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프로구단이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기본 가치를 벗어나는 의사 결정을 하는 팀은 리그 전체에 해악을 끼친다. V리그 여자부 한국도로공사가 바로 그런 팀이다.

도로공사는 이달 말 계약이 종료되는 김종민 감독과 이번시즌 챔피언결정전을 함께하지 않기로 했다. 정규리그 1위 등극을 이끈 김 감독은 봄 배구에 나서지 못하게 됐다.

▲V리그 전체를 기만하다

프로배구계는 충격에 빠졌다. 김 감독은 지난 20일 포스트시즌 미디어데이에 참석해 해맑게 챔프전에 임하는 각오를 밝혔다. 계약을 그대로 끝낼 거였다면 행사장에 오지 않았어야 했다. 재계약을 안 하는 것은 구단의 선택이지만, 결별을 선택한 시점이 부적절하다. 김 감독을 바보로 만들었고, 미디어, 업계 관계자들마저 속인 것과 다름이 없다.

한 구단 관계자는 “이건 리그 전체를 기만한 것이다. 상도에 너무 어긋나는 행동”이라며 분노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최종 결정 시점이 언제인지 모르지만 미디어데이에 맞춰 확정했어야 했다. 데려왔다면 당연히 봄 배구를 함께하는 게 맞다”라고 지적했다.

도로공사가 터뜨린 폭탄으로 V리그 포스트시즌 분위기는 엉망이 됐다. 26일 현대건설과 GS칼텍스의 플레이오프 1차전이 열린 수원 현장에서 만난 관계자 대부분이 도로공사의 결정에 분통을 터뜨렸다. 심지어 김 감독과의 계약 종료 보도자료를 경기가 시작하는 시각에 맞춰 배포했다. 빅매치에 초를 치려는 것인지, 스리슬쩍 묻어가려는지, 아니면 둘 다인지 불순한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었다.

한 관계자는 “모든 이슈를 도로공사가 잡아먹었다. 리그의 축제인 봄 배구는 정작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다른 구단에 미안한 마음은 있는지 궁금하다”라고 말했다.

▲정말 폭행 사건이라면 구단은 책임이 없나?

김 감독은 전 코치 폭행 혐의로 약식 기소됐다. 공기업인 도로공사가 부담을 느낄 만한 이슈다. 재계약을 포기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코칭스태프 간에 발생한 갈등에 구단은 책임이 없을까. 손진식 단장을 비롯한 수뇌부 역시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구단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궁극적으로 단장의 몫이다. 선수단의 일이 사무국 밖에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법적인 최종 판단이 나오지 않은 시점에 김 감독에게만 온전히 책임을 지우는 것은 무책임하다. 한 구단 단장은 “만약 우리 팀에서 저런 트러블이 발생했다면 나에게 잘못이 없다고 볼 수 있을까. 온전히 감독만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별을 결정하는 시점도 비겁해 보인다. 폭행, 혹은 약식 기소가 결별의 근거라면 문제가 됐던 시점에 빨리 경질하는 게 차라리 합리적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계약 기간을 채운 모양새 자체가 어색하다.

한 구단 사무국장은 “기소된 점을 문제 삼아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경질했는데 혹시라도 나중에 무죄가 나올 경우 복잡해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한 게 아닐까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라는 의견을 내놨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감독 한 명을 희생시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10년 동행 의리 어디로

도로공사는 상도, 책임감도 없는데 심지어 의리마저 실종된 모습이다. 김 감독은 2016년 도로공사 지휘봉을 잡은 뒤 통합우승 1회, 챔프전 우승 2회 등을 달성한 지도자다. 구단 우승의 모든 순간을 김 감독이 함께했다. 팀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을 내팽개치는 과정을 보면 도로공사는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재계약하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구단의 선택이지만 밖에서 보기에도 ‘추한 이별’이 됐다.

김 감독은 개인사로 인해 팀에 부담을 끼치는 것을 고려해 챔프전까지만 팀을 이끌고 도로공사를 나가고 싶어 했다. 유종의 미를 거두려는 사령탑을 향한 작은 배려도 하지 못하는 구단이 바로 도로공사다.

현대건설 강성형 감독도 “안타깝다. 그게 맞는 선택인지 모르겠다. 6개월 동안 선수들과 동고동락하며 여기까지 왔다. 중요한 경기를 마무리하고 끝낼 수도 있는 건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1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지 않았나”라며 도로공사에 쓴소리를 했다.

이번 사건으로 도로공사는 V리그 ‘역대급’ 비호감 구단으로 전락했다. 이대로면 우승해도 박수받지 못할 게 분명하다. 배구팀장. we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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