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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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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색 유채가 반기는 봄이다.

[제주=글·사진 스포츠서울 이우석 전문기자] “오늘은 어디가냐?” 탑승권을 챙겨들고 줄을 서노라면 꼭 전화가 온다. 얼마전 김포공항에서도 그랬다. 평소 전화도 잘 없는,요새 일이 잘 안돼 힘없다는 친구가 이른 아침 댓바람부터 전화를 했다. “어 지금 제주도 비행기 탄다.” 0.1초간 답이 없더니 ‘남이 낀 이어폰’만한 소리가 흘렀다. “제주도라… 이야~ 좋겠다.”

“왜?”, “그냥 뭐 맛있고 미세먼지도 없을테고… 취재하느라 뭐 바쁘겠지만 잘 다녀와라.” 마음이 무거워졌다. 비록 출장길이라지만 제주도라면 뭔가 특혜받은 느낌이다. 특히 화창한 봄날에는 더 그렇다. 서울은 춥고 제주는 따뜻할 요 며칠 시기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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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제주도를 간다하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타지역과는 다른 뭔가 특별한 이미지가 박힌게 분명하다.

“어,지금 탄다,끊는다.” 잘라버린 마지막 대화가,풀죽은 그 녀석이,못내 마음에 걸렸다. 활주로에 비행기 바퀴가 닿자마자 ‘난 제주도 가본지 오래ㅜㅜ’란 카톡이 와있었다. 햐아~ 출장길에 마음의 짐을 제대로 얹어주는구나. 비록 1박2일 30시간 정도 머무는 일정이지만,더 잘보고 더 잘먹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오랜만에 제주를 찾을 이 녀석에게 좋은 팁을 줄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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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없어도 제주엔 봄이 온줄 알겠다. 들판도 점점 녹색물이 들어간다.

사실 미세먼지는 많았다. 당연히 날은 그리 맑지도 않았다. 살짜기 춥기까지 했다. 너무 일찍 일어난 터라 피곤했고 오는 과정도 유쾌하지 않았다. 사람은 많았고 셀프-체크인 키오스크는 버튼이 눌러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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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제주도에 대해 떠올리는 색이 있다. 이를테면 협재 바다의 하늘색이 그렇다.

거기서 시간을 끄느라 좌석 지정도 안돼 거의 맨 뒤쪽에 앉았다. 복수의 라이터를 찾아내라는 육중한 임무를 띤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는 중,(원래 있었는지도 몰랐던)그들은 가방속 라이터 한개와 소형 손톱깎이를 기어코 찾아내 빼앗았다.(이런 것을 모아 LNG화력발전과 제련용광로를 돌리는 모양이다) 카메라 렌즈가 많다는 이유로 따로 검색을 받았다. 요새 항공기 테러범은 손톱깎이를 들이대며 승무원의 새로 칠한 네일아트를 망치겠다고 위협한 다음, 24-70㎜렌즈로 조종석 문을 부수고 라이터 2개를 모아만든 폭탄을 터뜨리는 갑다.

김포공항에 흡연실이 없어졌다는 것을 들어와서 알게되었다. 내가 낸 공항 이용료 중에 ‘흡연실 이용료’까지 이미 포함된게 아니었던가?. 너무 일찍 들어와버린 나는 힘없이 게이트 앞에 앉아 흡연실을 없애버린 누군가를 저주하며 해태상처럼 이를 드러내고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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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해물뚝배기, 은갈치와 옥돔을 많이 먹었지만 요즘 제주도는 커피 한잔 마시고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많다. 방아간을 개조해 만든 커피숍 엔트러사이트 제주.

탑승이 시작됏다. 항공기가 이처럼 긴 줄 몰랐다. 거의 끝까지 가서 앉은 내 자리 뒤엔 ‘화가 단단히 난 중년 부부’가 있었다. 둘은 활주로에 진입하기 전부터 목포 상공을 지날 때까지,큰 목소리로 동창 누군가의 욕을 했고,그동안 나도 그가 저지른 나쁜 짓에 덩달아 비분강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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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에게도 제주 협재 바다가 숨막히도록 멋진가 보다. 아마 오스트리아 등 내륙국가 출신일 확률이 높다.

게이트가 거의 비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날개 대한항공은 기어코 우릴 활주로에 내려놓았고(왜?),가파른 계단을 내려와 위험천만한 버스를 타고 출구로 향해야 했다. 렌터카 업체는 셔틀버스를 늦게보낸데다가 거리는 멀었고 직원은 불친절했다. 누군가 직원과 이미 싸우고 있었다. “모두 덤벼!” 권아솔처럼 차례차례 모두를 상대하는 직원의 결기는 굳건하고 의연했다. 한참만에 받아든 렌터카는 내비게이션이 작동되지 않았지만,배차 담당 직원 역시 의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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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보름 정도 일찍 벚꽃이 만개했다. 전농로 벚꽃터널.

우여곡절 끝에 거리로 나섰다. 미소가 꽃망울처럼 터졌다. 역설적이게도 제주는 눈부시도록 화사했다. 근사한 풍경은 눈을 통해 보는 이의 감정에 이입된다. (육지에는 아직 없는)벚꽃이 흐드러진 거리는 아름다워,다이소나 GS25 간판도 새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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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벚꽃터널로 유명한 전농로.

제주의 벚꽃은 빠르다. 군항제보다도 10여일이 빠르다. 이젠 떨어지고 꽃잎 밖에 없겠지만,삼월의 벚꽃 터널은 무척 아름다웠다. 예전 제주 5일장이 섰다는 전농로는 제주 도심 왕벚꽃길로 유명하다. 당연히 가장 먼저 개화한다. 살짝 비탈이 진 1㎞가 넘는 거리는 서울과는 달리 포근한 분위기다. 벽에도 희고 고운 벚꽃을 그려놓아 하늘을 가린 실제 꽃송이와 퍽 어울린다. 왕벚나무는 제주도 자생종이다. 일본과 상관없다. 히토 히로부미나 아베 총리와도 무관하다. 마음껏 즐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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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도심 전농로에서 브라질에서 온 사람을 만났다. 요새 이런 일이 잦다. 아마 다음주 태안에서 룩셈부르크 인을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올라(Ola)!” 믿기 어렵겠지만 꽃길 아래서 브라질 사람들을 만났다. 예의 그 축구장에 나부끼던 녹색 깃발을 몸에 두르고 길거리에서 세하두(Cerrado) 커피를 내려서 팔고 있다. 상파울루에서 왔단다. 제주도에서 파울리스타를 다 만나다니. 커피와 꽃향기를 함께 맡으니 더욱 향긋하다. 아무리 한라산 소주가 맛있어도 제주의 꽃길을 걸을 땐 커피가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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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방산 아래 ‘유료’ 유채꽃밭, 밖에서 찍어도 돈을 받는다고 해서 물러섰다. 대신 차 안에서 찍었다. 추징당하려나?

산방산 앞 유채꽃도 제법 피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호밀밭의 파수꾼(?)’이 있다. 차에서 내리면 누군가 슬금슬금 다가온다. “꽃밭 밖에서 찍어도 돈은 받습니다.” 터무니없다. 돈 천원이 문제가 아니다. 뒤도 안돌아보고 차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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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보라 갯무와 유채가 자연스럽게 흐드러져 피어난 야생의 꽃밭.

산방산에서 중문으로 가는 길,유채꽃과 갯무가 흐드러진 아름다운 정원이 들판에 펼쳐졌다. 연보라색 갯무,노란 유채꽃과 그리고 작은 야생화. 화사한 실로 짠 직물같은 꽃밭. 어찌보면 보색인데 색상의 조화가 근사하다. 마음 속으로 ‘미소니(Missoni) 꽃밭’으로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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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의 색 향연이 펼쳐진다.

어느 한쪽엔 유채,또 다른 쪽엔 갯무. 이렇게 조성해놓은 것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꽃밭이다. 사실 국내에서 금대봉 만항재 등 몇몇을 제외하고 이런 천연 꽃밭을 만나기란 쉽지않다. 주변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 팬을 찾기처럼 매우 드문 풍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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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름다운 야생의 꽃밭에 니트의류가 유명한 브랜드 ‘미쏘니 정원’으로 이름붙였다.

왕벚꽃이 다 떨어졌대도 가시리 녹산로는 괜찮다. 손톱만한 연분홍 꽃잎이 바닥을 덮고 길을 따라 유채꽃이 가득 피어있으니 말이다. 유채와 벚꽃이 한데 어우러졌다. 개화시기가 비슷한 이 두 꽃을 심어놓은 곳은 많지만 이처럼 긴 꽃길은 드물다. 같은 노란색인데 유채꽃은 급커브 표지판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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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과 유채꽃이 함께 피어나는 길 녹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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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름다운 길에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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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비까지 내리면 비현실적 풍광이 펼쳐질테다.

하늘 아래 두가지 색상이 하나의 소실점으로 멀어진다. 이길엔 빨간 스포츠카가 달렸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시퍼런 트럭이 달린대도 멋지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2년 연속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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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리는 아마 위성에서 노란 점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약 10㎞ 정도 이어진다.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이지만 운전자도 경적을 누르거나 뭐라하지 않는다. 오는 내내 고운 꽃을 봐서 마음이 따뜻해진 덕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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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리 유채꽃 군락지. 황홀하다.

길은 곧 가시리 조랑말 체험공원으로 이어진다. 이곳은 유채꽃 군락지다. 약 10만㎡(3만 평)이 죄다 노란색이다. 위성에서도 노란색 점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어른 키만큼 자란 유채꽃밭에 그야말로 파묻힐 수 있다. 흰옷을 입고 들어갔다 나오면 벌써 샛노랗게 물들 것같은 진노랑이다. 고흐가 사랑했던 해바라기의 그, 토종란을 반숙으로 부쳤을 때의 그, 그 노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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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의 끝은 결국 사람의 미소가 장식한다

꽃밭 곳곳에 하트 등 장식이 있지만 최고의 그림은 바로 꽃과 사람이 연출한다. 눈부신 노란색 꽃밭에 들어서서 저마다 반짝이는 미소를 짓는다. 천여 명이 한꺼번에 짓는 함박웃음은 어떤 꽃보다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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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이 제주도를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제주도 토속음식 뼈접짝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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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고사리가 났다. 제주 산과 들이 풍성한 계절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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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이 제주도를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제주도 가시리 조랑말테마공원 마을 카페 영귤에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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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랑말체험공원에서 ‘말모이’를 주는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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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중문에서 생선조림과 탕으로 맛있는 덕승식당. 제주 사람들이 쉬쉬해가며 안알려준다는 집을 기어코 찾아갔다. 칼칼한 맛의 갈치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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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이 제주도를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중문 닭집 앞 할아버지도 뭔가 다르다.

제주도는 그런 곳이다. 여행은 번거롭고 귀찮다는 이들이 제법 있지만 넉넉한 품을 지닌 제주도는 그런 고충을 단번에 잊어버리게 만든다. 멋과 맛, 그리고 일상에선 쉽게 경험하기 힘든 ‘다름’으로 지친 ‘육지인’들을 치유하는 마력을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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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이 제주도를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바나나맛 우유도 크다. 중문 바나나카페.

한국인에게 제주도는 보물이다. 한반도 어떤 곳과도 다른 풍광과 기후,맛,말씨를 지닌 덕에 가장 가까운 ‘해외여행지’로다. 불과 1시간이면 도착하는 외국 도시도 많지만,간편한 국내선을 이용한다는 점은 어느 곳도 따라갈 수 없다. 설사 라이터와 렌즈, 손톱깎이를 하나도 가져갈 수 없다하더라도,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다. 제주도는.

demory@sportsseoul.com

제주사진여행명소_리플렛앞면
제주사진여행명소.

한국관광공사 제주지사(지사장 신희섭)는 봄여행주간(4월27~5월12일)에 맞춰 제주도만의 다양한 특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제주에서 봄빛 담아가기’라는 주제로 운영하는 지역 특화 프로그램은 최근 여행객들의 트렌드를 제대로 반영했다. 일단 “남는 건 사진 밖에 없다”는 천고불변의 여행 격언을 똑똑히 새겼다. 전문 사진작가와 함께 제주 봄 사진명소를 돌아보며 사진 촬영 노하우 등에 대해 배우는 ‘제주 담은 감성사진 도시락’,사진여행 이벤트 ‘제주를 닮고, 제주를 담다’ 등 ‘인증사진’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준비했다.

이와함께 제주도 특유의 청정자연을 누릴 수 있는 행사도 마련했다. 주민 해설사와 함께 하는 마을 관광,토속음식 체험,곶자왈 트레킹,문화공연 등 ‘에코파티’가 지역 곳곳에서 진행된다. 미리 여행주간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참가할 수 있다.

제주사진여행명소_리플렛뒷면
한국관광공사 제주지사가 펴낸 제주사진여행명소. 보물지도처럼 지니고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

한편 제주지사는 지난해 말 한국관광공사 ‘관광빅데이터센터’의 분석을 토대로 제주도 사진 여행명소 40곳을 선정했다. 이를 제주 동서남북권으로 나누고 계절별로 분류한 리플렛을 발간했다. 보물섬 제주여행의 ‘보물지도’가 생긴 셈이다.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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