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중 혼자 밥 먹을 일이 많은 기자는 편의점에서 허기를 채우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편의점은 기자와 같은 ‘혼밥족’이 부담없이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식당인 셈입니다. ‘권오철의 편삼세’는 권 기자가 편의점에서 경험한 삼시 세끼를 줄여 이름을 붙인 코너로, 편의점 식당에서 판매 중인 음식들에 대한 체험기입니다. 각 제품에 대한 맛 평가 등 기자 개인의 견해가 포함돼 있음을 밝힙니다._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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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업계가 최근 100% 식물성 원료로 만든 비건(Vegun·완전한채식주의자) 전용 간편식을 출시하고 있다. 사진은 편의점 CU의 ‘비건 채식주의 도시락’ 세븐일레븐의 ‘언리미트 만두 김치·갈비맛’(왼쪽부터 시계방향). 사진 | 권오철 기자

[스포츠서울 권오철 기자] 국내에 도입된 지 만 30년이 된 편의점. 4만여 점포가 전국 곳곳에 들어서며 어느새 유통업계의 변화를 가장 쉽고 빠르게 경험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성장했다. 최첨단 기술 도입부터 최신 트렌드 적용까지, 편의점이 업계를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편의점이 최근 주목한 것은 ‘비건(Vegun·완전채식주의자) 간편식’이다.

세계 미국 시장조사기관 얼라이드 마켓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세계 대체 육류 시장 규모는 42억달러(약4조7500억원)였고, 2025년에는 75억달러(약8조5200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한국채식연합이 추정하는 국내 채식 인구도 2008년 15만명 수준에서 지난해 150만명으로 늘었다. 국내 푸드테크 스타트업인 지구인컴퍼니는 이달 현미, 귀리, 견과류 등 9가지 곡물로 만든 식물성 고기 브랜드 ‘언리미트’(Unlimeat)를 출시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는데?’

채식주의자 관련 소식은 평소 고기를 즐기는 기자에겐 ‘이웃 나라 미식가들의 이야기’로 들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편의점 CU와 세븐일레븐이 각각 지난 5일과 6일 비건 간편식 제품을 출시하면서 ‘비건’이란 생소한 단어가 피부에 와닿기 시작했다. 왠지 비위가 상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용기를 내서 수저를 비건 간편식을 향해 내질러 보기로 했다. 편의점 음식은 곧 내 식탁 위의 음식이란 생각에서다.

비건 간편식으로 CU는 도시락을, 세븐일레븐은 냉동만두를 출시했다. 하지만 아직 출시된 지 며칠 되지 않은 제품을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제품이 각 매장으로 도착하려면 반드시 점주가 일일이 발주를 넣어야 하는데, 아직 발주조차 넣지 않은 매장이 대부분이었다. 10일 집 주변 편의점 매장에 수십 통의 전화를 돌려 겨우 두 제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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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의 ‘비건 채식주의 도시락’ 개봉 모습. 사진 | 권오철 기자

먼저 업계 최초로 비건식을 출시한 CU의 ‘비건 채식주의 도시락’을 먹어보기로 했다. 통상적으로 편의점 도시락엔 전자레인지에 몇 분을 돌리라고 설명이 돼 있는데, 이 도시락은 그런 설명이 없이 ‘구매 후 바로 먹으라’고 돼 있었다. 용기는 플라스틱이 아닌 펄프 용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문제가 될 수 있는 비닐 코팅이 돼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후, 전자레인지에 2분간 돌렸다. 다른 도시락과 또 다른 차이점은 밥이 없다는 것. 반찬만 있었다.

‘채식주의자는 밥도 안 먹나’(채식주의자도 밥은 먹는다)라는 생각도 잠시, 단호박+콩고기+파스타(새송이버섯·방울토마토·바질·펜네·블랙올리브) 등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먹은 것은 콩고기다. 비건 음식에 대한 모든 불안감을 해소시킬 만큼 고소한 맛이었다. 육질이 부드러워 일반 고기를 씹는 식감이었다. CU에 따르면 해당 콩고기는 트랜스지방과 콜레스테롤 함량이 0%이며 단백질 함량도 높아 영양면에서 뛰어나다.

단호박도 ‘꿀맛’이었고, 그 아래에 놓인 병아리콩도 하나하나 달콤했다. 파스타의 구성품도 하나하나 남김없이 깨끗하게 비웠다. 다만 도시락 원재료에 들어간 양조간장이 일본산이라는 점이 내심 걸렸다. 그것만 제외하면 이 제품은 굳이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가 즐길 수 있는 한끼 다이어트 식사로 충분했다. 깔끔하고 질은 높은데 가격은 고작 3300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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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일레븐의 ‘언리미트 만두-갈비맛’ 사진 | 권오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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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일레븐의 ‘언리미트 만두-김치맛’ 사진 | 권오철 기자

세븐일레븐이 단독 출시한 냉동만두 ‘언리미트 만두’(갈비맛·김치맛 2종, 각 3500원)는 위에서 설명한 지구인컴퍼니가 대체 육류를 사용해 개발했다.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이 제품에 사용한 언리미트는 100% 식물성 고기로 단백질 성형 압출 기술을 통해 고기의 식감과 맛을 구현했으며, 소고기보다 칼로리·나트륨 함량이 낮고 단백질 함량이 2배 이상 높다고 한다.

과연 맛은 어떨까? 언리미트 만두 2종 모두 전자레인지에 3분간 돌려 조리를 완성했다. 1봉지에 동그란 만두 6개가 들어있었다. 먼저 ‘호호’ 불어가며 갈비맛 만두를 입에 넣었다. 얇고 쫄깃쫄깃한 만두피 속에 들어 있는 만두소는 일반 고기만두의 그것과 차이가 없었다. 그저 고기만두 맛일 따름이었다. 김치맛은 생각보다 매웠을 뿐, 언리미트가 완전히 고기를 대체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러다 먼 미래, 고기 없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이는 지나친 기우일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비건 제품은 점차 영역을 넓혀갈 것으로 보인다. CU와 세븐일레븐은 100% 식물성 고기로 만든 햄버거와 김밥 등도 이달 중 선보일 예정이다. CU는 순식물성 단백질 패티·번·소스를 적용한 ‘채식주의 버거’(2700원)와 참깨밥에 햄 대신 순식물성 고기, 유부를 토핑한 ‘채식주의 김밥’(2500원)을 내놓는다. 세븐일레븐은 옥수수 번스에 식물성 콩불고기 패티·소스를 사용한 ‘콩불고기 버거’(2800원)과 마찬가지로 식물성 콩불고기와 버섯 등으로 만든 ‘버섯콩불고기 김밥’(2400원)을 출시한다.

konplas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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