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사랑이 시작되기 전 맑고 상쾌한 공기 선사

한국 공연서만 볼 수 있는 천진난만 ‘남매 케미’

5분의 무대를 50분의 감동으로 물들인 ‘은반 위의 천사’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황홀한 아름다움에 가려진 검은 그림자,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한 여인의 비극적 사랑을 암전으로 그리듯 어둠에 뒤덮인 무대가 구슬프게 드리운다. 그의 찬란했던 과거를 기억하듯 은빛 빙상 위 두 스케이터 김다민(26)과 김현(24)이 밝은 빛을 회귀한다.

김다민·김현은 7년 만에 돌아온 ‘안나 카레니나’에서 유일한 빛의 존재로 등장한다. 금지된 사랑의 비극을 예고하는 기차와 대비된 순백의 장면을 연출한다.

두 퍼포머는 단 한 장면을 위해 무대에 오르지만, 이들이 관객과 마주하는 단 5분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오페라에 어우러진 커플의 피겨 스케이팅은 대장관을 이룬다. 가장 순수한 사랑을 속삭이는 듯하다.

김다민·김현의 퍼포먼스는 다른 나라의 공연에서 볼 수 없는 커플 케미스트리를 느낄 수 있다. 극 중 부부로 등장하지만, 이들의 무대는 마치 어린 소년과 소녀가 겨울의 낭만을 즐기는 순수함이 묻어있다.

한국 무대에서만 연출 가능한 조합에 대해 김다민·김현은 “실제 남매”라고 최근 스포츠서울에게 알렸다. 공연 중 부부 연기로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사실 연습 땐 서로의 미간이나 공중을 바라보고 손 키스 장면에서는 자신의 손등에 입맞춤한다고.

◇ 어두운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예술적 세계관

김다민·김현은 실제 스케이터로 활동 중인 프로다. 김다민은 23.4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찬란하다나_DaNazzling’의 주인장이자 단편영화 ‘데드악셀’과 아이스쇼 ‘G-SHOW : THE LUNA’로 이름을 알린 배우다. 김현은 국내 최초 미디어아트 아이스쇼 ‘G-SHOW: Dragon Flower’에서 고난도의 스케이팅을 구한 스케이터다.

이들의 ‘안나 카레니나’ 합류는 예고된 스토리다. 4년 전 ‘G쇼’에서 호흡을 맞췄던 박규만 무대감독과 소치올림픽 피겨 스케이팅의 주역 김혜진의 추천으로 작품에 참여했다.

처음 스케이트를 신은 건 김다민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마냥 스케이트 타는 것이 좋아해서 빙상장을 찾았던 김다민을 따라 김현도 스케이터의 꿈을 키웠다. 이들의 부모는 남매의 꿈을 위해 천안에서 대전으로 이사했다. 학교생활과 잠자는 시간을 빼곤 둘은 항상 함께 움직였다.

타고난 재능과 감각도 무대를 빛내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김다민은 “어렸을 때부터 공연하는 것이 좋아했다. 부모님이 외출하신 사이 남매가 연극, 마술쇼 등 무대를 준비해 공연을 보여드리곤 했다”라고 소개했다. 두 퍼포머의 완벽한 호흡 비결이다.

◇ 흉내낼 수 없는 완벽한 케미…남매의 숨은 노력

김다민·김현은 ‘안나 카레니나’ 무대 구조상 스케이트가 아닌 인라인스케이트(롤러레이드)를 타고 연기한다. 빙상장에 익숙한 이들에게 주어진 숙제였다.

김다민은 “인라인스케이트를 신고 링크장보다 실력 발휘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리프트 코치도 없었기에 영상을 보며 모든 장면을 구성했다”라고 말했다.

연습 공간도 이들이 마련해야 했다. 김현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기 좋은 지상훈련 장소를 겸비한 작은 링크장을 찾았다. 하지만 매트가 없어, 부상 위험에 노출된 연습 과정에서 오로지 서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라고 전했다. 이에 김다민은 “‘목숨값’이라고 외치며 서로 의지했다”라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면 김다민은 180㎝로, 김현은 2m로 키 높이가 올라간다. 장비의 무게까지 더해, 페어 스핀 컴비네이션과 페어 리프트 등 고난도 기술을 선보일 때 부상에 노출됐다. 이를 사전 방지하기 위해 김다민은 다이어트를, 김현은 체중과 체력을 키웠다.

두 퍼포머의 노력으로 완벽한 호흡과 예술성을 겸비한 무대를 완성했다. 김다민은 “멋진 기술을 성공하면 박수를 받지만, 실수하면 민망하다. 매회 무대에 오르기 전 모스크바 스케이트장에 모여있다고 상상한다. 가끔 약간의 실수가 있기도 하지만, 그땐 부부싸움처럼 연기하곤 한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 ‘안나 카레니나’로 마주한 미래…꿈★은 계속된다

김다민·김현은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기존 무대에서 확장된 미래를 설계했다.

스케이터로서 다양한 무대에 섰던 김다민은 “뮤지컬과 공연 기획, 퍼포머와 배우는 나 스스로에게도 가장 관심거리다. 재작년 에르메스 행사에서 인라인스케이트 퍼포먼스를 펼쳤을 때 내 머릿속에 무대를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가 됐다. ‘G쇼’를 포함해 스케이터, 짐벌 오퍼레이터로서 장황하게 스토리를 푼 경험도 있다”라며 “유튜브 등 SNS 공연 기획과 플레이어가 되고 싶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서의 도전은 계속됐다. 김다민은 “국가대표는 못 됐지만, 피겨 스케이팅에 미련이 남아있다”라며 “솔로 아이스 댄스라는 종목이 신설됐다. 잘 준비해서 도전하고 싶다”고 내일의 무대를 그렸다.

스케이트가 좋아 시작한 무대에 매료된 김현은 서울예대 연기 전공으로 재입학하며 배우의 꿈을 실현하고 있다. 그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스케이터로 참여하고 있지만, 배우·댄서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며 “회식 때 제작사 이사님께 ‘내년에 또 뵙겠습니다’라고 인사했다”라고 은밀한 거래 성사를 기대케 했다.

그는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처음 접한 연기하는 공연이다. 뮤지컬 작품에 참여하면서 노래와 연기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졌다. 그래서 지난주부터 노래 레슨을 시작했다”라며 “매체와 무대를 가리지 않고 배우로서 정식 연기하고 싶다. 처음 관람했던 뮤지컬 ‘모차르트!’와 ‘빨래’ 무대에 설 날을 그리며 실력을 단단하게 다지겠다”라고 전했다.

남매의 공통된 꿈에 대해서는 “감사한 분들 덕분에 이렇게 무대에 오르고 있다. 언젠간 감사함을 돌려드리는 사람이 돼야 한다”라며 “훗날 남매 이름으로 재단을 설립해 우리도 재능 기부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한다”라고 최종 목표를 밝혔다.

김다민·김현은 “대회장에서 떨려서 남매의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셨던 어머니가 ‘안나 카레니나’를 끝까지 관람하시고 박수를 보내주셨다. 우리가 꿈꾸면 길이 열리도록 도움 주신 온 가족과 재능기부로 도움을 주셨던 모든 분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스케이트장 신에서 관객들의 눈을 바라보면 퍼포먼스를 즐긴다는 김다민·김현은 “우리는 공연 속 공연에서 우리 남매가 등장할 때 어두운 극이 잠시 환해졌다가 죽음까지 간다. 비록 5분의 무대이지만 50분 같은 감동을 관객들에게 잘 전달하고 싶다”라며 “서로의 에너지 덕분에 퍼포먼스를 완성할 수 있다. 우리도 이 순간만큼은 재밌게 즐기고 있으니, 관객분들도 함께 즐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김다민·김현 남매가 스케이트로써 웅장한 울림을 선사하는 러시아 특유의 철학적 메시지와 방대한 서사를 담은 ‘안나 카레니나’는 오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gioi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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