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바랜 월드컵 데뷔골이란 말이 똑 들어맞는다. 골을 떠나 생애 첫 월드컵 무대를 무색게 하는 활약으로 벨기에와 최종전은 물론 4년 뒤 러시아 월드컵의 희망을 품게 했다.
축구대표팀 공격수 손흥민은 23일 오전(한국시간) 포르투알레그레 베르나 히우에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 알제리와 경기에서 왼쪽 측면 날개로 선발 출전해 0-3으로 뒤진 후반 5분 값진 만회 골을 터뜨렸다. 한국 월드컵 통산 30번째 골이기도 하다. 그러나 팀이 수비진의 붕괴 속에 4골을 내주며 알제리에 완패하면서 웃지 못했다. 그러나 경기 내내 대표팀 막내답지 않은 기세와 개인 능력을 펼치며 한국 축구의 미래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월드컵이란 무대 자체가 수비의 안정 없이 공격의 시발점도 찾기 어렵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인 아시아 국가들로선 더할 나위 없이 안정적인 수비가 최우선이다. 그런 가운데 손흥민은 1-1로 비긴 러시아전에서도 수비에 역점을 둔 한국에서 가장 개인 능력으로 공격적인 힘을 발휘했다. 비록 월드컵 첫 경기를 치른 긴장감에 평소보다 힘이 들어가 결정적인 기회를 살리지 못했지만 국제축구연맹(FIFA)이 선정한 MOM(Man Of the Match)에 선정되기도 했다. 마침 예열을 거친 그는 이날 전반에만 3골을 내주며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상황에서 돋보이는 존재감이었다. 상대 경계대상 1호로 꼽히면서도 온전히 개인의 능력으로 알제리 수비를 위협했다. 킥오프하자마자 상대 맹공에 시달린 한국은 손흥민은 전반 10분 페널티박스 왼쪽을 돌파하며 분위기 전환에 성공했다. 그러나 손흥민 혼자의 힘으로는 알제리를 공략할 수 없었다. 좀처럼 수비가 불안하다 보니 손흥민과 그를 받쳐주는 다른 공격 자원도 수세적으로 나섰다. 그럼에도 대량 실점을 하면서 후반 들어서는 공격에 무게 중심을 쏟게 됐다. 바로 추격의 불씨를 살린 건 손흥민이다. 후반 5분 기성용이 후방에서 길게 찬 공을 페널티 아크 왼쪽에서 어깨로 돌려세웠다. 상대 수비수 마지드 부게라가 그의 슛을 저지하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금세 방향을 읽고 왼쪽으로 파고들어 골망을 흔들었다. 독일 분데스리가 4년 차 다운 노련한 골 결정력이었다. 하지만 기쁨의 세리머니는 없었다. 한국을 응원하기 위해 브라질로 날아온 서포터즈 붉은악마를 향해 두 손을 높이들고 큰 목소리를 유도한 뒤 묵묵히 하프라인으로 뛰어갔다. 만 22세 약관의 나이에도 그가 짊어진 무거운 짐을 느끼게 했다.
손흥민은 1-4로 뒤진 후반 26분 구자철의 만회 골이 터졌을 때도 간접적으로 이바지했다. 김신욱이 머리로 떨어뜨린 공을 문전에서 오른발슛으로 연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부게라가 가까스로 막아서며 공은 왼쪽으로 흘렀다. 이때 이근호가 문전에 있는 구자철을 보고 크로스해 두 번째 골로 연결됐다. 또 후반 추가 시간 페널티에어리어 내에서 재치 있게 공을 잡는 순간 상대 반칙성 플레이로 넘어졌다. 그러나 주심은 페널티킥을 선언하지 않았다. 머리를 감싸 쥔 손흥민은 억울해했다. 결국 그의 분전에도 더는 점수 차를 좁히지 못해 조별리그 통과에 먹구름이 끼었다.
영국 축구통계 전문매체 ‘후스코어드닷컴’은 이례적으로 대패한 한국의 손흥민에게 양 팀 통틀어 가장 높은 평점인 8.8점을 부여했다. 한국전 대승을 이끈 이슬람 슬리마니, 압덴무덴 자부, 라피크 할리시 등 알제리 선수들이 뒤를 이었다. 그만큼 그의 활약 자체가 인상 깊었다는 의미다. 손흥민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전반 초반 사소한 실수로 대량 실점해서 어려운 경기를 했다. 정신 바짝 차리고 했으면 더 좋았을 걸 아쉬움이 남는다”며 “후반에 나아진 모습이지만 후회가 남는 경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벨기에전은 각오가 따로 필요 없다.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며 정신무장을 다짐했다.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기사추천
0
![[SS포토]만회골 손흥민, '들어가야 해!'](https://file.sportsseoul.com/news/legacy/wyzmob/timg/l/20140624/l_201406240100139530008643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