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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오비이락(烏飛梨落)일까.
검찰이 대한체육회 김정행 회장을 향해 날선 칼을 빼들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대한체육회 고위 인사들이 공금을 횡령한 비리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검찰은 김 회장을 둘러싼 비리 수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한다. 김 회장에 대한 비리 혐의가 사실이라면 당연히 엄정한 법적 조치가 뒤따라야하겠지만 일련의 맥락적 흐름은 심상치 않다. 왜 굳이 지금 시점에 이런 비리 혐의가 터져나왔을까. 최근 체육회가 체육단체 통합을 놓고 정부와 갈등의 파고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터져 나온 사건이라 파장은 더욱 크다. 일부 언론에 보도된 김 회장의 혐의가 안겨준 충격을 별도로 하고 묘한 연결고리로 이어진 일련의 흐름이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는 모양새다. 공교롭게도 김 회장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보도된 22일은 체육회가 체육단체 통합에 관한 최종 입장을 정리하는 임시 대의원총회 개최일이라 이러한 의혹은 상상력의 날개를 달고 다양한 해석을 낳기도 했다.
◇전방위 압박인가?최근 유도판은 쑥대밭이 됐다. 김 회장은 알려진대로 유도계의 대부다. 1995년 대한유도회장을 맡은 이후 4년 임기의 회장을 6차례나 연임했고,한국 유도의 산실인 용인대학교 총장을 5차례나 연임했다. 2년 전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로 닻을 올린 체육개혁의 과정에서 유도는 집중 타깃이 됐다. 최근 김 회장의 직계 제자로 꼽히는 조인철, 안병근 교수(이상 용인대 교수)가 잇따라 비리혐의로 언론에 이름을 오르내린 데 이어 맥주컵 폭행사건으로 낙마한 남종현 전 대한유도회 회장,그리고 김 회장까지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남 전 회장의 돌발적인 폭력 행위를 예외로 한다면 정부와 체육회가 체육단체 통합을 놓고 갈등을 보이는 국면에서 이런 사건들이 터져나온 게 흥미롭다. 일련의 사건들이 ‘유도와 김정행 회장’을 관통하는 묘한 흐름이 있다는 사실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체육단체 통합의 변곡점김 회장은 어찌보면 체육단체 통합의 일등공신(?)이다. 지난 2014년 11월 6일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 통합 합의서에 엘리트체육을 대표해 도장을 찍은 이가 바로 김 회장이다. 제대로 된 절차를 밟거나 엘리트체육의 다양한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면 체육단체 통합은 힘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김 회장은 정부가 이끄는대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랬던 김 회장이 정부와 파열음을 낼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바로 KOC 분리안이 당초 약속과 달리 국회 법안 심사소위원회에서 끼어들어가면서부터다. 정부는 통합이 법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욕심을 부리며 통합 이후에 논의하기로 했던 KOC 분리문제를 통합의 시점인 2017년 2월에 ‘원샷’으로 처리하는 안을 무리하게 밀어붙였다. 이후 김 회장은 엘리트체육계의 쏟아지는 비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통합 논의에서 발을 뺐다. 이후 이기흥 체육회 부회장이 김 회장 대신 통합의 전면에 나서면서 체육회와 정부는 틈이 벌어지게 됐다. 김 회장과 정부가 밀월관계를 유지하다 갈등의 파열음을 낸 변곡점이 바로 그 시기다. 이후 체육회를 향한 정부의 강경 드라이브는 속도를 냈고,엘리트체육계의 비리는 더욱 도드라지게 사회 전면으로 부각되는 기류가 형성됐다.
◇궁지에 몰린 정부KOC 분리안이 빠진 채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점이 생겼다. 합의서와 달리 통합 시점이 2016년 3월로 1년 앞당겨졌다. 정부가 리우올림픽 종료 뒤인 2017년 2월을 통합시점으로 정한 합의정신을 깨면서 또 다시 갈등의 불씨를 제공한 셈이다. 체육회 가맹경기단체는 물론 시도체육회도 “올림픽에 앞서 통합체육회장을 뽑는 처사는 비상식적”이라면서 들고 일어났고,국회에서조차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결국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단체통합을 골자로 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 대표발의자인 안민석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합의정신을 지켜야 한다”며 “통합시점을 원안대로 리우올림픽이후인 2017년 2월로 되돌리는 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한선교,문대성 의원(이상 새누리당)은 물론 박주선 신임 교문위원장마저 이 같은 움직임에 동참하면서 정부만 궁지에 몰렸다. 자칫 통합시점을 고치는 법 개정안이 다시 만들어지게 되면 무리하게 일을 추진한 정부는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향후 전망국회 교문위 소속 여야 의원들조차 조급증으로 일을 그르친 정부에 등을 돌리는 모양새다. 궁지에 몰린 정부는 통합시점을 리우올림픽이후로 연기하자는 체육회를 다양한 방식으로 압박할 가능성이 높지만 여론의 공감대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정부는 ‘법의 준수’라는 상식의 잣대와 함께 체육계의 구조적인 비리문제를 들춰내 통합과정에서 정부의 뜻을 관철시키는 유용한 수단으로 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뜻있는 체육계 인사들은 “(김정행 회장의 혐의를 포함한)비리문제는 통합과 무관하게 엄정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못박았지만 “체육단체 통합은 정부 주도의 강압적 방식이 아니라 체육계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게 원칙”이라고 입을 모았다. 통합 시점을 리우올림픽 이후로 미루는 건 국회를 비롯해 많은 공감대가 확보된 사안인 만큼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는 게 체육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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