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본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본관. 제공|KBS

[스포츠서울 남서영 인턴기자]“제일 줄이기 쉬운 건가 싶기도 하고요. 반발하지 못한다는 걸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KBS가 2년째 여름휴가철에 진행하는 ‘혹서기 편성’으로 생계의 어려움을 겪었던 15년차 KBS 방송작가 A씨의 말이다. ‘납량특집’ 보다 무서웠던 ‘혹서기 편성’은 올해도 찾아왔다.

KBS는 최근 전국의 KBS 총국에 “7월말에서 8월초까지 1~2주 정도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대체 편성하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이 기간 동안 정규방송은 재방송과 특집으로 대체된다. 만성 적자로 비상경영에 들어간 KBS가 적자해소를 위해 꺼내든 궁여지책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방송작가유니온)는 17일 “중단기 결방은 방송작가와 같은 프리랜서와 비정규노동자들의 생계 위협을 초래한다. 왜 적자경영 해결을 위해 비정규직, 프리랜서들에게 일방적인 고통을 강요하는 것인가”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많은 프로그램의 제작이 중단·지연 된데다 ‘혹서기 편성’까지 더해지며 방송작가들은 올해 가장 힘든 여름을 앞두게 됐다.

A작가는 이름도 익숙지 않은 ‘혹서기 편성’에 대해 “예전에도 여름 특별프로그램 편성이 있긴 했었는데, 지난해 처음 혹서기 편성이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현재 근무하는 곳은 작년에 3주간 결방을 했고, 올해는 처음에 3주라고 들었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2주라고 조정이 됐다”라고 말했다.

정규 프로그램을 결방하는 과정에서 소속 작가들과의 협의는 없었다. 그는 “단순 통보다. 협의나 제의는 없다.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됐다’라는 말과 함께 편성은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거다”라면서 “억울하다. KBS에서 임의로 결방을 시키는 거니까. 또 고스란히 생계에 타격을 받으니까”라고 말했다.

‘혹서기 편성’은 무급휴직에 가깝다. 박봉의 작가들에게는 당장 생계의 위협이다.

그는 “한 달에 벌던 걸 생각하고 계획해서 움직이는데. 결방 때문에 한 달에 몇 번 임금이 뚝뚝 떨어져서 카드값도 못 내고 그랬다”면서 “그렇다고 쉬는 동안 다른 일을 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실제로 다른 방송사에서 일해봤지만, 방송국을 왔다 갔다 하기 위해 일을 조정하기 어렵다. 아니라고는 하지만 다른 곳에서 일하는 걸 피디들이 눈치를 준다”라고 고충을 전했다.

실제 프로그램을 하지 않아도 쉬는 시간이 아니다. 그는 “3주 결방하면 3주 쉬는 게 맞지 않나. 그런데 못 쉰다. 다음 방송 준비도 있고, 뭔가를 요구하기도 한다. 편집이 늦춰지면 오늘도 나왔다가, 내일도 나왔다가 한다”라고 말했다.

이번 ‘혹서기 편성’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은 방송이 송출되어야 임금을 받는 방송작가, 프리랜서, 계약직 직원들이다. 신분은 프리랜서지만, 직원처럼 10~20년간 매일 출퇴근을 하던 이들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전가된다.

A작가는 “(결방은) 오랫동안 되풀이되던 일이다. 지역국은 한 곳에서 10년, 20년 일하는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매일 같이 직원들이랑 똑같이 출퇴근을 하면서 일하는데 왜 작가들에게만 가혹한지 모르겠다”라면서 “제일 줄이기 쉬운건가 싶기도 하다. 심하게 반발하지 못한다는 걸 이용한다는 생각도 든다”라며 서글픈 심경을 밝혔다.

한편 KBS 측은 이번 혹서기 편성과 관련해 “여름 특별편성은 전사적으로 매년 실시해왔다”며 원칙적인 입장을 전했다.

혹서기 편성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 관계자는 “쉽게 바뀔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 목소리를 내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라고 말했다.

nams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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