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용일 기자] “축구협회장은 바깥일 잘해야 한다.”

16일 서울 신문로에 있는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제2회 K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공헌자 부문에 헌액돼 모처럼 공식 석상에 등장한 정몽준(74)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및 아산재단 이사장은 시종일관 뼈 있는 메시지를 던졌다. 현재 한국 축구 수장인 ‘사촌동생’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장내에서 바라봤는데, ‘채찍’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냈다.

정 명예회장은 한국 축구사의 입지전적 인물이다. 1993년 축구협회장으로 취임한 뒤 강력한 리더십과 지혜로운 외교력으로 이듬해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에 당선했다. 2010년까지 16년간 집행위원으로도 왕성하게 활동, 국제 무대에 제 목소리를 냈다. 그사이 2002 한일월드컵 유치와 더불어 A대표팀에 사상 첫 외인 사령탑인 거스 히딩크 감독을 선임해 4강 신화를 이끌었다. 또 월드컵 개최를 기점으로 국내 축구 인프라 개혁을 주도했다.

한국 축구의 근간인 프로축구 K리그의 뼈대를 구축한 것도 정 명예회장이다. 1994년부터 1998년까지 프로축구연맹 회장을 역임하며 리그 타이틀 스폰서 제도와 지역 연고지 정착 등을 이뤄냈다.

정 명예회장의 추천인으로 무대에 오른 김호곤 축구사랑나눔재단 이사장은 “정 회장께서는 늘 한국 축구가 국제 무대로 나아갈 길을 고민했다.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한 사회의 문화이자 미래’라는 말씀을 하셨다. 축구로 국민에게 자긍심을 심어줬고, K리그와 한국 축구의 오늘을 있게 해준 분”이라고 말했다.

축구인 모두에게 공을 돌린 정 명예회장은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다”며 잠시 숨을 골랐다. 그는 “먼저 선수, 지도자에게 부탁한다. 우리나라의 FIFA랭킹이 23위다. 일본은 17위더라. 2002 월드컵 때 우리는 4강, 일본은 16강까지 갔다. 우리 실력이 지금보다 나아져야 하지 않을까. 조금 더 분발해달라고”고 했다. 또 “축구 행정하는 분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2002 월드컵을 일본과 공동개최한 건 당시 내가 FIFA 부회장에 당선돼서 가능했다고 본다. 축구협회장에 당선한 뒤 축구인에게 ‘내가 할 일이 무엇이냐’며 ‘여러 행정이 있지만 그건 여러분이 하면 된다. 회장은 바깥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면서 “FIFA 부회장 선거 당시 모두 잘 안될 것으로 여겼다. 아시아 회원국이 30여 개국인데 일본 북한 중국 등 극동 지역에서 (표를) 잘 주지 않는 것 같더라. 하지만 어려운 과정에도 11표를 얻어 2위에 1표 차이로 앞서 당선했다”고 강조했다.

실제 정 명예회장은 적극적인 외교와 도전 정신을 앞세워 축구계 다방면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냈다. 현재 축구협회는 정몽규 회장이 네 번째 임기를 보내고 있지만 아시아 내 중동세가 커질 때 뚜렷한 전략도 없고, 꾸준하지도 못한 외교전으로 질타받았다. 또 여전히 현장과 온도차가 존재하는 행정으로 각급 대표팀의 국제 경쟁력도 떨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주요 부서 실무자의 사기 역시 저하돼 있다. 반면 ‘백년대계’를 그린 일본 축구는 어느새 모든 면에서 한국보다 앞서 있다.

정 명예회장은 “당시 FIFA 집행위원이 21명이었는데, 2002 월드컵을 당연히 일본에서 하는 걸로 여기더라. 그때 한국은 월드컵 본선만 다섯 번 나갔다. 일본은 못 나갔다. 그들에게 ‘일본이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앞서도 축구는 우리가 앞선다’, ‘학교에서 학생을 뽑는 데 공부 잘하는 학생을 안 뽑고 집안에 돈이 많은 학생을 뽑는 것과 같다’ 등 되는 말, 안 되는 말로 설득했다. 결국 공동 개최했다”고 떠올렸다.

이루고자 하는 것에 강한 집념과 진심 어린 태도가 축구 발전의 변치 않는 밀알임을 강조했다. ‘축구계 큰 어른’의 호소에 장내는 한때 숙연해졌다. 끝으로 정 명예회장은 “내년에 미국에서 월드컵이 다시 열린다. 축구협회와 프로연맹, 팬 등 다같이 힘을 모았으면 한다. 우리나라가 좋은 경기를 통해 국민에게 다시 큰 기쁨을 줄 수 있게 모두 노력해달라”고 말했다.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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