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이주상기자]

송지효, 신하균 주연의 섹스 코미디 영화 ‘바람 바람 바람’이 화제다. 영화에서 두 사람은 권태기를 맞은 8년차 부부로 나온다. 송지효는 권태를 벗어나기 위해 임신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지만 남편은 새 종업원 이엘에 빠져있다. 신하균을 비롯해서 송지효, 이성민, 이엘, 장영남, 고준 등 주요 출연배우들이 섹스로 얽히고설키며 긴장과 웃음을 유발한다. 신하균과 이성민은 이엘과, 송지효는 주방장인 고준과, 이성민의 아내인 장영남은 마사지 전문가인 양현민과 정을 통하며 수많은 교집합을 만들어 낸다.

섹스가 더 이상 진지한 소재가 되어버리지 못한 세태를 반영하듯 관객들도 웃음으로 응대한다. 특히 이엘은 영화에서 두 사람과 정을 통한다. 처음엔 롤러코스터 설계사이자 택시 기사인 이성민과 사랑을 나누다 그의 매제인 신하균의 순수함에 이끌려 그를 유혹하며 잠자리를 같이 한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영화를 보면 쌍욕이 나올 정도로 분방한 영화다. 한 가족인 처남과 매제가 이엘을 상대로 벌이는 애정행각은 관점은 조금 다르지만 그 옛날 북방을 호령하던 고구려의 독특한 결혼 풍습인 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를 연상케 했다.

[포토] 이엘, 매혹의 유혹녀...입장합니다~!
배우 이엘이 지난 3월 6일 서울 강남구 CGV 압구정에서 진행된 영화 ‘바람 바람 바람’의 제작보고회에 참석해 무대에 오르고있다.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는 말 그대로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취하는’ 제도다. 고구려의 영토는 지금의 만주 벌판에 해당되는 중국의 동북부 3성(요령성, 길림성, 흑룡강성)이다.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길어 짧게 농사를 끝낸 후 목축에 전념했다. 척박한 지역의 특색 상 인근의 나라와 전쟁을 많이 치를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고구려의 전통적인 혼인 풍습에는 서옥제(壻屋制)가 있었다. 남자가 결혼하면 여자의 집에 머물면서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보통 아이들이 성장한 후 남자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면 임무(?)가 끝나는 제도다. 남자의 노동력 제공도 중요하지만 혼인하면서 발생하는 여성의 노동력 상실을 방지하기 위해서 만들었다. 그만큼 개인의 노동력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서옥제 이전에는 ‘형사취수제’라는 독특한 풍습이 있었다. 형이 전쟁에서 죽거나, 병으로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제도다. 언뜻 보면 비도덕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깊은 뜻이 있다. 병법의 대가 손자는 국력의 첫 번째 조건으로 ‘인구’를 꼽았다. 그만큼 사람이 중요했고, 노동력이 중요했다. 더욱이 고구려와 같은 북방 민족에게는 더욱 그랬다. 전쟁도 많이 치룰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인구의 손실은 곧 국력의 손실이었다. 형이 죽으면 동생은 형수 뿐 아니라 자식과 재산도 거두었다. 모든 것이 한 개인이 아닌 온전히 가족의 것이라는 개념이 강했기 때문에 그런 제도가 생겨났다.

혼인의 목적에는 예나 지금이나 ‘사랑’이라는 변함없는 함수가 자리했지만 고구려에는 출산이라는 국가적 과제도 주어졌다. 형의 가족과 재산을 취함으로써 형수와 조카에게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했고, 출산이라는 과제도 이을 수 있게 했다. 고구려를 비롯해서 부여, 선비, 흉노족이 이제도를 취했다. 모두 북방의 추운 지역에서 발흥한 종족들이다. 고구려보다 북쪽에 위치한 몽골은 손님에게 아내와의 잠자리를 제공하는 풍습이 있을 정도로 인구증가는 국가의 큰 과제였다. 도덕적 기준이 해이해진 현대와는 다른 옛 조상들이 짜낸, 인고 끝에 얻어진 풍습이었다.

세계최고의 저출산율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섹스는 난무하지만 정작 출산의 기쁨은 줄어들고 있다. 깊어져 가는 양극화와 빈부격차 속에서 지금의 추세로 저출산을 지속한다면 2750년에는 대한민국의 인구가 0명이 된다고 한다. 출산정책이 시급한 절박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형사취수제를 역사 속에서 끄집어 낼 수도 없고.

rainbow@sportsseoul.com 사진 |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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