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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2014년 2월 20일 러시아 소치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팰리스.
한 선수가 피겨 연기 뒤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취재진 앞에 서 있었다. 기자들도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일본이 자랑하는 여자 피겨 선수 아사다 마오였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은메달 뒤 4년을 기다렸던 아사다는 첫 날 쇼트프로그램에서 최악의 연기 끝에 55.51점으로 16위에 그쳤다. 이틀 뒤 프리스케이팅에서 그는 생애 최고의 연기를 펼치며 종합순위를 6위까지 끌어올렸지만 상처받은 그의 마음이 온전히 돌아오진 않았다. 프리스케이팅 뒤 그는 참았던 울음을 펑펑 터트렸다. 이 대회 은메달 획득 뒤 아름답게 은퇴했던 라이벌 김연아와 달리 아사다는 2018년 평창 올림픽을 겨냥해 다시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일본선수권 12위, 갑작스럽지만 예고됐다흐르는 세월을 거스를 순 없었다. 뒤에서 맹렬히 쫓아오는 후배들을 이겨내기도 힘들었다. 김연아와 함께 2010년을 전후해 세계 여자 피겨를 양분했던 아사다가 ‘올림픽 금메달’이란 천추의 한을 이루지 못하고 은퇴했다. 그는 11일 “갑작스럽지만 나 아사다 마오는 피겨 선수로서 끝내려는 결단을 했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스케이트가 가능했던 것도, 많은 일을 극복해 올 수 있었던 것도 많은 분으로부터 지지와 응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현역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평창 올림픽이 1년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전격 은퇴를 결정했지만 어느 정도 예고된 하차이기도 했다. 올림픽 메달은 물론 출전 가능성조차 점점 사라졌기 때문이다. 소치 올림픽 뒤 자국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해 재기 의지를 다진 그는 지난 해부터 실력이 뚝 떨어졌다. 전매특허인 트리플 악셀(3회전 반) 점프를 하지 못하면서 점수는 내리막길을 걸었고 특히 지난해 말 열린 전일본피겨선수권에서 12위에 그쳐 한계를 노출했다. 일본은 내년 평창 올림픽에서 소치 대회(3장)와 다르게 두 장의 티켓만 거머쥐었다. 미야하라 사토코, 미하라 마이 등 어린 선수들이 건재한 상황에서 아사다는 현역 생활 마무리를 선택했다.
◇김연아, 평생의 라이벌이자 넘지 못한 벽1990년생으로 동갑내기인 김연아와 아사다는 세계 피겨사의 한 획을 그은 라이벌이었다. 주니어 시절부터 둘은 1~2위를 나눠가지며 각축을 벌였다. 2005년엔 아사다가 세계주니어선수권 우승을 차지했고 이듬 해엔 김연아가 설욕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연아가 조기 은퇴 위기 속에서 투혼을 발휘해 선수 생활을 이어나간 반면 아사다는 일본 피겨계의 전폭적인 지원속에 12살 때부터 구사한 트리플 악셀을 앞세워 각광받았다. 그런 둘의 라이벌 구도는 2009년부터 로스앤젤레스 세계선수권부터 김연아로 확 기울었다. 김연아가 그해 2월 4대륙선수권과 3월 세계선수권, 12월 그랑프리 파이널을 연달아 제패하면서 아사다를 압도한 것이다. 절치부심한 아사다는 밴쿠버 올림픽에서 뒤집기를 노렸으나 김연아를 넘지 못하고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아사다가 현역 생활을 지속하고 김연아가 빙판에 복귀하면서 둘은 소치 올림픽 때 다시 만났다. 올림픽 직전 아사다가 “김연아가 없었다면 나도 성장할 수 없었다. 절차탁마했던 것이 내 동기부여가 되었다”며 김연아를 칭찬했고 이에 김연아가 “나 역시 아사다가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것이다. 서로 피하고 싶은 존재지만 분명히 동기부여와 자극이 됐다. 올시즌(2013~2014시즌)이 서로에게 마지막 시즌이 될 것 같은데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화답하면서 둘의 ‘소치 리턴매치’는 엄청난 시선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김연아가 러시아 텃세 속에 은메달을 따내 명예로운 퇴장을 이룬 반면 아사다는 쇼트프로그램에서의 참패로 또 한 번 김연아를 넘지 못했다. 그는 내년 ‘김연아의 나라’ 한국에서 김연아가 없는 가운데 올림픽 금메달을 위해 3년간 달렸으나 끝내 스케이트화를 벗게 됐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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