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서지현 기자] “정말 괴물같이 생긴 X.”

영화 ‘얼굴’ 속 핵심 인물 정영희를 묘사하는 대사다. 인물의 내면과 달리, 결국 외면만으로 판단되는 ‘얼굴’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연상호 감독의 동명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하는 ‘얼굴’은 시각장애인 전각 장인 임영규(권해효 분)와 아들 임동환(박정민 분)이 40년간 실종됐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다. 11일 개봉했다.

영화는 ‘한국의 살아있는 기적’이라 불리는 임영규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시각장애인임에도, 아름다운 전각을 만들어내는 임영규의 사연은 모든 이들에게 귀감이 된다. 그러던 중 40년간 실종된 줄 알았던 아내 정영희(신현빈 분)의 시신이 발견된다.

임동환은 아버지의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던 김수진(한지현 분) PD와 함께 어머니 실종 사건의 전말을 추적하고 나선다. 모두가 입을 모아 “정말 괴물같이 생긴 X”이라고 하는 엄마 정영희의 정체는 무엇일까.

앞서 영화 ‘부산행’ 넷플릭스 ‘기생수: 더 그레이’ ‘계시록’ 등 SF와 오컬트 스릴러 등으로 콘텐츠계 한획을 그은 연상호 감독이 이번에는 묵직한 메시지와 현실감을 더해 ‘얼굴’을 선보였다.

임영규-임동환 부자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얼굴’은 김수진 PD의 취재에 따라 5개의 인터뷰와 1개의 클로징 멘트로 구성됐다. 엄마 정영희를 알고 있는 과거 인연들이 차례로 등장하며 그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방식이다.

그러나 “심성이 정말 착했다”는 말로 시작된 정영희에 대한 묘사는 결국 “정말 못생겼다” “괴물 같이 생겼다”고 끝을 맺는다. ‘인터뷰이’마다 정영희를 기억하는 시선도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짐이고, 누군가에게는 ‘염치없는 X’이다.

관객들은 이를 통해 정영희의 ‘얼굴’과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이어 ‘정말 정영희는 못생겼는가’와 ‘정영희를 죽인 이는 누구인가’라는 이중 미스터리를 함께 파헤쳐나가게 된다.

정영희의 얼굴에 대해 폭언을 퍼붓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사회가 정한 미(美)적 기준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정영희는 재단사를 성폭행한 청풍피복 백주상(임성재 분)의 악행을 폭로하지만, 결국 그는 ‘똥걸레’라는 치욕스러운 별명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정영희라는 인물이 지닌 선함과 정의성은 결국 그의 ‘얼굴’에 가려지고 만다.

반면 모두가 박색이라 욕한 정영희를 사랑한 이는 장님 임영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임영규는 누구보다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얼굴’을 보지 못하는 임영규가 외면의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모습 역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그에게는 내면의 선함보다 결국 자신이 볼 수 없는 외적인 미에 대한 집착과 광기가 새겨져 있다.

각 캐릭터마다 가진 ‘얼굴’도 다양하다. 아들 임동환은 외면하고 싶은 과거를 결국 덮어버리고, 이들 부자를 위로하는 척하는 김수진은 출세 욕망을 교묘하게 포장한다. 각자가 가진 내면과 드러나는 얼굴이 모두 다르다. 마지막까지 하나의 얼굴을 지닌 이는 모두가 ‘얼굴’로 비난했던 정영희라는 점은 가장 큰 울림을 준다.

다만 5개의 인터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는 속도감이 떨어진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여러 시선이 교차하며 장면이 반복되는 탓이다. 또한 각 인터뷰와 이후 클로징 멘트의 분량 배분도 기울어진다. 후반부의 다소 급한 전개도 아쉽다.

권해효의 노인 연기는 빛을 발한다. 극 초반부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권해효는 호흡부터 연기톤, 발성까지 모든 것이 노인의 모습 그 자체다. 젊은 임영규와 아들 임동환 사이를 오가는 박정민은 ‘역시’다. ‘짜증 연기 1인자’라는 수식어답게 퉁명스러운 아들 임동환과 시각장애인 임영규가 지닌 내면의 굴욕감을 자유자재로 오간다.

여기에 연상호 감독 특유의 실험적인 연출이 더해졌다. 특히 103분의 러닝타임 내내 신현빈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도 신선하다. 2억 원의 저예산으로 완성된 ‘얼굴’의 가치는 그 이상이다. sjay0928@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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