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2018 러시아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한국축구의 월드컵 4강 신화에 빛나는

2002한일월드컵 주역 일곱 명의 활약상과 근황을 짚어보는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스포츠서울 이게은기자]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마스크맨'이라고 불리며 그라운드를 누빈 김태영(48)의 모습은, 아직 많은 축구 팬들 기억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부상을 입었음에도 4강 신화 탄생에 혁혁한 공을 세운 투혼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감동을 안겼다.


김태영은 현역 시절 저돌적인 플레이를 펼쳐 인디언 전사를 뜻하는 '아파치'라는 별명을 가진 최고의 수비수였다. 동아대학교 재학 시절이던 1992년 첫 태극마크를 단 그는 그해 열린 아랍에미리트(UAE)전으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졸업 후에는 실업축구팀 국민은행에 몸을 담았고, 본격적인 프로 선수 생활은 1995년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하면서 시작했다. 수비 라인에서 구심점 역할을 하며 존재감을 빛내기 시작한 김태영은 1998년 차범근이 사령탑에 오른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에도 발탁됐다.


하지만 한국은 1무 2패라는 성적으로 조별 리그에서 고배를 마셨다. 김태영을 비롯한 대표팀 선수들은 세계무대의 높은 장벽을 절감했고, 이를 교훈 삼아 4년 후인 2002 한일월드컵에서 전대미문의 맹위를 떨쳤다.


다시 한번 월드컵 무대를 밟은 김태영은 홍명보, 최진철과 스리백으로 활약하며 완벽한 철옹성을 만들어냈다. 현재도 이 조합은 '역대 최고 스리백'으로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이탈리아와 16강전에서 상대 공격수 크리스티안 비에리가 팔꿈치로 김태영의 코를 가격해 코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코피를 쏟은 김태영은 의무팀에게 치료를 받았고 다시 경기를 뛰었다. 교체는 후반 18분이 돼서야 이뤄졌다. 사실 히딩크 감독과 의무팀은 김태영의 코뼈 골절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수비의 중심인 그를 차마 뺄 수 없어 "괜찮다"며 타일렀다. 김태영은 엄청난 통증을 느꼈을 테지만 몸을 사리지 않았고, 8강 진출에 일조한 후 병원으로 이송됐다.


김태영은 특수 제작된 안면 보호용 마스크를 착용하고 남은 8강전, 4강전, 3위 결정전에 모두 출전했다. 김태영의 투지가 없었다면 4강 신화라는 결과는 달성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2004년 7월 김태영은 한국 선수로는 5번째로 센추리 클럽(A매치 100번째 이상 출전하는 선수)에 가입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듬해에는 K리그 통산 250경기에 출전해 5골 12도움이라는 기록을 남긴 채 은퇴를 선언했다. 전남에서만 몸 담은 '원 클럽 맨'인 그는 2005년 11년간의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2002년 6월 17일 스포츠서울 5면>


세계도 인정한 '찰거머리' 김태영


로이터가 뽑은 최고 수비수 선정
맨투맨 마크로 한국16강 숨은 주역


한국의 베테랑 수비수 김태영이 일약 세계 톱클래스 선수로 도약해 뒤늦게 주가를 올릴 기회를 잡았다. 그동안 한국대표팀에서 신예 송종국이나 해외에 잘 알려진 홍명보 등에 대한 활약이 외신을 통해 두드러지게 보도됐으나 이번 로이터통신의 베스트11 선정으로 김태영의 기량이 뒤늦게 세계 축구 무대에 전해졌다.


김태영은 이번 월드컵 본선 1라운드 3경기를 풀로 뛰면서 포르투갈의 루이 코스타, 주앙 핀투, 파울레타, 세르지우 콘세이상 등 화려한 개인기로 무장한 세계 최강의 공격진을 상대로 철저한 맨투맨 수비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기량을 인정받았다. 한국이 1실점 무패로 16강에 진출한 숨은 흑진주였던 것이다.


더구나 잉글랜드의 퍼디넌드와 이탈리아의 칸나바로, 브라질 카푸 등과 이름을 나란히 한 명수비수로 뽑혀 앞으로 김태영의 플레이를 보는 시선이 한결 뜨거워질 전망이다.


탄탄한 체력을 바탕으로 김태영은 본래 개인 수비에서 다른 어느 선수 못지 않는 빼어난 수비력을 선보여 이번 1라운드 3경기 철벽 수비를 포함해 A매치 77경기 출장을 기록한 베테랑, 김태영을 세계 최고 수비수의 하나로 꼽은 로이터통신사는 영국 런던에 본사가 있으며 미국의 AP통신과 더불어 세계 2대 통신사의 하나. 주식 등 경제 관련 정보에도 압도적이고 빠른 정보를 타전하고 있으나 축구에 관해서도 세계 최강의 정보량을 자랑해 이번 김태영의 평가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2002 한일월드컵 본선 8강전 '한국-스페인' 경기에서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과 볼싸움을 하고 있는 김태영



2004년 '한국-트리니다드 토바고' 친선 경기에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한 김태영이 골든슈를 들고 있다.


2005년 '한국-스웨덴' 친선 경기 하프타임에 김태영의 은퇴식이 열렸다. 볼 기념품을 들고 포즈를 취하는 김태영.


2014 브라질 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로 합류한 김태영이 미디어 데이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은퇴 이후 김태영은 2006년 1월 관동대학교 축구부 코치로 임명돼 본격적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09년 2월에는 20세 이하(U-20) 청소년 축구대표팀 코치로 합류, 당시 감독 홍명보와 호흡을 맞춰 8강 진출이라는 업적을 이뤄냈다. 처음 국가대표 지도자로 나선 김태영의 첫 걸음에도 깊은 의미를 남긴 결과였다.


같은 해 10월에는 올림픽 대표팀 코치를 맡아 홍명보 감독을 3년간 보좌하며,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는데 기여했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 대표팀이 동메달을 목에 걸게 된 것이다. 그렇게 그는 코치로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2013년 울산 현대 코칭스태프에 합류한데 이어, 2014년 브라질월드컵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로도 활약했다. 선수와 코치의 경험을 살려 해설가로도 나섰으며 2015년 전남의 수석코치로, 지난해부터는 수원 삼성블루윙즈의 코치로 몸담고 있다.


더 이상 축구선수 김태영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이제는 지도자로서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선수 시절의 굵직한 존재감을 현재도 이어가고 있는 그다. 견고한 수비 실력을 비롯해 김태영이 보여준 끈기와 투쟁심은 많은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김태영은 축구 인생 후반전도 전반전 만큼이나 뜨겁게 써내려가고 있다.


eun5468@sportsseoul.com


사진ㅣ스포츠서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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