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하은기자] “공감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도 숙제처럼 느껴질까 봐…여행은 숙제가 아니잖아요!”

지난달 24일 공개된 웨이브 드라마 ‘박하경 여행기’(극본 손미·연출 이종필)는 사라져 버리고 싶을 때 토요일 딱 하루의 여행을 떠나는 국어 선생님 박하경의 예상치 못한 순간과 기적 같은 만남을 그린 명랑 유랑기다.

총 8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시리즈로 이나영은 극중 평범한 고등학교 교사 박하경으로 분했다.

“제가 칭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라고 운을 뗀 이나영은 “주위에서 잘 말 안 해주던 사람들도 이번에 좋은 이야기를 해주더라. 좋게 봐주시고 공감을 많이 해주셔서 저의 바람이 통한 거 같아 다행이다”라고 담담하게 소감을 말했다.

‘박하경 여행기’는 tvN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2019), 영화 ‘뷰티풀 데이즈’(2018) 등을 선보인 이나영이 4년만에 복귀작으로 선택한 작품이라 큰 관심을 모았다. 대작 제안도 받았을테지만, 화려한 장르물 대신 소박하고 담백한 ‘박하경 여행기’를 택한 건 ‘사람 이나영’의 취향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였다.

“짜이지 않은 캐릭터와 시나리오의 신선함이 좋았다. 또 미드폼 콘텐츠가 많이 와닿았다. 이 시대와 잘 어울리고 소재도 편하게 잘 접할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시청자와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래저래 제겐 완벽했던 작품이다.”

‘박하경 여행기’를 통해 처음으로 OTT에 도전한 이나영은 “OTT 라고 해서 조금 더 신경을 썼던 부분은 없다. 팬데믹 이후에 이런 플랫폼에 익숙해진 거 같다. 장르와 소재가 다양해진 점은 좋다. 단순히 시나리오만 보고 전진하는 것 같다. 나는 단순한 사람이다”라며 웃었다.

박하경은 토요일 딱 하루 걷고, 먹고, 멍 때리는 여행에서 예상치 못한 다양한 사건과 특별한 만남을 통해 희로애락을 겪는 인물이다. 이나영은 부산, 해남 등 전국 각지의 자연을 배경으로 시각적인 힐링과 함께 행복, 외로움, 쓸쓸함, 공허함 등 한번쯤 겪어봤을 다양한 감정선을 담담하게 표현해 나간다.

그는 “처음엔 멍 때리는 표정만 잘 지으면 되겠다, 할 게 없겠다 생각했는데 감독님, 작가님과 시나리오 회의를 하면서 ‘이걸 다 어떻게 채워나가지? 큰일났다’ 싶었다”면서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마치 코믹 장르처럼 준비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나오는 연기가 재미있더라”라고 말했다.

큰 준비가 필요없는 일상의 연기라 오히려 더 긴장이 되기도 했다는 이나영은 “현장에서 오는 걸 다 받아들여야 했다. 상대방과 호흡에서 나오는 게 재밌더라. 모든 게 틀에 박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보는 분들이 아무 생각없이 볼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했다. 작품에 여백이 있어서 이 분위기 안에 시청자가 함께 들어왔으면 했는데 어느 정도 이뤄진 것 같아 기쁘다”라고 말했다.

‘박하경 여행기’의 또 다른 재미는 바로 화려한 특별출연이다. 구교환, 길해연, 박세완, 박인환, 서현우, 선우정아, 신현지, 심은경, 조현철, 한예리(가나다 순) 등이 매 에피소드 마다 등장해 극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이나영은 “나오는 분들마다 스토리와 분위기가 다 다르다. 감독님께서 8편의 영화를 하나씩 꺼내 보는 느낌이 좋을 것 같다고 하셨는데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알겠다. 뭔가의 감정을 느끼고 싶을 때 하나씩 꺼내볼 수 있는 작품인 거 같다”라고 말했다.

특별 출연진들과 호흡을 맞추며 어우러지고 더 성장할 수 있었다며 “한예리, 구교환, 심은경 등 각자의 호흡이 있는 배우들과 연기하며 그로 인해 받는 자극들이 좋았다”고 기억했다.

특히 평소 구교환과 연기하고 싶었다는 이나영은 “영화 ‘꿈의 제인’, ‘메기’를 보며 되게 희한하고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로미오’라는 단편을 너무 재미있게 봐서 만나자마자 그 이야기를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 ‘비포 선셋’ 같기를 바랐다. 지루하지 않게 호흡이 이어지는데 그 흐름을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제일 처음으로 촬영한 신이어서 더 긴장했는데 그 어색함조차도 이 드라마가 가진 매력이라 생각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나영 하면 연상되는 단어는 남편이자 배우 원빈, 그리고 신비주의일 것이다. 결혼 당시에도 워낙 톱스타였던데다 두 사람 모두 수려한 외모에 상대적으로 적은 작품 활동과 방송 출연으로 사생활이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늘 새롭기만 하다. 그러나 실제로 만난 이나영은 굉장히 털털하고 소탈해보였다.

작품 속 부산에서 밀면을 먹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던 중 이나영은 “부산에 가면 밀면 먹을 시간 없었는데 이번에 제대로 먹어봤다. 너무 맛있더라. 처음 먹고 너무 깜짝 놀라서, 감독님이 ‘컷’ 하실까봐 다 먹고 싶어서 빨리 먹었다”라며 해맑게 웃었다.

그런 천진난만한 이나영의 모습도 낯설지만 매력적이었다. 최근엔 ‘슈취타’ ‘인마이백’ 등 유튜브 예능에도 출연하며 이전에 보지 못했던 이나영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나영은 2015년 원빈과 결혼하고 같은 해 12월 첫 아들을 품에 안았다. 최근 경주로 세 가족이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며 “공교롭게도 ‘박하경 여행기’ 속 장소와 겹쳤지만, 사실은 몇 년 전부터 가기 시작했다. 예전에 수학여행만 생각하다가 가게 됐는데 다시 가니까 평화롭고 너무 좋더라”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냐고 묻자 “전혀 못 알아본다. 마스크 쓰고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가”라며 웃었다. 모두가 의아해하자 “주변에서는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 아니냐’라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옆에 있어도 모르신다. 사인 요청이나 사진 요청도 별로 없다”라고 말했다.

‘신비주의 부부’라는 시선에 대해서도 이나영다운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매번 인터뷰를 할 때마다 신비주의 아니라고 하는데, 기자분들이 헤어질 때 ‘신비주의 아니라는 걸 알겠다’고 하고 돌아가서는 기사를 그렇게 쓰시는 것 같다.(웃음) 그 카테고리 안에 넣고 싶어하시는 것 같기도 하다. 정말 평범한 일상이고 그 기준이 다를 수 있지만, 다 비슷비슷하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안 믿으시는데 어떡하겠나”라며 웃었다.

‘박하경 여행기’ 시나리오는 원빈도 함께 봐줬다고 했다. 이나영은 “시나리오 봤을 때도 같이 좋아해줬다. 저와 잘 맞는 작품이라고 하더라. 저도 막연하게 생각한 것보다 감독님께서 편집과 음악을 짜임새 있게 만들어주셔서 재밌게 봤다”라고 이야기했다.

자연스럽게 원빈의 복귀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원빈은 2010년 영화 ‘아저씨’ 이후 13년째 공백기를 이어가고 있다. 원빈의 복귀 여부에 대해 “그러니까요. 자꾸 저한테 물어본다”라며 멋쩍은 웃음을 짓더니 “열심히 시나리오를 보고 있다. 당연히 관심이 있고, 같이 좋은 영화를 보면 부러워하고는 한다. 나오시겠죠.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오랜만의 복귀에 대해 이나영은 “4년이 많이 길었나. 각자만의 호흡이 있는 것 같다. 어떤 걸 결정하고 행동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작품 ‘텀’을 정하고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기다리는 작품도 있고 하고 싶은 것도 열려 있다. (빠른 복귀를 위해) 더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박하경 여행기’ 시즌2 계획에 대해 “주변의 바람인데 좋게 보신 분들이 있다면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라면서도 “시즌2 제안이 온다면? 그래도 제가 박하경인데 제가 해야죠”라고 거침없이 말하며 미소지었다.

jayee212@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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