받기도 했다. 레전드들의 전락은 국내 프로야구계에도 크나큰 손실이다. 한 야구인은 “감독 자리에만 오르면 모든 비난이 이어진다. 레전드들이 하나둘씩 조롱의 대상이 되면 프로야구 역사도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레전드들이 존경의 대상이 아닌 비판의 대상이 됐는데, 프로야구 역사와 그 의미가 제대로 설 수 있겠는가? 서글픈 현실이다”고 말했다.
김경윤기자 bicycl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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