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박지성(왼쪽에서 두번째)이 2007년 7월20일 FC서울과의 친선경기에서 후반에 교체된 동료 웨인 루니(왼쪽에서 세번째)와 함께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박진업기자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웨인 루니(32)의 친정팀 에버턴 복귀를 보면서 세계 축구팬들이 찡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붉은색 유니폼을 입고 폭발적으로 질주하는 루니는 프리미어리그가 세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중심에 서 있었다. 1985년 리버풀 빈민가에서 나고 자란 그는 만 17세가 되기 전인 2002년 8월17일 토트넘과의 프리미어리그 시즌 개막전에서 선발로 성인 무대 데뷔전을 치르더니 두 달 뒤엔 아스널전에서 통렬한 중거리포를 꽂아넣어 상대 팀의 무패 질주를 멈춰세웠다. 자연스럽게 ‘축구종가’ 잉글랜드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루니는 2년 뒤 에버턴 구단과의 감정 싸움 끝에 맨유로 이적한 뒤 화려한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맨유에서 13년간 공식경기 559차례를 소화하며 253골을 터트렸고 프리미어리그 5회 우승,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와 FA컵, 클럽 월드컵에서 각각 한 차례씩 정상에 올랐다.

기록과 우승도 훌륭했지만 루니가 지구촌을 열광하게 만든 것은 보통 청년의 외모를 갖춘 그의 플레이가 특별했기 때문이다. 볼을 빼앗기면 수비라인까지 쫓아가 다시 탈취하는 모습은 루니의 투지를 잘 설명한다. 2011년 2월12일 맨체스터 시티(맨시티)와의 더비에서 나니의 오른쪽 크로스 때 환상적인 오버헤드킥으로 상대 골망을 출렁인 뒤 포효하는 모습은 지금 봐도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독일 월드컵 직전인 2006년 4월29일 첼시전에서 루니가 큰 부상을 당하자 맨유와 첼시팬 모두 ‘웨인 루니 응원가’를 부른 장면은 영국 팬들의 루니 사랑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루니는 서른 살에 이르면서 기량과 스피드가 뚝 떨어졌다. 맨유와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모두 계륵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갈 곳을 찾던 루니에겐 시간이 약이었다. 루니와 에버턴은 1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르자 앙금을 풀고 다시 결합했다. 맨유에서 영원할 것 같았던 루니가 에버턴의 푸른색 옷을 입은 모습은 세월의 무상함을 설명한다.

루니는 박지성의 맨유 시절을 함께한 동료로 한국팬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박지성과 루니, 그리고 맨유의 또 다른 슈퍼스타였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삼각 편대’는 10여년 전 주말 축구팬들을 사로잡은 원동력이었다. 이제 시간이 흘러 박지성은 3년 전 은퇴했고, 루니는 이적했다. 호날두는 2009년 레알 마드리드(스페인)로 이적한 뒤 아직까지 리오넬 메시와 함께 세계 축구의 양대 스타로 군림하는 중이다.

같은 1985년생 루니와 호날두가 각자의 길을 가는 것도 흥미롭다. 루니가 빠른 시간에 쇠락한 이유를 영국인 특유의 ‘조로(일찍 늙음)’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있다. 국내에서 활동했던 프리랜서 기자 존 듀어든은 지난 2011년 “루니는 여전히 환상적이지만 곧 기량이 크게 떨어질 것이다. 난 리버풀 인근 블랙번 출신이어서 루니와 같은 사람들의 특징을 잘 안다”고 설명했다. 실제 나이보다 5살 가량 조숙하다는 얘기다. 반면 포르투갈 출신 호날두는 근육질 체격을 유지하면서 30살이 넘어 스피드와 체력에 한계가 오자 원래 포지션인 윙포워드를 버리고 최전방 공격수로 변신, 새 전성기를 열고 있다. 신체적인 능력이 루니 만큼 급격하게 감소하지 않았고 이를 이겨낼 여러 방법을 스스로 모색한 것이다. 호날두는 지난해 레알 마드리드와 5년 재계약을 하는 등 건재하다. 반면 루니는 20대 중·후반부터 너무 일찍 내리막길을 걸었다. 부활의 기로에서 친정팀을 찾아 축구인생의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silv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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