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고양=원성윤 기자] 다큐멘터리가 영화제가 될 수 있다는 증명한 사람이 있다. 바로 형건 PD다. EBS가 교육방송에서 ‘지식채널’로 전환하던 대격변기였던 2000년대. EBS국제다큐영화제(EIDF)를 꺼내 들어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이번엔 한발 더 나아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EBS가 함께 K-다큐를 세계로 수출하는 ‘K-독스’(K-DOCS)총괄 PD를 맡았다.
형건 PD는 최근 경기 고양시 EBS사옥에서 가진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다큐 영화는 감독만 있으면 안 된다. 프로듀서(PD)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촬영한 걸 법적인 부분을 해결하고 이를 해외로 끄집어내 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기획부터 제작, 편집까지 제작 단계별 맞춤형 제작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K-독스’가 제작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 “해외 다큐 판매, 편집 바꿔야 잘 팔린다”


‘K-독스’는 일종의 산업 현장에 가깝다. 다큐 감독들이 국내·외 다큐멘터리 산업 관계자들과 네트워킹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를 통해 국제적 감각에 한층 더 빠르게 다가갈 수 있다. 이는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를 비롯해 미(美) 공영방송 PBS 등에 영향받은 바가 크다. 이들이 추구하는 게 바로 ‘피칭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다큐 영화는 80% 이상이 글로벌 마켓을 통해 판매된다. 까다로운 해외 입맛을 맞추는 게 필수다. 최근 한국 다큐 감독들이 편집 감독을 해외 출신으로 바꾸는 것 역시 이런 이유에서다.
형 PD는 “북미나 유럽에서는 다큐를 해외에 팔 때 편집을 아예 바꾼다. 이는 해외에서 어느 지점에서 반응이 오는지 편집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배급사 등 극장 관계자가 모인 자리에서 투자자를 설득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필요하다. 이게 바로 ‘피칭’이다. 국내에선 5~6년 전에 아예 몰랐던 부분인에, 이제 서서히 자리가 잡혀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K-독스’ 다큐 감독 양성소를 꿈꾼다


‘K-독스’가 필요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형 PD는 “K-독스를 통해 선정된 6개 팀이 암스테르담 영화제에 함께 간다. 유명 프로듀서들과 1:1 미팅을 할 수 있게 연결해준다. 공동제작을 받을 기회까지 연결하는 게 저희들 몫”이라고 말했다.
내달 투자설명회도 앞두고 있다. 지난해 ‘K-독스’ 상금은 7억 4000만 원이다. 국내 최대다. 형 PD는 “공공 펀딩 기능으로서 볼 때 규모가 절대 적지 않다”며 “한국 다큐도 1인 다큐에서 스태프를 꾸리고 규모가 커지고 있기에 한국 다큐 감독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당장은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바로 지상파 방송사의 ‘외면’ 탓이다. 다큐 편성 비중을 현격히 줄였기 때문이다. 형 PD는 “지상파 방송사 대부분이 다큐를 50분 안팎으로 편성한다. 80분 안팎의 다큐 영화를 틀 수 있는 방송사 슬롯이 현저히 적은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다큐 영화 경험 위해서 영화관 열어야”


궁했기에 통한 것일까. 해외 다큐영화제에서 한국 다큐를 손짓했다. 암스테르담 다큐영화제 대상에 빛나는 ‘달팽이의 별’(2012) 이승준 감독을 비롯해 용산 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2010) 김일란 감독, 드렉 아티스트의 삶을 다룬 ‘모어’(2021) 이일하 감독 등이 그 주인공이다. 특히 김일란 감독은 지난해 ‘K-독스’에서 중·장편 다큐멘터리를 지원하는 ‘기획개발 피치’ 대상에 선정됐다. 1980~90년대 한국 트랜스젠더 여성을 찾아가는 영화 ‘마리네’는 의미있는 소재로 심사위원을 사로잡았다.
이런 반짝이는 감독을 발굴하기 위해선 토양을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 형 PD는 ▲방송사 PD들과의 협업 ▲극장 다큐 상영 등을 제안했다. 형 PD는 “방송사는 채널을 갖고 있다. 영어 등 언어적 장벽을 넘을 수 있는 PD도 많다. 해외와 협업하는 프로젝트도 많아 이 자원을 활용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큐 영화를 영화관에 트는 전략적 해법도 제안했다. 48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님아 그강을 건너지 마오’(2014) 같은 작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극장 경험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다큐 영화를 트는 극장에게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법도 거론될 수 있다.
“다큐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극장에서 보는 다큐만큼 좋은 게 없죠. 물론 쉽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아직 영화가 살아있다는 경험을 줄 필요가 있어요. 최근에 무주산골영화제를 다녀왔거든요. 故 정기용 선생 일대기를 다룬 정재은 감독의 영화 ‘말하는 건축가’를 보러 200명이 오더라고요. 14년이 된 작품인데도 말이에요. 그때 확신했어요. ‘K-다큐’ 시대가 반드시 다시 온다고 말이에요.” socool@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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