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는 시작부터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이 혼합된 ‘팩션사극’임을 밝히면서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했다. 그러나 ‘팩션사극’이 모든 픽션의 방패가 될 수는 없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사극은 철저한 고증이 있지 않다면 역사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 제작 여건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극 속 장면에도 고증이 잘못된 경우가 허다하다. 몇 가지 장면을 통해 이를 짚어본다.

▲ 변사또의 수청을 거절한 춘향이가 칼을 쓴 채 옥에 갇혀 있다?
조선시대 ‘지조’와 ‘절개’의 상징 춘향이는 드라마 소재로 줄곧 사용됐다. 백년가약을 맺은 이몽룡이 과거시험을 보러간 사이 춘향이의 고을에는 변학도가 사또로 부임하고, 변사또는 춘향이의 미모를 탐내 그에게 수청을 들라 명한다. 하지만 춘향이는 이몽룡을 생각하며 수청을 거절하고 이에 화가 난 변사또는 춘향이를 옥에 가두기에 이른다. 감옥에서 춘향이는 목에 칼을 차고 이몽룡을 그리워한다.
너무나도 많이 본 장면이라 익숙할 법 하지만 조선시대 당시 규정에 의하면 여성에게는 목에 칼을 씌울 수 없었다. 만약 춘향이가 목에 칼을 쓰고 옥에 갇힌 것이라면 이는 변사또가 규정을 어기고 직권남용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포도청 앞을 지키는 포졸이 삼지창을 들고 서 있다?
사극에서 또 으레 볼 수 있는 것은 병졸들이 삼지창을 들고 관청을 지키고 있거나 전투를 벌이고 있는 장면이다. 이로 인해 ‘삼지창’은 병졸들이 주로 사용하는 무기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삼지창은 의외로 우수한 장비로, 상당한 훈련을 하지 않으면 사용하기 어려운 무기다. 정식 명칭은 ‘당파’로, 날이 세 개인 당파는 적의 병장기를 걸어 제껴 제압할 수도 있으며 찌르는 공격도 가능하다. 또한 불화살과 신기전의 발사대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 가운데 중요한 점은 당파는 임진왜란 이후인 조선 후기부터 사용됐기 때문에 조선 전기에는 거의 볼 수 없는 병장기였다. 만약 조선 전기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당파를 들고 있는 군졸이 나온다면 고증이 잘못됐다고 할 수 있다.

▲ 역모죄를 받고 있는 죄인에게 “주리를 틀라” 명한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은 물론,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을 보더라도 죄인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으레 등장하는 명령이 “주리를 틀라”다. 죄인의 두 다리를 한데 묶고 다리 사이에 두 개의 주릿대를 끼워 비트는 형벌인 ‘주리’는 대표적인 형벌로 익히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역시 고증이 잘못된 것이다. 주리를 트는 것은 17세기 경에 시작됐다. 주리는 포도청이나 지방 병영에서 도적을 심문할 때 쓰는 형벌이었다. 드라마 ‘용의 눈물’이나 ‘불멸의 이순신’ 등 조선 전기를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주리를 틀라”고 명령하는 것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것이다.

▲ 죄인이 사약을 마시고 피를 토하고 죽었다?
왕족 또는 사대부가 죄를 지었을 때 임금이 내리는 극약인 ‘사약’을 마신 죄인들은 예외없이 바로 입에서 피를 흘리며 그 자리에서 죽는다. ‘사약’이라는 섬뜩한 단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약의 재료는 주로 비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명확한 자료를 찾기는 어렵다. 일설에서는 생금(生金), 생청(生淸), 부자(附子), 게의 알 등을 합해 조합했다고 하지만 이것이 마시는 즉시 피를 뿜고 그 자리에서 죽게 하는 독성이 있는지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또한, 전해오는 바에 따르면 사약을 마시고 바로 죽지는 않았다. 야사에 의하면 숙종 때 송시열은 사약을 한 사발 마시고 죽지 않아 두 사발을 마시기까지 했으며,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명종 때 을사사화에 연루된 한 문신은 열 여덟 사발을 마시고도 죽지 않아 목을 매 죽였다고 한다.
뉴미디어팀 장우영기자 elnino8919@sportsseoul.com
사진=SBS 제공,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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