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영과 서서아
여자 당구 스타 김가영(오른쪽)과 서서아가 지난 20일 서울 문래동에 있는 스포츠서울 사옥 스튜디오에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채 큐를 들고 포즈를 하고 있다. 강영조기자 kanjo@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오~ 예쁘다!(김가영)”,

“쌤(선생님)도 잘 어울리시네요(서서아).”

평소 훈련장에서 트레이닝복 차림에 큐를 든 모습이 서로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평소에도 자주 입기 어려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스튜디오에 차례로 등장한 두 당구스타는 입을 쩍 벌린 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때론 티격태격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셀카(셀프카메라)도 찍었는데 허물없이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친자매 같은 느낌도 든다. 김가영(37)은 이 얘기에 “서아 어머니와 내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난다”고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김가영은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 여자 당구 간판스타다. 1996년 입문한 그는 포켓 여왕으로 불리면서 지난 2011 WPBA 투어 챔피언십과 2012 세계 여자10볼 세계선수권, 2014 WPBA 마스터즈 등을 제패했다. 특히 2015년 차이나오픈 우승으로 여성 포켓 선수로는 처음으로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 석권)을 달성했다. 지난해엔 프로당구협회(PBA)를 통해 3쿠션 프로 선수로 전업, LPBA(여자부) 6차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전 세계 최초로 포켓과 3쿠션을 동시 제패한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서서아(18)는 ‘제2 김가영’으로 주목받는 포켓 기대주다. 열 두 살 때 정식으로 큐를 잡은 그는 2016~2018년 아시아포켓선수권 여자주니어 복식 3연패를 일궈냈고, 2018년 세계선수권 준우승을 달성했다. 그는 지난달 발표한 국내 랭킹에서 10대 선수로는 김가영에 이어 두 번째로 1위에 올랐다.

둘의 인연은 포켓의 역사 뿐 아니라 사제 관계로 이어진다. 지난 20일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스포츠서울 사옥에서 진행된 설날인터뷰에 나선 김가영과 서서아는 스승과 제자를 넘어 남다른 당구인으로 교감을 나눈 사연을 공개했다. 광주 출신인 서서아는 조선대사대부여고를 다니다가 지난 2018년 11월 자퇴한 뒤 김가영이 운영하는 서울의 포켓아카데미를 어머니와 찾았다. 서서아는 “그저 우상에게 꼭 배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정상의 선수인 김가영으로서는 특정 선수를 지도하는 데 고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서서아의 간절한 마음에 움직였다. 김가영은 “서아가 짐을 싸서 홀로 서울에서 자취하면서 배우겠다더라. 그 의지가 너무나 대단해서 내가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가영과 손을 잡은 서서아는 1년 사이 기량은 물론, 당구를 대하는 마음가짐까지 부쩍 성장했다. 지난해 무안황토양파배와 대한당구연맹회장배를 연달아 제패하면서 랭킹 1위에 올랐다. 서서아는 “선생님의 기술 뿐 아니라 실전에서 파이팅이나, 노하우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도움이 된다”고 했다. 김가영은 “서아의 가장 큰 장점은 당구를 대하는 태도다. 10대이나 ‘애어른’으로 불릴정도로 평소 워낙 진지하다. 그런 게 자기 관리로 이어지면서 경기력에 반영되더라”고 웃었다.

김가영과 서서아

김가영과 서서아

김가영은 서서아에게 당구 뿐 아니라 정신적 지주, 때로는 부모 역할까지 도맡는다. 선수 뿐 아니라 사회인으로 미래를 대비해 검정고시를 준비 중인 서서아는 훈련 외 시간엔 아카데미 사무국 김가영의 자리에서 공부에 몰입한다. 김가영은 “밖에서 혼자 지내면 끼니도 거르게 된다. 그러면 운동과 공부 둘 다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 않느냐”며 ‘엄마 포스’를 뽐냈다. 해프닝도 겪었다. 김가영은 “서아가 어느 날 자취방에 ‘몰카’가 달린 것 같다더라. 불 끄고 있으면 무언가 깜빡거린다고. 걱정돼서 확인해보니 화재 감지기에 나오는 불빛이었다. 자취방에서 홀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을 전혀 몰랐더라”고 웃었다. 서서아는 “그래서 가끔 내게 ‘바보’라고 놀리신다”고 받아쳤다.

서서아는 최근 스승이 3쿠션으로 전업해 단기간에 우승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그는 “당시 낮에 우리 레슨을 해주고, 밤늦게 (3쿠션) 훈련을 하시면서 강행군을 벌였는데 우승하셔서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웃었다. 김가영은 “솔직히 PBA에서 활동하면서 제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제자와 비교해서 난 좋은 대우와 환경을 지닌 프로에서 지내고 있지 않느냐. 지난 결승에도 서아가 와서 응원해줬는데 고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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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프로당구 6차 대회 우승에 성공한 김가영. 제공 | 프로당구협회(PBA)

서서아는 꿈이 있다. 포켓에서 세계 1인자가 되는 것 뿐 아니라 스승과 맞붙어 이기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국내 대회 우승했을 때 선생님이 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1등이 아니라고 여겼다. 큐를 잡을 때부터 언제나 목표는 선생님이었다”고 당돌하게 말했다. 그러자 김가영은 “다행이다. 지기 전에 (포켓을) 떠나서”라고 씩 웃었다. 그러면서 “사실 여자 선수들이 비인기 종목이어서 그런지 좋은 재능은 여러 명이 있었는데 뚝심을 갖고 오래 두각을 보인 선수가 없었다. 서아가 잘 성장해서 한국 당구에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다독였다. 그러자 서서아는 “가끔 선생님이 빨리 성장해서 ‘자기를 떠나라’라고 하신다. 좋은 의미지만 난 서운하다. 최대한 오래 곁에 머물면서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가영과 서서아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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