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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십, FA컵 등 잉글랜드 전역에서 열린 축구 경기는 분침 끝자리가 ‘7’로 끝나는 시간에 킥오프했다. 이채로운 경기 시간에 국내 팬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반문할 법하다. 그러나 잉글랜드 뿐 아니라 세계 축구 팬들은 그때 그 사건을 가슴에 품고 있다. 힐스보로 참사(Hillsborough disaster). 올해로 25주년이다. 1989년 4월 15일 리버풀과 노팅엄의 FA컵 4강전이 열린 셰필드 힐스보로 스타디움에선 입구에 엄청난 팬이 몰려 96명이 압사하고 700여 명이 다쳤다. 경기장 이름을 따 힐스보로 참사로 불린다.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참사 25주년을 추모하며 당시 전반 6분까지만 진행된 뒤 사고로 경기가 중단된 기억을 떠올렸다. 모든 경기에서 6분까지 선수들이 입장하고 1분간 묵념한 뒤 7분에 킥오프를 진행하도록 했다.
◇ 23년 만에 밝혀진 진실
힐스보로 참사는 원인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으면서 해마다 논란이 이어졌다. 희생자 가족을 비롯한 많은 이들은 치안 당국과 일부 언론이 참사의 원인을 팬들의 난폭한 폭력 등 저급한 관전 문화로 몰고 간 것에 불만이 컸다. 그러다 2012년 9월 13일 피해자 가족과 힐스보로 인디펜던스 패널(HIP)이 2년이 넘는 조사 끝에 400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발행했다. ‘당시 경기장 치안을 책임진 남부 요크셔 경찰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200여개가 넘는 증언을 조작하거나 삭제했다’, ‘41명은 제대로 응급조치를 받지 못해 사망했고 법적인 책임을 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등이 주요 내용이다. 특히 진상조사위원으로 나선 빌 커커프 박사는 “28명의 사람은 혈류가 차단되지 않았고 16명은 심장과 폐가 오랫동안 기능했다는 증거가 있다”며 “얼마나 많은 수가 살아남았을지 장담할 수 없지만 대략 그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남부 요크셔 경찰청장, 영국 ‘더 선’ 편집장 켈빈 맥킨지 등이 고개를 숙였다. 피해자들이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점과 진실 규명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무책임한 보도를 일삼은 것에 대한 사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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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이념과 맞닿은 참사
참사의 궁극적인 원인은 훌리거니즘(Hooliganism·폭력적 군중 혼란)과 맞닿아 있다. 영국 언론은 훌리거니즘이 당시 마가렛 대처 수상의 강압적인 경제 정책으로부터 불거졌다고 주장한다. 또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도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당시 ‘철의 여인’으로 불린 대처는 공기업의 민영화와 더불어 살벌한 시장 논리를 밀어붙였다. 노동자들이 프로테스탄티즘 윤리로 자수성가해 중산층으로 도약할 것을 강조했다. 급격한 산업화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빈부 격차가 커지며 대처 수상과 대립을 벌일 때였다. 리버풀에선 1981년 정부 정책에 불만을 품고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리고 축구는 노동자를 대표하는 상징과 같았다. 사고가 발생한 힐스보로 스타디움 입석 좌석도 이들이 갈증을 푸는 공간이기도 했다. 훌리거니즘이 가속할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 각 지역에서 훌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하자 영국 정부는 축구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를 대하듯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힐스보로 참사가 발생했을 때 정책적인 실수보다 훌리건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축구 팬을 희생양으로 삼을 절호의 기회였던 셈이다. 힐스보로 참사는 한 계층을 격리하고 사회적 병을 키우는 데 궤를 같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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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축구 개혁의 신호탄
힐스보로 참사는 잉글랜드 축구가 개혁의 길을 걷는 데 밀알이 된 건 분명하다. 1992년 세계 최고의 리그로 불리는 프리미어리그를 출범하며 시설과 행정에서 큰 변화를 보였다. 관중석 안전을 위해 입석을 없애고 전면 좌석제를 도입한 게 가장 두드러졌다. 입장료도 좌석에 따라 부분적으로 개편됐고 경기장 내 주류 등 반입 물품에 대한 통제도 강화됐다. 자연스럽게 잉글랜드 축구 산업에 돈이 되는 상품이 들어오면서 축구 문화 개선에 엄청난 변화가 일었다. 그만큼 힐스보로 참사가 리버풀, 노팅엄이란 영역에서 벗어나더라도 큰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당시를 회상하고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으로 일관한 추모 행사도 해를 거듭하며 다채로운 형태로 탈바꿈하고 있다. 희생자 수인 ‘96’이란 숫자와 관련한 추모 행사가 많은데 ‘96’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선수들이 입고 등장한다. 각 경기장에서 킥오프전 96개의 빨간 풍선을 띄우기도 한다. 13일 아스널과 위건의 FA컵 준결승이 열린 웸블리 스타디움엔 96석을 비워놓고 리버풀 스카프를 걸어놓기도 했다. 직접적인 피해를 당한 리버풀 지역에선 더욱 큰 규모의 추모 행사를 열고 있는데 힐스보로 참사 가족 후원회 마거릿 아스피날 회장은 ‘96’패치를 제작해 선수단 유니폼에 부착하도록 이끌었다.
김용일기자 kyi048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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