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포토] 인천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하나 되어 5전승
[스포츠서울]인천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 선수들이 16일 잠실구장에서 가지는 첫 훈련에 앞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2014.09.16 잠실|최재원기자shine@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야구 대표팀이 16일 공식훈련을 시작하며 금메달 사냥의 첫 발을 내딛었다. 잠실구장에서 열린 훈련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지만, 사령탑인 류중일 감독과 선수들의 마음을 바빴다. 본 경기 시작까지 불과 6일간의 시간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류 감독은 “선수들의 컨디션을 빨리 점검해야 한다. 선수단이 서로 손발을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퍼즐 맞추기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류 감독이 말한 ‘손발 맞추기’는 크게 두 가지다. 야수간의 수비 호흡과 사인이다. 이 중에서 사인에 대해 살펴보자.

그라운드에서는 늘 소리 없는 전쟁이 펼쳐진다. 그라운드의 선수들은 상대가 알지 못하는 사인을 통해 치고 던지고 달린다. 마운드의 투수가 공을 던지며 플레이가 시작하지만, 사실은 그 전에 포수가 가랑이 사이에서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는 사인이 야구의 진짜 시작이다. 포수가 손가락 한 개를 보이면 직구, 두 개를 펼치면 커브를 던지라는 신호다. 포수는 18.44m 떨어진 투수가 사인을 잘 볼 수 있게 손톱에 흰색이나 노란색 매니큐어를 칠하길 꺼리지 않는다.

2루 베이스에 주자가 있으면 투수가 어깨에 손가락을 대고 포수에게 먼저 사인을 보내기도 한다. 손가락을 한 개 대면 포수와 경기 전에 약속한 1번 사인으로 가는 것이고 손가락 두 개를 대면 2번 사인이다. 2루 주자에게 포수의 사인이 노출되기 때문에 배터리 간에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게 된다.

더그아웃의 감독은 베이스 옆에 서 있는 작전주루 코치를 통해 타자와 주자에게 히트앤드런 등의 공격 사인을 보내고, 포수에겐 수비를 어떻게 할지 사인을 보낸다. 구질 사인을 보내기도 한다. 국내 야구장 더그아웃의 감독석은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는데 반대편 더그아웃에서는 상대편 감독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모 팀 감독은 1년 내내 사인을 바꾸지 않기도 하고, 가짜 사인 없이 곧바로 진짜 사인을 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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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유지현 베이스 코치가 타자에게 사인을 보내고 있다. 춤을 추듯 다양하다. 타석의 타자가 진루하자 유지현 코치의 사인이 더 복잡해졌다. 타자와 주자에게 모두 사인을 보내기 때문이다. 타석의 타자가 헷갈려 하자 직접 다가가 귓속말로 전달하기도 한다.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2009-09-10

그런데 진짜 사인은 무엇이고 가짜 사인은 또 무엇인가. 예를 들어 3루 베이스 코치의 모습을 그려보자. 그는 타석에 있는 타자와 누상에 있는 주자를 향해 무수히 많은 사인을 보낸다. 손가락으로 모자를 만지고 가슴을 두드리고 눈, 코, 입을 만진다. 팔과 허벅지를 쓰다듬고, 만진 곳을 또 만지기도 한다. 몸 전체를 이용해 사인을 전달한다. 보통 10개, 많으면 20개 이상의 복잡다단한 동작을 통해 상대팀이 알아채지 못하게 사인을 보낸다. 그런데 수신호가 너무 현란해 과연 이를 지켜보는 선수가 사인 내용을 알아볼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그 많은 사인을 모두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진짜 사인은 그 속에 숨겨져 있고 여기에는 해당 팀원만 알 수 있는 비밀의 키(Key)가 있다. 모자가 ‘키’ 사인이라고 한다면, 모자를 만진 다음에 나가는 사인이 진짜 사인이다. 그라운드의 선수들은 코치의 여러 동작 중에 모자 다음에 나오는 사인을 보고 작전을 전달받는다.

예를 들어 박수를 한 번 치면 번트, 두 번 치면 도루, 세 번 치면 히트앤드런인데, 모자를 만지고 박수를 한 번 치면 번트 사인이고 두번 치면 도루 사인이다. 코를 만지고 박수를 치면 아무것도 아니다. 즉 키 사인과 연결되지 않는 동작은 무의미한 속임수다. 진짜 사인의 기준이 되는 키 사인은 경기에 따라 바꾸는데, 상대팀은 그 키를 모르기에 작전내용을 파악하기 힘들다.

키 사인에 대해 작전주루 코치 출신의 염경엽 감독은 “사인은 가장 쉬우면서도 복잡해야 한다. 상대가 볼 때는 매우 복잡해 보이지만, 보는 사람은 아주 쉬워야 한다. 사인을 낼 때 보면 여기저기 많이 만지는데, 아무것도 아니다. 키를 어디에 넣는지가 문제다. 키 때문에 보는 사람은 아주 쉽고 찾아내는 사람은 어렵다. 키 사인과 함께 취소 사인까지 같이 들어가면 상대팀은 사인 내용을 더 찾기 힘들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염 감독은 “상반신 뿐 아니라 다리도 사인에 이용된다. 손으로 상반신 여기저기를 만질 때, 왼발이 앞으로 나가 있으면 가짜 사인이고 다리를 움직이면서 내는 사인이 진짜 사인이다. 상대팀에서 다리까지 보지 않기 때문에 하반신도 이용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SS포토]신인 그룹 '립서비스', '제 사인을 잘 봐요!'
[스포츠서울]신인 걸그룹 ‘립서비스’의 멤버 비파가 시구를 하기 전 독특한 제스처로 사인을 보내고 있다. 2014. 7. 11. 잠실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야구 전문가들은 사인이 쉽다고 하지만, 그런 수신호에 익숙하지 않은 야구팬들과 일반인은 마냥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프로선수들도 아주 가끔은 사인을 놓친다. 야구는 실수를 줄이는 팀이 승리하고 단 한 개의 실수가 승패의 향방을 가르기도 하는데, 프로경기 중에도 사인 미스로 결정적 실수가 나오며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있다.

가장 사인 미스가 많이 나오는 상황은 홀로 떨어져 있는 주자 2루 상황이다. 반면 주자 1, 3루 상황에서는 사인 미스가 거의 없다. 코치가 바로 옆에서 귓속말로 얘기해 주기 때문이다. 상대팀 수비수가 밀착해 있으면 스킨십을 이용해 사인을 낸다. 코치가 주자의 등을 한번 누르면 번트, 두 번 누르면 도루, 등을 꼬집으면 히트앤드런 이라는 식이다.

사인은 감독 성향을 따라간다. 염경엽 감독처럼 작전주루 출신 사령탑의 사인은 복잡하고 다양한 편이다. 김재박 경기감독관도 감독시절 상대팀이 볼 수 있다고 생각해 사인이 길었다. 반면 김응룡 감독은 아주 간편하게 사인을 내는 편이다. 다른 동작 없이 그냥 모자를 만지면 번트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도 롯데 사령탑 시절 작전을 거의 쓰지 않아 사인이 단순했다.

선수 중에는 그라운드의 사령탑인 포수가 사인을 많이 받고 또 많이 낸다. 사인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자. 베테랑 모 포수는 “사인을 늘 같다. 고등학교 때 사인과 프로의 사인도 비슷하다. 작전 사인과 구질 사인, 벤치 사인 등 종류는 많지만 매일 야구를 하니까 다 기억한다. 몸에 체득되어 있다. 포수가 내는 사인은 20개 정도 되는데 스프링캠프에서도 내내 연습하기에 헷갈리지 않는다. 중간에 들어가는 키 사인만 기억하면 된다. 배터리간의 사인은 경기 전에 몇 번째 손가락이라고 맞춰놓는다”라고 했다. 사인은 야구의 한 부분이라 익숙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신인급 모 포수는 가끔 혼동된다고 했다. “수비수와 주고받는 사인이 있고 밖에서 들어오는 사인이 있다. 거의 그렇진 않은데 아무생각 없이 보면 헷갈릴 수 있다. 사인을 못 받으면 다시 내달라고 한다. 캠프에서 다 외우고 시즌에 들어가는데, 주전이 아니라 매일 경기에 못 나가면 사인도 많이 못 본다. 그래서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다 적어 놓고 자주 본다”라고 나름 고충을 털어놓았다. 상대팀 교란을 위해 사용되는 사인에 본인도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2014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류중일 감독은 전체 훈련을 지휘하며 사인훈련은 이틀 정도면 된다고 했다. 복잡해 보이는 사인이지만, 각 팀마다 일반적인 사인은 큰 틀에서 크게 차이가 없고 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여러 사인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미리 숙지해야 하는 공격과 수비 사인의 종류는 20가지가 넘지만, 키 사인만 숙지하고 있으면 소통하는데 문제가 없다.

이틀의 시간이면 사인을 주고받고 작전을 펼치는 예행연습에 별 무리가 없다는게 류 감독의 판단이다. 대표팀은 16일과 17일 훈련을 마친 후 18일 LG 상대로 사인 플레이를 실전연습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대표팀의 찰떡궁합을 사인으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배우근기자 kenny@sportsseoul.com

배우근 블랙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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