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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대 사케축제 ‘2019사케노진’이 일본 니가타에서 열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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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케로 유명한 일본 니가타 현의 양조장 대부분이 참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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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케를 종류대로 실컷 맛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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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큰 술집이 되버린 니가타 도키메세 컨벤션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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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타(일본)= 글·사진 | 스포츠서울 이우석 전문기자] 어려서부터 술이 좋았다. 많이도 마셨다. 연간 350일 정도 씩 30년을 마셨다. 여태껏 마신 술을 다 부으면 아마도 캐리비안베이 정도는 쉽게 채울 것이다.매년 일본에서 ‘술 잔치’가 열린대서 귀가 솔깃했다. 니가타 사케노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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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T상품(하나투어)으로 사케노진을 방문하면 사케 전문가 멘토로부터 해박한 지식까지 얻어갈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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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미국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SIT(특수목적여행·Special Interest Tourism)상품의 일환으로 하나투어가 출시한 ‘사케노진 탐방’ 일정에 따라갔다. 3박4일간 약 150만원 정도 고부가가치 상품이지만 참가자가 꽤 됐다. 그만큼 취미나 취향에 대해선 기꺼이 지갑을 연다는 소리다.벼르고 별러 지원했다. 역시 술 좋아하는 친구도 한명 꼬셨다. 대번에 넘어갔다. 둘은 빈속으로 니가타 행을 준비했다.팟캐스트 ‘말술남녀’를 진행하는 전통주박물관 명욱 부관장과 박정미 강사가 멘토로 동행했다. 두 멘토는 사케 소믈리에 격인 기키자케시(唎酒師) 자격도 보유했을 뿐 아니라 전통주·와인 등에 박식한 주류 전문가다. ‘조젠미즈노고토시 준마이신조 도쿠센 야마다니시키’가 무슨 뜻인지 알아듣게 해줬다.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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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대 사케축제란 명성답게 외국인도 많이 찾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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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사케노진“세계에서 가장 큰 술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명욱 부관장이 전시장을 등진 채 양팔을 벌렸다. 일본 니가타 현 도키메세 컨벤션센터에선 8~10일 ‘2019사케노진’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케노진(酒の陳)이란 이름 그대로 술들이 진(Squad)을 구축했다는 뜻이다. 일년에 한번, 술빚기가 끝나는 3월에 니가타현의 90여개 양조장이 모여 햇술을 모아놓고 펼치는 사케축제다. 시음이며 구매까지 한꺼번에 이뤄진다. 니가타현주조조합이 2004년부터 시행, 이젠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잘 알려진 세계적 축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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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코(사케잔) 하나만 있으면 마음껏 시음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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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하는데만 1시간 30분. 꽤 너른 전시장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올해는 하루 8만명이 방문한다고 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자 달큰한 사케 향 속에 잠기는 기분이다. 독일 맥주축제 옥토버페스트에 비견될만한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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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케노진’이 열리는 동안 도키메세 컨벤션센터는 세상에서 가장 큰 술집으로 변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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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빼고도 술 깨나 좋아하는 이들이 모두 모인 듯하다.(실제 한국에서 온 이들도 제법 있다) 왜 이리 열광할까. 당연하다. 입장료 2500엔에다 전용잔 조코(2000엔)를 사면 모든 술을 무제한 시음할 수 있다. 아예 목에 걸고 다니며 각 양조장의 시음코너에서 잔을 내밀면 술을 따라준다. 하루종일 쉬어가며 다양한 브랜드와 클래스의 술을 두루 음미하며 비교해볼 수 있다. 안주거리도 팔지만 중간중간 물로 입을 헹궈내는 것이 좋다. 낮술이고 해서 더 빨리 취할 수도 있다.
쉬어가며 마셔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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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사케노진’에는 다양한 양조장이 각자의 브랜드를 달고 참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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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3대 사케 산지로 꼽히는 니가타 현의 양조장(총 92개소)은 주로 담백하고 깔끔한 맛, 즉 단레이(淡麗)가 특징이다. 명욱 부관장은 “시나노강 유역 평야에서 나는 쌀도 좋고, 설국 별칭답게 눈녹은 물이 좋아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설명했다. 박정미 강사 역시 고급인 “긴조(吟釀) 이상급에선 니가타 산이 종류도 생산량도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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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대 사케축제 ‘2019사케노진’에는 하루 8만명 이상이 동시 입장하는 등 성황을 이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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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내외에서 유명한 조젠미즈노고토시(上善如水), 고시노간바이(越の寒梅), 구보타(九保田), 기린잔(麒麟山), 핫카이산(八海山), 셋추바이(雪中梅), 시메하리츠루(メ張鶴), 호쿠세츠(北雪), 마노츠루(眞野鶴) 등이 죄다 니가타 산이다.(한자가 눈에 밟히면 이 링크로 http://www.sportsseoul.com/news/read/7403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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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가카현에서 생산하는 사케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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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사케에 대해 설명하자면, 사케는 쌀의 도정율에 따라 긴조(吟釀), 다이긴조(大吟釀)로 나뉘고, 첨가물에 따라 준마이슈(純米酒)와 혼조조슈(本釀造酒) 등으로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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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이상 깎아내버린 주조용 쌀. 야마나니시키 품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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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조용 쌀을 현미상태에서 50% 이상 깎아내고 심백(心白)만 남겨야 다이긴조라 부를 수 있다. 상식과는 달리 쌀 겉에 있는 단백질과 지방 등 영양분을 몽땅 도정해 전분만 남겨야 오히려 맛이 깔끔하고 향이 좋다고 한다. 많이 깎을수록 화사한 특유의 향이 난다. 생산원가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30%만 남긴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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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슬 취한 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일본에선 보기힘든 풍경이지만 사케노진에선 아무렇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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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슬 취한 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일본에선 보기힘든 풍경이지만 사케노진에선 아무렇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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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마이는 쌀과 누룩으로만 빚어 발효시킨 것을 뜻한다. 이에 반해 주정에 물을 타고 양조용 알콜을 섞어 맛을 내는 것을 혼조조라 한다. 박정미 강사는 “준마이가 더 고급이지만 맛은 꼭 그렇진 않다. 개인 취향 껏 즐기면 된다”고 조언했다. 이외에도 도쿠센(特選), 죠센(上選) 등으로 소위 클래스를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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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슬 취한 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일본에선 보기힘든 풍경이지만 사케노진에선 아무렇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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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찍어준 12개 양조장 부스를 모두 돌았다. 브랜드는 500여 종이다. 지난해 추수해서 담근 술도 지금 나왔다. 사람도 많은데다 잔술로 연신 들이켜다보니 어질어질하다. 특산물 안주를 파는 곳이 곳곳에 있지만 한잔이라도 더 마시려면 부지런히 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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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슬 취한 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일본에선 보기힘든 풍경이지만 사케노진에선 아무렇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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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불콰하게 취한 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자는 이들도 있다. 소리도 점점 커진다. 술이 들어가니 어떤 축제보다 흥겹다. 바깥에는 아예 ‘뻗어버린’ 이들도 있다. 가히 술꾼의 천국이라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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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케노진 현장에선 다양한 특산 먹거리로 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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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감질나게 ‘지미콜 컵’만한 양으로는 도저히 모자라 결국 시내로 달려 나갔다. 니가타 시내엔 원하는 사케를 맘껏 마실 수 있는 식당이 수두룩하다. 사케노진에서 맛본 술을 골라 병째 마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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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가타는 설국으로 유명하다. 3월 중순이지만 산간지역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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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서쪽에는 이미 봄이 내려와 앉았다. 사케도 익었다는 소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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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케 이외에도 볼거리가 많다. 니가타 북방민족생활전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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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구비 모두 즐거운 니가타니가타(新潟). 눈과 쌀, 소금 삼백(三白)의 고장이다. 여기다 맑은 것을 두 개 더하자면 사케와 온천수다. 니가타 옛지명은 고시(越). 에도(東京)에서 고개를 넘었대서 에치고(越後)다.
고시히카리(越光)는 니가타의 특산 쌀이다. 1956년 후쿠이(福井) 현 농업연구소가 개발했는데, 니가타 우오누마(魚沼)에서 나는 것이 가장 최고로 친다. 하지만 사케는 고시히카리로 빚지 않는다. 야마다니시키(山田錦)나 고햐쿠만고쿠(五百萬石), 미야마니시키(美山錦) 등 주조용 쌀로 빚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정에는 유명 양조장 투어를 비롯해, 시음장 폰슈칸(ぽんしゅ館) 방문 등 사케와 관련된 것이 많다. 물론 숙취해소를 위한 온천욕도 매일 준비됐다. 이동 중엔 멘토로부터 레이블 읽는 법 등 사케에 관한 설명이 곁들여진다. 이동하는 사케 학교같은 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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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수목적관광답게 니가타의 양조장을 방문하고 사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배울 수 있다. 사진은 시라타키 주조의 양조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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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권은 양조장 방문이다. 에치고유자와 쪽 시라타키(白瀧) 주조와 니가타 시 인근 이시모토(石本) 주조를 갔다. 일반적으론 전시 판매장 밖에 못가지만 SIT여행일정답게 미리 섭외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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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층에 인기가 많은 니가타 명주 조젠미즈노고토시(上善如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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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젠미즈노고토시(上善如水)를 생산하는 시라타키 주조는 전 공정 참관을 허락했다. 쌀을 찌고 효모를 뿌리고 발효를 시켜 원주를 낸 다음 살균 병입하는 과정이다. 심지어 제조기술의 비법인 ‘효모’까지 맛볼 수 있도록 해줬다. 감사하는 마음에 관세법 상 일인당 한병까지만 허락된 술을 이곳에서 샀다. 조젠미즈노고토시 준마이다이긴조보다 저렴한 미나토야토스케(湊屋藤助) 큰병을 샀다.
조젠미즈노고토시는 여성들이 좋아하는 깔끔한 맛에 컬러풀하고 세련된 병 디자인 등 젊은 층에게 인기가 높다. 사케 성분을 이용한 동명의 화장품과 뷰티용품까지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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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가타 대표 사케 중 하나인 고시노간바이를 생산하는 이시모토 주조에서 양조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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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감사할 일은 다음날 생겼다. 고시노간바이(越の寒梅)의 이시모토 주조에선 기술책임자(CTO)가 안내하는 주조공정은 물론, 생산 사케 전 라인을 죄다 시음하고 직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사케 샤부샤부’까지 맛볼 수 있었다. 사케 샤부샤부란 국물 밑양념 대신 사케를 부어 끓여먹는 놀라운 방식이다. 그것도 최하(시로라벨) 급이 아니라 도쿠센(特選)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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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가타 이시모토 주조에서 멘토 명욱 부관장이 양조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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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사케를 솥에 콸콸 부어 샤부샤부 국물로 쓴다니…. 요리용 청주를 조금 써도 맛이 좋은데 아예 사케에 적셔먹으니 얼마나 호사스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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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시노간바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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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선 보기드문 돼지고기 샤부샤부인데 사케의 향긋한 맛이 배어들어 담백하고 고소하다. 게다가 쌀과 누룩만 쓴 준마이슈니 오죽 고급스러운 맛이 날까. 배를 두드리며 사방에 깔린 잔술과 고소한 돼지고기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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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폰슈칸 입구에는 주정뱅이 조형물이 있어 포토존이 되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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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케에 대해 좀더 알고 싶다면 유자와 역과 니가타 시내에 위치한 폰슈칸을 찾으면 된다. 이곳에선 다양한 주종을 시음할 수 있다. 유자와 역 구내의 폰슈칸을 찾았다. 입구부터 술취한 주정뱅이 인형이 드러누워서 방문객을 맞는다. 전날 사케노진 행사장에서 많이 목격한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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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자와역 구내 시음장 폰슈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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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500엔을 내면 잔과 코인 5개를 준다. 벽면에는 목욕탕 라커룸처럼 층층 붙은 500여개의 자판기가 있다. 레이블을 보고 골라서 코인을 넣으면 딱 한잔 정도의 사케가 나온다. 벽에는 폰슈칸 인기 사케 랭킹이 붙어있어 참고할 수 있다. 무료로 먹을 수 있는 된장(아카미소)이 있지만 이쑤시개로 먹어야하니 많이 먹을 순 없다. 대신 생 오이를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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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폰슈칸에선 자신이 좋아하는 사케를 골라 시음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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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타 센주와 계절한정 고시노츠루를 골랐다. 부드럽고 쨍한 맛이 난다. 선예도가 좋다. 전날 하루종일 마셨지만 낮술의 즐거움이 다시금 느껴지는 순간이다. 스키장이 있는 지역이라 그런지 유난히 젊은 커플이 많다(좋겠다). 일본에서 사케는 입맛을 대물림하고 있는 느낌이다. 맥주와 위스키의 도전 속에 이처럼 사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좋은 품질 개발과 마케팅의 역할이 아닌가 한다. 우리 전통주 업계에서도 폰슈칸 같은 곳을 설치해 내외국인에게 우리 술의 맛을 알렸으면 좋을 듯 하다.
술익는 마을 니가타에는 다양한 볼거리까지 있어 여행목적지로서 좋다. 아직까지 눈덮힌 높은 산과 뜨거운 온천이 수두룩하다. 어딜가나 동해(니가타는 동해에 면해있다)에서 잡은 싱싱한 해산물과 맛있는 쌀밥이 있어 먹는 걱정은 전혀 없다. 명물로 꼽히는 메밀국수 헤기소바와 한국인의 입맛을 충족시키는 매콤한 양념 간즈리, 가부라남방 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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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케 샤부샤부. 고급 고시노간바이를 통째로 부어 밑국물로 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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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관세법과 호주머니 사정 탓에 사케를 많이 사오진 못했지만 받아든 식탁 만큼은 결코 초라하지 않았다. 사케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또 즐기다보니 배도 머리도 부르다. 술과 음식에 인문학에 이래저래 취하는 봄날이다.
demory@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