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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유인근 선임기자]세르히오 가르시아(37·스페인)의 별명은 ‘엘리뇨’다. 어린 시절 작은 체구에도 엘리뇨처럼 폭발적인 스윙을 한다고 해서 붙여졌다. 15세에 유럽 아마추어선수권에서 최연소 우승했고 1999년 19세의 나이로 프로에 데뷔한 그는 유러피언프로골프(EPGA) 투어를 휩쓸며 한때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42·미국)의 대항마로 떠오르기도 했다. PGA투어 통산 9승을 차지하며 정상급 선수로 군림해지만 유독 메이저 대회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던 그는 번번이 메이저 대회 우승 문턱에서 고개를 떨궈 ‘새가슴’이란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그렇게 무려 22년 동안 메이저 우승컵을 손에 쥐지 못했던 가르시아가 마침내 첫 메이저 우승의 한을 풀어버리고 마스터스 그린재킷의 주인공이 됐다.
가르시아는 10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제81회 마스터스 토너먼트 최종일 4라운드에서 저스틴 로스(영국)와 치열한 연장 승부 끝에 승리해 정상에 올랐다. 이번 우승으로 가르시아는 우승 상금 198만 달러(약 22억 5000만원)를 받았고 메이저 우승이 없는 세계 정상급 선수라는 꼬리표를 떼고 메이저 우승의 한풀이에 성공했다. 1996년 브리티시오픈에서 아마추어 자격으로 메이저 대회 데뷔전을 치른 이후 햇수로 22년 만이고 74번째 도전만이다.
가르시아는 이번 마스터스에서 전성기 시절 폭풍같았던 ‘엘리뇨 샷’을 되살리면서 메이저 우승이 어려울 것이란 세상의 편견을 무너뜨렸다. 그는 9언더파 279타로 동타를 이룬 뒤 연장 첫 홀인 18번홀(파4)에서 짜릿한 버디를 잡아 보기에 그친 2016 리우 올림픽 챔피언 로즈를 따돌렸다. 치열했던 승부는 연장전 티샷에서 갈렸다. 가르시아의 티샷이 페어웨이 한가운데에 안착한 반면 로즈의 샷은 오른쪽으로 밀려 나무 옆 러프에 떨어졌다. 로즈는 나무에 가려 홀이 보이지 않자 레이업 후 3타만에 그린에 볼을 올려야 했다. 가르시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두번째 샷을 홀컵 3m 거리에 붙인 뒤 로즈가 파 퍼팅에 실패하자 침착하게 버디를 성공시키며 두 손을 번쩍 들어 감격의 포효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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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공동 선두로 한 조에서 경합한 가르시아와 로즈는 4라운드에서 물고 물리는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먼저 기세를 올린 쪽은 가르시아였다. 1번홀(파4)에서 버디를 잡은 뒤 3번홀(파4)에서 다시 버디를 추가해 2타차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갔다. 로즈가 4번홀(파4)에서 보기를 범해 격차는 더 벌어졌다. 그러나 쉽게 물러설 올림픽 챔피언 로즈가 아니었다. 6번홀(파3)부터 로즈의 몰아치기 반격이 시작됐다. 8번홀까지 3홀 연속 버디를 잡으면서 가르시아를 따라잡아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10번홀(파4)에서 가르시아가 보기를 범하자 파 세이브에 성공해 단독 선두로 올라서며 기세를 올렸다. 악명높은 ‘아멘코너’가 시작되는 11번홀(파4)에서는 가르시아의 티샷이 페어웨이 옆의 나무 사이로 들어가 보기가 되면서 로즈는 2타 차로 앞서나갔다. 승부의 추는 그렇게 급속히 로즈에게로 기우는 듯 했다. 하지만 백전노장 가르시아는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더 물러설 곳이 없는 순간 ‘엘리뇨’의 광풍이 서서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로즈가 13번홀(파5)에서 로즈가 1m가 버디 퍼팅에 실패하며 3타 차로 달아갈 기회를 놓치자 가르시아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곧 이어진 14번홀(파4)에서 버디를 잡아 1타차로 추격한 가르시아는 15번홀(파5)에서 승부를 걸었다. 엘리뇨가 몰아치 듯 두번째 샷만에 볼을 홀컵 4m 가까이 붙였고 기어코 이글 퍼팅에 성공해 이 홀에서 버디를 잡은 로즈와 다시 어깨를 나란히 했다. 마지막 18번홀에서는 가르시아와 로즈가 모두 버디 기회를 놓쳐 승부는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승리의 여신은 가르시아의 편이었다. 왕년의 새가슴은 없었다. 가르시아는 수많은 갤러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챔피언 퍼팅을 짜릿한 버디로 마무리하며 생애 첫 메이저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약혼녀인 골프채널 리포터 출신 안젤 홉킨스의 축하 키스를 받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가르시아는 우승 후 인터뷰에서 “1999년에 아마추어 신분으로 처음 마스터스에 출전했을 때 사실 ‘이 코스에서 언젠가 한 번은 우승하겠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동안 ‘메이저 우승이 없는 최고의 선수’라고 불렸는데 어찌됐든 ‘최고’라는 의미가 있으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했다. 이제 앞으로는 ‘메이저에서 1승만 한 선수 가운데 최고’라고 할지도 모르겠다”고 웃었다.
찰 슈워젤(남아공)은 단독 3위(6언더파 282타) 맷 쿠차(미국)와 토마스 피터스(벨기에)가 공동 4위(5언더파 283타)에 올랐다.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도전했던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공동 7위(3언더파 285타)에 머물렀고 역전 우승을 노렸던 조던 스피스(미국)는 3타를 잃고 리키 파울러(미국) 등과 함께 공동 11위(1언더파 287타)로 대회를 마쳤다. 한국 선수 중에서 유일하게 컷을 통과한 안병훈(26)은 2타를 줄여 공동 33위(5오버파 293타)를 기록했다.
ink@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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