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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정수기자] FC서울 주장 차두리(35)가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차두리는 “은퇴 기자회견을 너무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멋쩍어 하면서도 “이제는 정말로 끝이다. 이제야 비로소 마지막이라는 실감이 난다. 시원섭섭하다”며 가슴 속에 쌓인 얘기들을 풀어놨다. 그는 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5’ 36라운드 수원과 ‘슈퍼매치’에서 은퇴식을 치렀다. “새로운 삶에 대한 기쁨도 있지만 너무나 사랑해왔던 축구를, 다시 그라운드에 나설 수 없다는 생각이 슬프기도 하다. 열심히 하기 위해 노력해왔기 때문에 지금 이순간 후회없이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가 꺼낸 많은 말들은 한 편의 기사로 표현하기에 너무 많았지만, 진솔함이 묻어나는 지난 얘기들을 편집하고 싶지 않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옮겨 적어봤다. 떠나는 그는 “후련하다”고 했지만 뒤에 남아 그를 추억하는 팬들의 마음은 한동안 먹먹할 것 같다.
-하프타임 행사에서 ‘축구인생 3-5 패배’는 변함없다고 했다. 3골의 의미와 5골 실점의 의미는 무엇인가.축구를 하면서 제 기준은 차범근이라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넘고 싶었고, 더 잘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를, 더구나 유럽에 나가보니 ‘이 사람이 진짜 축구를 잘했구나’를 깨닫게 됐다. 저는 차범근이라는 사람의 근처에도 못가는 선수생활을 했다. 그래서 졌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래도 그 중에 월드컵 4강과 16강에 올라봤고, 축구 잘한다는 사람들만 모인, 실력이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분데스리가에서 최고의 팀은 아니어도 10년간 견뎌낸 것은 내 스스로는 희망적인 부분이었다. 분데스리가와 대표팀 생활 이런 면들이 3골 정도는 되지 않았나 하는 개인적인 평가다.
-이천수도 은퇴를 선언했다. 2002년 월드컵 세대가 저물고 있는데.저와 천수가 당시 막내였다. 막내들이 은퇴하겠다는 걸 보면 그 팀이 굉장히 나이가 들었다는 의미다. 2002멤버가 한국축구와 팬들에게 큰 기쁨을 준 것은 사실이고 사랑도 많이 받았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도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다. 형님들은 감독도 하고.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사랑받는 것 같다. 2002년 정말 대단했다. 이제는 그 세대와 현역으로 뛸 수 없지만 그라운드가 아닌 밖에서 모든 분들에게 받은 사랑과 관심을 또다른 좋은 일로 돌려드리는 것이 우리 세대가 해야할 몫인 것 같다. 항상 책임감을 갖고 다음 길을 준비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독일로 가서 지도자 수업을 받으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 향후 인생계획은.아직은 모르겠다. 자격증을 따려는 것은 맞다. 그 과정에서 더 세부적으로, 그라운드 안팎에서 배울 지식이 많을 것이고 시간도 필요할 것이다. 나에게 맞는 일, 무엇을 하면 유럽에서 좋은 것을 배워서 한국축구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판단하게 될 것이다. 행정가다 감독이다 못을 박고 싶지는 않다. 지금의 마음은 그라운드와 가까운 곳에서 뭔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감독이 쉬운 직업이 아닌 걸 아버지를 통해 너무 일찍 깨닫고 배웠다. 섣불리 쉽게 도전했다가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더 많이 고민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을 결정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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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입단식 했을 때 걱정이 많았을 것 같다. 당시에는 이런 은퇴 모습은 예상치 못했을 텐데. 은퇴를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는.
영화같다. 복받은 사람인 것은 맞다. 이렇게 선수생활 마무리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앞으로 몇이나 나올까 의문이다. 대표팀에서까지 너무 많은 분들이 박수를 보내주셨다. 꿈같은 일이다. 요즘 같아서는 ‘내가 이런 관심과 사랑을 받을 만큼 공을 잘 차는구나’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서울에 올 때 걱정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차두리가 왜 서울에 왔을까’ 반신반의하는 목소리와 의구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3개월 쉬고 몸이 안좋은 상태에서 갑자기 경기를 뛰면서 경기력이 안좋았던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힘들었다. 바닥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그래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잘하고 싶었다. 한국 축구팬들에게도 인정받고 싶은 의지가 강했다. 정신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아버지의 조언과 도움도 컸고. 차츰차츰 바닥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나 결국에는 박수를 받을 수 있게 된 것 같다. 모든 축구선수들이 꿈꾸는 마무리를 하게 되서 행복하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했지만 지나면서 밝은 빛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인생을 살면서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줬고 살아가는데 도움을 준 3년이었던 것 같다.
믿지 않겠지만 사실 힘들다. 한 번 달려 올라갔다오면 숨차고 힘들다. 몸이 힘든 것도 있지만 가장 힘든 것은 정신적인 면이다. 경기에서 100%를 쏟을 준비가 안되면 분명 좋은 결과가 안나온다. 아시안컵 이후에 경기준비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준비가 돼있지 않으면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해서 그만하고 싶었다. 매경기 쏟아부을 자신이 없었다. 이제는 에너지가 없다는 것을 느끼고 판단을 내렸다.
-아버지를 못이겼다고 했는데 언제 그런 걸 느꼈는지.20대 중반이었다. 유망주고 어린 선수일 때는 겁이 없어서 뭘해도 될 것 같았는데 그 즈음 부터는 ‘차범근이라는 사람은 대단하구나’를 느꼈다. 독일에서 3~4년 뛰어보고 강등을 맛보면서 새삼 아버지에 대한 대단함을 느꼈고, ‘이 벽을 넘을 수 없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그 때 처음했다. 그래도 모두가 차범근처럼 축구를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내가 너무 좋아해서 시작했고 좋아서 축구를 하고 있는데 내가 왜 굳이 자책하고 좌절하는가를 생각했다. 축구를 즐기려고 하고 왜 안될까 보다는 왜 이렇게 많이 가졌을까에 감사하면서 운동했다. 돌아보니 정말 많은 것들을 가졌더라. 축구하다보니 월드컵 4강도 가고,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고 그런 것을 잊고 살았던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다. 욕심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의 방식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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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들이 ‘우리에겐 차붐보다 차두리’라는 걸개를 내걸었다.
서울 팬들에게 차범근은 적장이다. 미웠을 것이다. 2008년에 결승에서 서울을 물리치고 수원이 우승했는데 어떻게 서울 팬들이 (차범근을) 좋아하겠나. 그런 면에서 수원팬들이 저에게 야유를 보내는 것에 불만은 없다. 한국축구를 위해 아버지는 많은 일을 했고, 팀을 떠나 박수받을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서울 팬들 사이에서만은 제가 더 위대한 선수로 남으면 좋겠다.(웃음) 서울팬들 사이에서 아버지보다는 내가 더 큰 사랑을 받는 선수로 남으면 좋겠다.
최용수 감독이 가장 서울로 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렇게 박수받으며 떠나는 것은 최용수 감독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힘들 때도 등 두드리며 걱정말라고 위로하고. 잘될 때는 네가 잘해서 이런 성과를 얻은 것이다라고 자신감을 심어줬다. 정말로 최용수 감독에게 큰 감사를 드린다. 이제는 편하게 용수형과 소주도 한잔하고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표팀 오른쪽 수비 후계자는 누가 될 것 같은지.대표팀 오른쪽 풀백에 좋은 선수들이 많다. 그런데 내가 좋다고 생각했던 신광훈이나 이용 같은 선수들은 군대에 가있다. 박진포, 정동호, 김창수 등 꾸준하게 자신의 포지션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는 선수들이 있다. 내가 지목한다고 그 선수가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후배들이 대표선발이 되고 경기에 나설 때 ‘이 자리는 내 자리다’라는 욕심을 갖고 임했으면 좋겠다. 스스로 불안해하는 마음을 가지면 우리가 원하는 월드컵에서의 좋은 성적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누가 되든 후배들이 정말로 이 자리는 놓치지 않겠다. 내주기 싫다는 마음으로 하면 좋겠다. 서른 중반에 대표팀에 다시 뽑혔을 때도 나는 그런 마음을 갖고 갔다. ‘이 자리는 내게 온 기회고 다른 누구에게 주기 싫은 내 자리다’는 오기를 갖고 뛰었다. 후배들도 책임감과 더불어 독한 마음을 갖고 대표팀에 임했으면 좋겠다. 분명 경쟁에서 이겨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polaris@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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