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개막식 첫 날인 지난 3일 부산국제영화제의 핵심 본진인 영화의전당과 해운대 일대는 대체로 한산했다. 지난해 해운대 모래사장에 쌓아올린 ‘아바타’ 샌드아트와 같은 이벤트는 찾을 수 없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영화제가 개최되는 시기로 느껴지지 않았다.

앞서 지난 5월 내부 인사 논란으로 이사장과 운영위원장, 집행위원장과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 위원 등 수뇌부가 집단 사퇴하는 파행을 겪었을 때만 해도 올해 영화제의 성공 개최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인사 파행 논란은 기업 협찬 삭감, 지자체 예산 삭감으로 이어졌다. 영화제의 자부심인 초청작 수가 대폭 줄었다. 설상가상 비슷한 시기, 항저우 아시안게임까지 열리면서 국민적인 관심이 분산됐고 참석하기로 한 배우들이 불의의 사고로 불참하는 우환을 겪었다.

그럼에도 10일 반환점을 돈 제28회 부산국제 영화제는 위기를 뚫고, 순항하고 있다. 한글날 연휴를 맞아 전국의 ‘시네필’이 영화제를 찾으면서, 활기찬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내부를 결집하고 영화제 개최를 위해 마지막까지 노를 저은 조직위원회의 노력이 뒤늦게 빛을 발하는 모양새다.

◇‘셀카 찍는 따거’ 주윤발, ‘하이프 보이’ 송중기, 홍보전선 나선 스타들의 맹활약

개막식 사회를 맡은 배우 이제훈의 허혈성 대장염 응급수술은 청천벽력이었다. 그러나 조직위원회는 이제훈과 더불어 공동MC를 맡기로 한 박은빈 단독 MC라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28년 부산영화제 역사상 최초 단독사회자라는 타이틀을 쓴 박은빈은 안정감있는 진행으로 개막식을 이끌며 이제훈의 공백을 메꿨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 송강호와 80년대 홍콩을 대표하는 액션스타 주윤발(저우룬파)의 만남도 영화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한몫했다. 국내에서도 ‘영웅본색’,‘와호장룡’등으로 숱한 중장년 팬을 보유하며 ‘따거’(큰 형님)라는 애칭으로 사랑받았던 주윤발이다. 한국 영화계 ‘따거’ 송강호가 아시아의 선배 배우 격인 주윤발을 예우하는 모습은 감동의 크기가 남달랐다.

기자간담회와 대관객서비스에 나선 ‘따거’의 품격있는 모습은 현장을 찾은 영화관계자들과 관객들을 매혹시켰다. 그는 개막식 때도 “빨리빨리”, “(사진찍기 전) 김치”라고 외쳐 웃음을 자아냈고 관객과 대화 시간인 오픈토크에서는 “사랑해요”라는 한국어 이사를 전하는가 하면 ‘아리랑’을 능숙한 한국어로 불렀다.

뿐만 아니다. 사진 촬영을 요청한 관객의 돌발요청도 즉석에서 수락하는 등 특급 팬서비스 면모를 보였다. 이날 부산국제영화제 행사 일환으로 핸드프린팅을 남긴 주윤발은 “홍콩에도 내 핸드프린팅이 없다”며 “누군가 내 핸드프린팅을 보고자 한다면 부산까지 와야할 것”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새 영화 ‘녹야’가 갈라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된 판빙빙도 화려한 의상을 차려입고 부산을 찾았다. 한동안 중국 내에서 자취를 감춰 각종 ‘가짜뉴스’에 시달렸던 그는 “삶에 있어서 기복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저 역시 스스로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고 힘들었던 시간을 에둘러 전했다.

2021년 신설된 액터스 하우스 코너에는 존 조와 송중기, 윤여정, 한효주가 빛냈다. 영화 ‘화란’으로 부산을 찾은 송중기는 지난 7일 영화의전당 야외무대에서 진행된 ‘화란’ 오픈토크에서 홍사빈, 김형서와 함께 뉴진스의 ‘하이프 보이’ 댄스를 깜짝 선보였다. 아울러 그는 객석에 직접 내려가 관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등 현장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이처럼 현장을 찾은 배우들의 발언이나 팬서비스가 영화제의 매력을 높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부산국제영화제 김형래 홍보실장은 “주윤발, 판빙빙, 고레에다 히로카즈 등 전 세계 영화인들이 분위기를 달궈준 것은 좋은 사례로 남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리볼버 릴리’의 아야세 하루카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같은 스타들이 계속 뜨거운 분위기를 이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올해의 대표작 ‘무빙’ 6관왕, 폐막까지 관전 포인트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OTT 콘텐츠가 영화제의 또 다른 중심축으로 떠올랐다. 2021년 신설된 온 스크린 섹션은 한층 더 풍성해진 라인업으로 돌아왔다. 이번 영화제에는 웨이브 ‘거래’, 티빙 ‘러닝메이트’, ‘운수 오진 날’, ‘LTNS’와 디즈니+ ‘비질란테’ 등이 초청됐다.

해당 작품과 연관된 제작진과 배우들은 부산을 찾아 각종 행사에서 작품을 홍보하는 데 힘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거래’, ‘비질란테’, ‘운수 오진 날’, ‘LTNS’, ‘러닝메이트’는 공식 예매가 오픈된 직후 빠르게 전석 매진을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2019년 신설된 ‘아시아콘텐츠어워즈’는 올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부산광역시가 공동 개최하는 국제 OTT 축제(International OTT Festival)와 협력해 ‘2023 아시아콘텐츠어워즈 & 글로벌OTT어워즈’로 확장됐다.

디즈니+ ‘무빙’이 올 초 뜨거운 화제를 모았던 넷플릭스 ‘더 글로리’를 제치고 작품상 격인 베스트 크리에이티브상을 포함해 6관왕을 차지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다만 영화제 초청작 수가 줄어든 가운데 영화제가 OTT업계의 홍보 창구가 된데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부산KNN건물에 넷플릭스 카페를 운영했고 웨이브는 거리 홍보, 디즈니+는 영화의전당 비프힐 외벽에 대형 광고물을 설치했다.

그럼에도 영화제의 꽃인 거장 감독들이 부산을 찾아 시네필들의 갈증을 해소시켰다. 뤽 베송,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와이 슌지 등 한국과 인연이 깊은 세계적인 거장들이 부산을 찾아 관객들을 만났다. 후반부에는 ‘드라이브 마이 카’ 등으로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도 부산을 방문한다. 폐막작은 주윤발과 더불어 80년대 홍콩 영화 전성기를 이끈 유덕화(류더화)주연 ‘영화의 황제’다. 공교롭게도 두 홍콩 배우가 부산의 문을 열고 닫게 되는 셈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은 총 269편. 지난해 354편과 비교하면 100편 가까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도는 상당하다. 오히려 지난해보다 좌석 점유율이 더 높아졌다는 전언이다.

김형래 홍보실장은 “매년 영화제마다 불거지는 영상 사고나 예매 사고가 현재까진 없다. 사전 준비가 비교적 철저했던 덕분이다”이라며 “작품 한정 규모가 줄기는 했지만, 좌석점유율은 예년보다 더 좋은 편이다. 결과가 끝까지 나와봐야 알겠지만,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영웅본색’이 상영되고 ‘영화의 황제’도 남아있다. 벡스코에서 진행된 ‘아시아 콘텐츠&필름 마켓’과 같은 비즈니스 행사도 활발히 진행 중”이라며 “앞으로 단속 더 잘해서 성공적인 행사로 마무리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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