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줄평: 누구의 청춘에도 있었을 은중과 상연, 그래서 더 쓰라리고 아름답다.
[스포츠서울 | 위수정 기자] 넷플릭스에 한번에 공개되는 작품은 보통 몰아보기의 유혹을 부른다. 그러나 ‘은중과 상연’은 달랐다. 한 회를 보고 나면 바로 다음 회로 달려가지 못했다. 오히려 멈추어야 했다. 은중과 상연, 두 사람이 걸어온 길 위에 잠시 앉아 숨을 고르고, 그들의 속도에 나를 맞추어야 했다. 누구도 미워할 수 없는 은중이와 상연이. 그렇게 천천히, 그러나 깊이 그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지난 12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오리지널 시리즈 ‘은중과 상연’(연출 조영민, 작가 송혜진)은 1990년대 신도시에서 처음 만나 마흔을 넘긴 지금까지 얽히고설킨 두 친구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은중(김고은 분)과 상연(박지현 분)은 서로를 동경하고 질투하며, 때로는 사랑만큼 깊은 우정을 나누기도 하지만 끝내 원망과 상처로 등을 돌리기도 한다.

은중과 상연의 관계는 단순히 우정이라고 정의할 수 없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로를 선망하고, 또 원망하며 켜켜이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은 시간이 쌓였다. 동경과 질투, 사랑과 미움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낸 감정의 풍경은 마치 두 사람의 일기장을 훔쳐보는듯한 친밀함으로 다가온다.
‘은중과 상연’은 긴 호흡으로 천천히 나아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에서 보기 드문 1시간 분량의 15부작이다. 최근 미드폼 형식의 8~12부작 작품 유행과도 다르다. 드라마는 강렬한 사건보다 감정에 집중한다. 은중이 무심히 건넨 말이 상연의 가슴에 깊은 흉터로 남고, 상연의 집착 어린 애정이 은중을 더 아프게 만든다. 두 사람의 인생은 엇갈리고, 다시 만나고, 또 멀어진다. 그 끝에는 죽음을 앞둔 상연의 마지막 부탁인 “나와 함께 스위스로 가 달라”는 청원이 놓인다.

‘은중과 상연’은 두 배우의 연기에 의해 비로소 완성된다. 김고은은 늘 흔들리지 않는 은중의 중심을 단단하게 붙잡는다. 박지현은 끝없이 흔들리는 상연의 마음을 변화무쌍하게 그려낸다. 두 배우가 보여주는 눈빛과 목소리, 고개 돌리는 사소한 동작 하나까지 시간이 켜켜이 스며 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은중이고, 상연이라는 사실을.
시청자들은 벌써 이 작품을 ‘인생작’으로 꼽는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김고은과 박지현의 연기만으로 15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끝내는 그들의 이야기에 내 추억까지 겹쳐졌다”는 감상평이 줄을 잇는다.

‘은중과 상연’은 공개된 직후에는 큰 반응은 없었다. 그러나 입소문을 타고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발표에 따르면 TV-OTT 통합 드라마 화제성에서도 2위에 올랐고, 주연 배우 김고은, 박지현은 출연자 화제성 부문에서 나란히 상위권에 자리했다. 단순한 성과보다 중요한 건 이 작품이 남기는 감정의 잔향이다. 삶이란 늘 모순과 이율배반으로 얽혀 있음을, 선망과 원망, 사랑과 미움이 사실은 같은 자리에서 자라남을 드라마는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서 은중이 죽음을 앞둔 상연의 손을 꼭 잡고 속삭인다. “고생했어. 잘 가. 다시 만나.” 그 순간, 드라마는 단순한 서사가 아니라 우리 삶의 기억 한 조각으로 옮겨온다. ‘은중과 상연’은 끝났지만, 두 이름은 오래도록 귓가에 남는다. 그 여운이 바로 드라마의 진짜 힘이다. wsj0114@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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