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 프로즌 나마
기린 이치방 프로즌 나마.

최근 국내에 상륙해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기린 이치방 프로즌 나마(KIRIN ICHIBAN FROZEN NAMA)’라는 제품이 국내 맥주 업계에 ‘혁신’이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지난 3일 서울 신사동 가로길에 오픈한 기린(KIRIN) 맥주 팝업스토어 ‘기린 이치방 가든’은 주류 팝업스토어로는 이례적으로 일 평균 1200명 이상이 방문하며 인기몰이 중이다. 특히 주말에는 오픈 시간을 기다리는 고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기린 이치방 가든’은 일명 아이스크림 맥주로 불리는 ‘기린 프로즌 나마’를 판매하는 팝업스토어로 일본에서는 출시 1년만에 6개 도시에 팝업 스토어 오픈과 함께 올해 안으로 2000개 판매점 오픈을 앞두고 있다. 기린 프로즌 나마는 100% 몰트 비어인 기린 이치방 시보리 생맥주 위에 -5℃로 살짝 얼린 맥주 거품을 아이스크림 모양으로 토핑해서 마시는 새로운 개념의 맥주다.

기린 이치방 가든 2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기린 맥주 팝업 스토어 앞에서 고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제공 | 기린맥주

◇기린 맥주, 일본 맥주 시장서 ‘패러다임의 변화’ 꾀하다

일본 내 맥주 2위 업체(1위는 아사히 맥주·2012년 시장 점유율 기준)인 기린 맥주는 최근 몇년간 안팎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 우선 일본은 사회적으로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 중인데 이는 자국 맥주 소비량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맥주의 주요 소비층이 20~30대 젊은층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최근 8년 연속 맥주 소비량이 줄어드는 추세다. 설상가상 기린 맥주는 지난 90년 런칭한 주력 제품 이치방 시보리의 브랜드 노후화로 아사히 맥주 등 자국내 라이벌과의 경쟁에서 최근 고전을 면치 못했다. 80년대 후반까지 자국내 맥주 시장의 50%를 차지했던 업체 입장에서 위기감과 절박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고민 끝에 기린 맥주가 찾은 ‘해결 방안’은 ‘혁신’이었다. 기린 맥주는 ‘DI(드래프트 이노베이션) 프로젝트’로 명명된 신제품 개발 계획을 통해 ‘맥주에 대한 관여도가 낮은 젊은 층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맥주라는 카테고리 자체를 현대화시켜야 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품질’은 기본적인 요소였다. 여기에 ‘재미’, ‘오감 만족’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더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프로젝트로 지난 2012년 탄생한 제품이 ‘기린 이치방 프로즌 나마’다. 기린이 이 제품 개발에서 주목한 타깃 층은 젊은 층, 특히 여성 고객이었다. 여성의 경우 생맥주 한잔을 다 마시는 시간이 길게 마련인데 기존 맥주의 경우 거품이 유지되는 시간이 짧을 수 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고자 기린 이치방 시보리 생맥주 위에 아예 영하 5도씨의 얼음 거품을 올렸다. 결빙된 거품이 보호막과 같은 역할을 해 약 20분 간 맥주 본연의 맛과 풍미, 신선한 상태가 유지된다. 소프트아이스크림을 연상시키는 시각적 이미지, 얼음 거품이 주는 부드러우면서도 아삭아삭한 촉감이 더해져 이 제품은 단숨에 기린 맥주의 ‘히트 상품’이 됐다.

일본 기린맥주 마케팅부 브랜드 매니저 스기야마 히로타츠(35)씨는 최근 스포츠서울과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단순 표면적인 니즈에 맞춘 상품개발이 아니라 소비자의 행동 양식을 연구해 더욱 소비자에 밀착하고, 심층 심리를 반영한 마케팅을 목표로 했다”고 ‘프로즌 나마’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프로즌 나마 개발로 기린 맥주가 얻은 것은 단순히 판매율 신장 뿐이 아니다. 프로즌 나마 개발을 통해 기존 기린 맥주의 주력 상품이지만 낡은 이미지가 있었던 이치방 시보리의 이미지까지 제고시켰다. 프로즌 나마 출시 이후 이치방 시보리 맥주의 가정 판매량이 전년 대비 15% 성장했고, 특히 20~30대 젊은 층의 이치방 시보리 구입률이 상승했다. 자체 조사 결과 기린 맥주는 ‘혁신적’, ‘현대적’이라는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까지 얻게 됐다. 단순히 시장 점유율 향상만 꾀하지 않고, 기존 맥주 자체에 관심없던 새로운 소비층을 끌어들이며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의미다.

기린맥주_기린맥주 국내 최초 기린 이치방 가든 런칭_1
서울 기린 이치방 가든 팝업 스토어 전경. 제공 | 기린맥주

◇한국 맥주 업체들도 ‘기린 맥주의 혁신’ 가능할까

기린 맥주 관계자는 “새로운 개념의 제품을 내놓으며 혁신을 꾀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일본은 맥주 시장이 너무 침체기다. 회사를 유지하는 게 너무 힘들고, 경쟁도 굉장히 치열하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한 것은 우리가 특별하기 때문이 아니다. 너무 힘들기 때문에 고민하다 나온 결과물일 뿐”이라며 신제품 개발의 원동력으로 ‘절박함’과 ‘치열함’을 꼽았다.

국내 맥주 업체들은 일본 업체들만큼 ‘절박함’을 느끼고 있을까. 아직 시장이 성장할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한국 맥주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가 제품 개발이나 품질 향상에 상대적으로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한 맥주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의 특수성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일본 업체들의 혁신 노력이 국내 업체들에게 자극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업체들이 일방적이고 한정된 제품으로 지금까지 소비자에게 다가간 측면이 있다. 관습적인 패턴을 수십년간 유지해 왔다. 물론 두 업체가 신제품 개발을 게을리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오비맥주의 카스 레몬, 카스 레드, 하이트진로의 스타우트, 하이트S처럼 기존과는 다른 제품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아오다보니 업체들이 신제품 개발을 할 때 위축된 부분이 있다. 수입 맥주 판매량이 증가하고, 소비자들의 니즈가 다양화되는 추세에서 국내 맥주 문화 수준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국내 업체들도 일본 업체들처럼 절박함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기린 프로즌 나마와 같이 기존에 없던 개념의 제품을 출시하는 일본 업체들의 노력도 큰 자극이 된다.”

‘기린 프로즌 나마’를 국내에 들여온 하이트진로의 관계자는 “이 제품을 국내에 소개한 데는 단순히 소비자들에게 많이 팔겠다는 의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벤치마킹하고 배우며, 우리 제품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연구 개발에 접목할 지점을 찾겠다는 목적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지석기자 monami153@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