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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이름이 오만(Oman)이라니…. 이름과 같은 단어가 있으면, 그것도 썩 좋지않은 단어라면 아무래도 편견이 생긴다. 중동 페르시아만의 길목 오만과 그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편견 사이에서 방황하던 나는 결국 여행을 다녀오면서 제대로 된 오만의 본모습을 보았다. 미리 말해두자면 오만은 우리가 많이 봤던 카타르 도하나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의 현대 도시가 아닌 ‘진짜 아랍’의 모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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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문 격인 도하에서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로 향하는 카타르항공의 비행기는 다행히도 프로펠러 기종이 아니었고 낮에 출발했다. 소음도 없었고 맑은 시야 덕에 하자르(Hajar) 산맥의 거치고도 늠름한 기세가 바로 코앞에 있는 것처럼 펼쳐진다. 편견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평평한 사막만이 가득할 것이라 상상했지만 ‘중동의 스위스’라 불러도 손색없을만큼 울퉁불퉁한 남성적인 산세. 이것이 오만의 첫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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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건물, 흰 사람 진짜 아랍
비행기가 코를 낮췄다. 푸른 바닷물과 도시가 나타났지만 산세는 아직 멈추지 않고 여전히 뻗어가고 있다. 좀더 자세히 보인다. 새하얀 집들이 성냥곽처럼 오밀조밀한 모여 있다. 오만의 건물들은 죄다 하얗고 그리 높지 않다. 그래서 아랍의 옛도시 분위기를 제대로 풍긴다. 법적으로도 모든 건물에는 상아색과 연노랑색 정도만 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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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사의 땅에도 겨울은 있었다. 뜨거운 태양을 뺀다면 날씨는 제법 선선하다. 무스카트는 바다와 인접한 터라 그런지 시원한 바람이 끊이지 않는다.
오만에 대한 편견 하나가 또 깨졌다. 도시 곳곳이 푸르다. 나무가 우거지고 잔디가 자란다. 인공적으로 조성한 풀밭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나무와 함께 하는 풍경이 그리 낯설지 않다. 다른 중동 국가에 비해 오만에는 물이 많아서 그렇다. 우람한 산이 떠억 버티고 있으니 물이 모이고 강을 이룬다. 해양성 기후라 강수량도 만만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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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남부 ‘살랄라’ 지역은 아랍인들에게 파라다이스라 불릴 정도로 녹색 지대가 형성된 도시다. 사실 이번에 살랄라를 다녀오진 못했지만, 이름만 들어봐도 즐거운 도시임에 틀림없다. 거친 운전솜씨를 뽐내는 드라이버이면서 능글맞은 영어 가이드, 그리고 태생부터 떠벌이였을 게 분명한 하칸에게 들어보니 오만 사람을 오마니(Omani)라 부른단다. 오만이란 단어에서 오던 거부감이 깨지고 웃음이 나온다. 오마니(어머니)처럼 푸근하다. 기후가 메마르면 사람도 메마르는 걸까. 푸른 나라에 사는 오마니들은 친절하고 낙천적이다. 마주치면 인사를 하고 별안간 카메라를 들이댄다 할지라도 웃으며 포즈를 취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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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사이, 이곳이 진짜 오만
무스카트를 여행하면서 다시 몇 가지의 편견이 깨졌다. 우선 공항에 내려서까지도 나는 좀전에 하늘에서 본 수많은 흙집 중 한 곳에서 자야하는 줄 알았다. 거리엔 무장한 경찰이 뚫어져라 노려볼테고 반바지를 입으면 돌을 집어 던질 것 같아 아예 챙겨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무스카트에는 해변에 럭셔리한 리조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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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두룩하다. 우리가 묵었던 하얏트 호텔(그동안 살면서 하얏트가 아랍어인줄 몰랐다)엔 인피니티 풀을 갖춘 수영장도 있고, 검은 복면 대신 비키니를 입은 투숙객들(물론 외국인이다)이 수영을 즐기고 있다. 오만에서 벌거벗은 몸을 볼 줄이야…. 시장에선 AK47 소총을 든 이를 만날 수 없었던 대신 활짝 미소를 짓는 오마니를 만났다. 예멘(유혈내전 중인)에 가는 줄 알고 여행자 보험을 꼭 들라며 몇번이고 다짐받던 마누라의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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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카트는 상당히 넓다. 황량해 보이지만 꽤나 근육질인 산맥 사이로 난 고속도로를 타고 한참을 가도 여전히 무스카트란다. 아침에 짐을 챙겨 ‘와디’를 갔다. 와디(Wadi)는 계곡이란 뜻으로 오마니들의 자랑거리다. 계곡이라고 해도 사실 수량이 풍부하지는 않지만 사막 지형인 아랍에선 워낙 계곡이 귀한 것이어서, 하칸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질이다. ‘너 여름에 한국에 오면 거의 기절하겠다’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니 오만은 이처럼 풍부한 물 때문에 일찍이 문명을 이뤘던 나라다. 농사도 지을 수 있는 덕에 사람이 모여들어 식량과 향료 등 여러 물품을 교역하는 무역항을 갖췄다. 그래서 오마니들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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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디에는 가족 단위로 물놀이를 나온 오마니들로 가득하다. 아이들은 풍덩풍덩 물에 뛰어놀고 검은 옷의 여성과 흰 옷 차림의 남성 행락객들이 양고기를 굽고 있다. 사륜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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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이 찰랑찰랑한 물길을 가로질러 넘어다니는데 끝도 없다. 오만에도 오토캠핑 바람이 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비현실적 풍경에 문화유산까지 갖춘 관광대국
기이한 형상의 산봉우리와 황갈색 협곡이 끝도 없이 펼쳐졌지만, 광선검을 든 제다이와 날아다니는 엑스윙은 없었다. 아! 그렇다. 이곳은 ‘앨터14’ 행성이 아니었다. 산악 지대인 니즈와(Nizwa)는 꼭 공상과학영화 세트장처럼 생겼지만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해서 ‘풀 없는 알프스’라 불러도 좋을 지경이다. 사륜차를 이용해서 협곡을 누비는 즐거움은 언덕에 올라 이국적인 풍경을 감상할 때 비로소 절정에 이른다. 지평선 멀리까지 삐죽삐죽 솟아난 산과 기암괴석. 이 모두가 황갈색이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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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버 하칸은 ‘여기 데려오면 좋아할 줄 알았다’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다. 이것만 있다면 오만 관광의 매력을 모두 말할 수 없다. ‘과거’인 역사 유적도 있고 ‘현재’인 어시장에선 땀냄새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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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이 건설한 해안가 나칼(Nakhal) 요새는 어릴적 동화 속 요새처럼 요철(凹凸)로 된 성곽이 빙 두르고 있다. 예전에는 꽤 쓸모있는 군사 요새였겠지만 지금은 성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근사한 풍경 덕에 전망대 노릇을 하고 있다.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인 오만에는 이러한 해안 몇몇 요새들이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돼 있다.
동남부 해안 지역인 퀴리얏(Quriyyat)과 디밥(Dibab) 사이 바닷가에선 전통 어시장이 열린다. 특별한 접안 시설이 없이 모래톱에 배를 대놓고 생선을 내리는 어부와 왁자지껄 경매하는 광경 등 아랍의 전통적 향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오만의 참모습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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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 주 오만 대사는 “아랍땅에 이같은 자연이 펼쳐진다는 것은 천혜의 혜택이자 분명한 미래의 장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사는 “와디와 살랄라 등 다른 중동 국가에서 쉽게 만나볼 수 없는 풍경과 포르투갈 요새 등 다양한 문화유산 등은 오만에서만 즐길 수 있는 매력”이라고 추천했다.
무스카트(오만) | 글·사진 이우석기자 demory@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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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국가정보=오만은 페르시아만의 입구라는 천혜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16세기 초부터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다. 약 150년 간 식민 통치를 받다 17세기에 스스로 독립한 후 페르시아만 연안을 비롯해 파키스탄과 인도양 잔지바르까지 진출하는 등 중동의 맹주로서 위세를 떨치다 근대에 들어서 영국의 영향권 안에 놓이게 된다. 이후 1960년대 유전이 개발되면서 다시 한번 부흥기를 맞고 있다. 오만은 관광목적으로 무비자 입국이 가능하며, 도하에서 스톱오버 입국하려면 공항에서 30일 관광비자(30달러)를 발급받으면 된다.
브루나이와 함께 술탄이 통치하는 국가(Sultanate)로, 이슬람의 윤리를 엄격히 지키고 있지만 외국인에 대해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음주를 허용하는 등 관대한 편이다. 하얏트호텔 지하에는 꽤 근사한 분위기의 클럽 ‘사파리’도 있는데, 현대적인 음악과 춤을 즐길 수 있어 관광객들로부터 핫플레이스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인구=315만명(외국인 57만명). ▲1인당 GDP=2만9600달러(2012년). ▲기후=내륙지방은 전형적인 사막기후, 해안지방은 고온 다습한 해양성 기후. ▲겨울 기온=20~25도(1월 기준) ▲시차=-5시간. ▲언어=아랍어(공용어), 영어. ▲통화=오만리얄(Riyal Omani) 1리얄은 약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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