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1992년 8월 어느날 신문사 입사 후 첫 취재 현장이 서울 중구 명동의 중화민국(자유중국·대만) 대사관이었습니다.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靑天白日滿地紅旗·청천백일기)’가 게양대에서 내려지고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紅旗)’가 올라갔습니다.

이 순간을 지켜보던 대만인들의 얼굴에는 분노와 슬픔이 서렸습니다.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24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눈에 선한 장면입니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를 전후한 시기였습니다. 한국 이상옥(李相玉) 외무장관과 중국 첸지천(錢基琛) 외교부장은 이날 베이징 시내 영빈관 조어대에서 상호 불가침, 상호 내 정불간섭, 중국의 유일합법정부로 중화인민공화국 승인, 한반도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원칙 등을 골자로 한 6개항의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간의 외교관계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을 교환했습니다.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중공·중국)간 수교는 대만과 단교를 의미했습니다.

오랜 기억을 떠올린 것은 최근 벌어진 대만 출신 걸그룹 트와이스 멤버 쯔위(周子瑜·16)를 둘러싼 ‘사건’ 때문입니다.

[SS포토]걸그룹 트와이스의 쯔위, 깜찍하게!
걸그룹 트와이스의 쯔위가 지난해 12월 8일 서울 강남구 더케이호텔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진행된 2015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알려진 것처럼 쯔위는 지난해 11월 방송된 MBC-TV ‘마이 리틀 텔레비젼’에서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기와 태극기를 흔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같은 대만 출신 가수인 황안(黃安)이 “돈은 중국에서 벌어가면서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 쯔위는 독립주의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공격하면서 이 문제는 대만과 중국, 한국을 넘어 미국의 뉴욕 타임즈, 영국의 BBC 등 서방언론까지 보도와 논평에 가세하는 국제적인 이슈로 급부상했습니다.

마침 대만에서는 총통(대통령)과 입법원(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진행되면서 정치인들이 쯔위의 사진을 선거운동에 활용하거나, 그의 행동을 두둔하고 격려하는 발언을 정치쟁점으로 삼으면서 파장이 확산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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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YP 엔터테인먼트 박진영 대표가 한 프로그램 제작발표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사태가 수그러들지 않자 쯔위의 소속사인 JYP 엔터테인먼트는 ‘JYP 차이나’를 통해 ‘우리는 문화사업을 하는 기업으로 중국과 한국의 협업에 적극적이다. 중국 정치와 관련해 어떤 주장이나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고 해명한 뒤 ‘당분간 쯔위의 중국 내 활동을 전면 취소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쯔위도 지난 15일 소속사 공식 웨이보를 통해 “중국은 하나밖에 없으며 나는 내가 중국인임을 언제나 자랑스럽게 여긴다. 중국인으로 해외에서 활동하며 내 실수로 인해 회사, 양안(중국과 대만) 네티즌에게 상처를 드린 점에 대해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 자체가 이미 정치 이슈로 비화한 상태에서 쯔위의 사과 역시 또다른 정치행위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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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위가 지난 15일 소속사 웨이보를 통해 사과문을 읽고 있다.사진 | JYP 엔터테인먼트 웨이보 계정

쯔위의 소속사인 JYP의 박진영 대표도 같은 날 회사 사이트를 통해 ‘쯔위의 부모를 대신해 잘 가르치지 못한 저와 회사의 잘못도 크다’고 사과했습니다.

처음 검색어에서 ‘쯔위’를 없애는 등 예민한 반응을 보였던 중국 당국은 쯔위의 사과 후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를 통해 ‘오늘 우리는 중국의 전도양양한 미소녀를 얻게 됐다’며 ‘앞으로 용감하게 중국의 빛이 돼라’는 격려성 보도를 하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사태는 쉽게 진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 안후이TV는 쯔위와 트와이스의 일본인 멤버가 출연하기로 했던 특집 프로그램 ‘춘완(春晩)에 초대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고, 베이징BTV는 이미 촬영을 끝낸 트와이스 녹화분의 방영 여부를 재검토하고 있습니다. 쯔위를 광고모델로 선정했던 초저가폰 ‘화웨이’도 계약을 취소하고 광고를 중단했습니다. 예정됐던 2PM의 공연도 취소되는 등 중국 내 한류 바람이 크게 위축될 수도 있다는 걱정도 생기고 있습니다.

대만 내에 민족주의적 성향이 짙어지고 특히 젊은 층이 대거 투표에 참가한 가운데 16일 열린 선거에서 차이잉원(蔡英文) 민주진보당 후보가 압도적인 득표율(67%)로 첫 여성 총통으로 당선됐습니다., 민진당은 입법원 선거에서도 77%의 득표율로 과반의석(113석 중 68석)을 확보했습니다. 대만의 독립을 주장해온 ‘해바라기 운동’ 멤버들이 결성한 신당 ‘시대역량’도 5석을 얻어 원내 3당으로 떠올랐습니다.

국제해커집단인 ‘어나니머스 타이완’으로 추정되는 세력에 의해 JYP의 홈페이지가 디도스 공격을 받아 다운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사태가 이쯤 되자 인민일보 해외판 SNS인 ‘협객도(俠客島)’가 17일 ‘네티즌의 쯔위 성토는 광적 포퓰리즘’이라는 글을 싣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한국과 대만 네티즌은 쯔위의 사과와 소속사의 처신에 대해 ‘굴욕적이었다. 더 큰 이해관계가 걸린 대륙의 눈치를 본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사)한국다문화센터는 18일 인종 차별, 인권 침해 혐의로 박진영과 JYP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고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라는 성명을 냈습니다.

결국 JYP는 같은 날 일련의 과정이 쯔위의 부모와 상의 끝에 취해진 것이라는 입장을 다시 내놓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대만의 분위기는 여전히 진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네티즌의 반발이 계속되는 가운데 19일 ‘자유시보’에 따르면 대만의 변호사 왕커푸는 타이베이 검찰에 JYP 엔터테인먼트와 ‘쯔위의 독림분자설’을 주장한 대만 출신 가수 황안을 강제죄(강제사과) 혐의로 고발했습니다. 대만 언론은 쯔위의 녹화 현장에 취재진을 보내는 등 추적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를 처음으로 되돌려 봅니다.

24년 전 한중수교 당시 분노했던 서울의 중화민국 국민 대부분은 대륙 출신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당시 울분을 토했던 대만의 자본주의와 본토의 공산주의간 체제 경쟁 과정에서 오랜 기간 자신이 유지해온 신념을 한순간에 붕괴시킨 국제정치 역학의 변화, 이에 따른 상실감과 무기력이 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같은 사실은 한국 거주 중화민국 국적자(화교) 2만여명 중 90% 이상이 현재 중국 영토인 산동성과 만주 출신이라는 최근 통계를 봐도 짐작됩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성격이 좀 다릅니다.

정치·외교적으로 매우 예민한 문제지만 양안간 오랜 이념 대결의 바탕 위에, 중국 본토와 대만은 엄연히 역사와 정체성이 다르다는 ‘민족의식’도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명분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대만인들이 대륙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복잡한 감정이 깔려 있는 것으로 읽힙니다.

이런 복합적인 상황은 대만의 굴곡진 역사를 살펴야 맥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사시대 말레이-인도네시아 계통 종족의 거주지였던 대만의 역사는 동인도회사를 통한 네덜란드 식민지기(1624~1662년), 명청교체기에 대륙에서 망명해 명 재건을 노리던 정성공과 그 후손에 의한 반청 항전기(1662~1683년), 청나라 통치기(1683~1895년), 청일전쟁과 시모노세키조약에 따른 대만의 일본 양도 후 대만민주정 선포 등으로 타올랐던 대만인들의 독립의지가 무력 진압당한 뒤 맞은 일제강점기(1985~1945년), 그리고 해방 후 현대사로 구분됩니다.

대만 본토인인 본성인(本省人)은 이미 청나라 이전부터 본토에서 건너온 외성인(外省人)과 갈등과 협력을 거듭했습니다. 1945년 일제 패망과 함께 50년간의 일제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독립을 꿈꿨지만 본토의 중국국민당 정부가 들어오면서 다시 외성인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무능한 국민당 정부보다는 차라리 미국이나 일본과 연합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하던 대만 본성인은 남부 가오슝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1947년 2월 28일 국민당 정부의 무차별 진압으로 3만여명의 사망하는 참사를 겪습니다. 1949년 공산당과 본토에서 벌인 내전에서 패한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쫓겨 들어오면서 대다수 대만 본성인은 다시 대륙 외성인의 지배를 받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이후 역사 전개 과정은 우리가 대략 아는 바입니다.

본토의 중국은 줄기차게 ‘하나의 중국’을 주장했고, 본성인과 외성인이 섞인 복잡한 인구 구성을 갖게 된 대만인들은 독립과 통일 사이에서 고민했습니다. 이번 차이잉원 총통을 배출한 민진당은 지난 2000년 독립을 꿈꾸며 대만 역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의 기본 노선을 계승하는 정당입니다. 천수이볜의 8년 집권 뒤 정권이 교체돼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정권 이양까지 8년간 통치합니다.

마지막으로 던지는 질문입니다. 쯔위와 소속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했을까요?

결론을 먼저 말씀 드린다면 아쉽게도, 질문은 창대하지만 대답은 소박하고 상식적입니다.

한 개인이, 한 회사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삼엄한 국제질서, 이에 따른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일이 벌어진 뒤 곤경에 처한 쯔위와 JYP는 정치적 신념과 상관없이 우리가 지켜본 일련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엔터테이너라는 개인의 정체성, 글로벌 문화사업이라는 기업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소신에 바탕한 상식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만큼 사태는 심각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JYP 엔터테인먼트는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보편적 인권, 다문화 공존이라는 가치에 충실해 좀 더 의연하고 원칙적인 대처를 했으면 어땠을까요? 이 사태를 접한 대만인 대다수가 격분한 것은 당연하다지만, 한국 내 여론시장에서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 것은 이런 아쉬움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지나치고 가혹한 생각일까요?

그럼에도 이런 일이 터진 것은 쯔위의 말대로 단순 실수였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대처까지 포함한 전 과정을 보면 쯔위와 소속사인 JYP는 깊은 성찰을 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이번 일로 인해 사소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전문성, 자신의 신념대로 인생을 밀고나가겠다는 개념있는 아티스트와 문화사업 경영자의 자세 이야기도 나올 수 있으니까요.

방송사 책임론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청천백일기가 인터넷방송에만 등장했고, 본방송에서는 편집돼 사라졌다고 하지만 애초 기획단계부터 철저하게 점검했으면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중문화의 소비자이자 그 대중문화의 올바른 발전을 이끄는 주체이기도 한 우리는 이 일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먼저 지금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을 쯔위와 그 부모님을 응원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쯔위와 가족은 원인 제공자이기도 하지만 이번 사건의 최대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사면초가에 빠진 사람에게 자신의 말을 일단 들어주고 든든한 울타리가 돼 주는 것보다 고마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스타의 말은 무조건 믿고 지켜주자는 팬심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이 사건에는 보편적인 인권,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라는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더 큰 가치도 관련돼 있습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가는 한류는 기교나 기예를 넘어 세계인과 공유할 수 있는 철학과 가치체계,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소양과 국제 감각을 갖춰야 영속적인 생명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번 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잘 풀려서 쯔위와 소속사가, 그리가 우리 모두가 무엇인가 깨달음을 얻고 한 걸음 더 전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류재규기자 jklyu@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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