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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가수 이승철’과 스포츠서울은 1985년 같은 해 태어났다. 한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도 서봤고, 여러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는 점에서 둘은 닮아있다.
1985년 록밴드 부활의 보컬로 시작한 그의 가수 인생은 첫 팀의 이름처럼 ‘추락’과 ‘부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는 남들 같으면 쉽지 않았을 여러 일을 딛고 “매 앨범이 컴백이자 부활” 이었다며 ‘라이브 황제’, ‘보컬 신’으로 우뚝 섰다.
최근 발매한 12집 앨범 제목 ‘시간 참 빠르다’에 맞춰 이승철의 음악 인생을 그와 함께 시기별 ‘키워드’로 요약-정리해 보았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이승철은 불편한 질문이나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에 맞닥뜨렸을 때도 미소와 여유를 잃지 않았다.
-많은 위기를 겪었는데 그중 자신이 가장 현명하게 대처한 사건-사고는 무엇이었나.힘들면서도 현명하게 대처했다고 생각했던 건 ‘소리쳐’(2006년 발표) 표절 논란이었다. 나는 그 때 이 노래 작곡가가 표절은 안했다고 확신했지만 어떤 각도에서는 표절로 보일 여지가 있었다. 분명 나는 이 노래가 표절 논란에 휘말릴 줄은 모르고 발표했다. 사실 자작곡이 아닌 경우 표절 논란에 휩싸이면 가수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자신이 쓰지도 않았는데 ‘표절가수’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 또 앨범 한장 만들려면 최고 3~4억원까지 쓰는데 그 모든걸 무너뜨릴 수 있는 표절의 위험을 굳이 무릅쓸 이유가 전혀 없다.
표절 논란이 제기됐을 때 가수의 대응 방식이 중요하다 봤다. 표절 논란이 나오자마자 나는 재빨리 원곡 작곡가에게 우리 노래를 보내 평가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공개적으로 원곡자에게 해석해달라고 요청을 시도한 최초의 제작자나 가수가 나라고 하더라. 그 작곡가는 ‘표절은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은연 중에 나올 정도’고 했다. 그래서 원 작곡가에게 어떻게 해줄 지 물으니 공동 작곡가로 해달라고 하더라. ‘소리쳐’ 작곡가가 억울하다고 했지만 나는 합의를 통해 공동 작곡가로 원 작곡가의 이름을 올렸다. 이런 문제는 꼼수가 아니라 정공법이 낫다고 봤고, 잘 대처했다고 생각한다.
-30년간 무수한 사건-사고를 겪었다. 그러면서 이처럼 큰 사랑을 받는 게 우리나라 정서상 흔치는 않은 일인데.가수로서 롱런을 하는 운명은 타고나는 것 같다. 조용필 패티김 등 국민가수라는 칭호를 듣는 분들도 이면에는 무수한 아픔과 시련을 안고 계실 것이다. 위기를 노래로 돌파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를 도와주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같다. ‘오직 너뿐인 나를’이란 노래가 나를 안 찾아왔다면, 지금의 아내가 나를 안 찾아왔다면, 추억 삼아 만든 부활 15주년 앨범 수록곡 ‘네버 엔딩 스토리’가 나를 찾아와주지 않았다면… 가수로서의 운명이란 게 있는 것 같다.
-지금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조언을 하자면.긍정적인 사고가 가장 중요하다. 자포자기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잘못한 부분에 대한 반성은 반드시 해야 한다. 1만 시간의 법칙 처럼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훈련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것들이 긍정적인 마인드와 결합돼야 한다.
-‘가수 하길 잘했구나’ 생각 될 때는.무대에 섰을 때 가장 행복하다. 무대 밖에서는 평범해지려 노력한다. 어떤 것도 의식 안하고 돌아다니는 스타일이다. 인기가 떨어지거나 나중에 늙어서 노래를 부르지 못할 때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수를 안했다면, 혹은 은퇴를 한다면 어떤 직업을 가졌거나 가질까.요리사가 됐을 것 같다. 요리책을 내기도 했다. 창조적인 걸 좋아한다. 그러나 가수에게 ‘은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스타’라는 계급장을 뗐다 붙였다 하는 건 가수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건 팬이 달아준 것이라 내 마음대로 뗄 수 없다. 그러니 은퇴라는 건 말이 안되고, 은퇴 번복도 말이 안된다. 내가 노래 못하게 되는 건 틀니를 껴서 발음이 안된다거나 그런 경우 외에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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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음악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됐을 사람들을 꼽아달라.
우선 (김)태원 형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부활 보컬이 됐던 초창기 그만두려 한 적이 있다. 연습 기간이었는데 부활 다른 멤버들에게 노래를 못한다고 구박을 받아서 힘든 적이 있었다. 그만 둘 마음에 나왔는데 태원 형이 나를 찾아왔다. 형이 떡볶이에 소주를 마시며 내게 용기를 줬던 게 고마웠다.
나와 함께 했던 작곡가들도 고맙다. 내게 정말 좋은 노래를 주고. 작업을 함께 해 이승철의 음악을 만들어준 이들이 많다. 내가 함께 하더라도 작사-작곡-편곡자들 이름을 혼자 올리게 하는 등 그들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 주려 노력해 왔다. 자기가 만든 노래만 부르겠다는 싱어송라이터에 대한 고집은 가수에게는 자기 발목을 잡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한가지 스타일만 나올 우려가 있다. 음악 생명이 단축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섞어서 하는 게 많다.
아내(박현정씨)는 파도 같던 내 삶을 호수 같은 삶으로 바꿔준 고마운 존재다. 큰딸 진, 둘째 딸 원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내게 음악적 도움을 주는 이들이다. 삶에 방향을 주고, 모든 게 깔끔하게 정리되게끔 해주는 이정표다.
선배들 중에서는 고(故) 김현식 선배,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 롤모델이었다. 조용필 선배는 가수로서 인생에서 모두 롤모델이다. 그분은 가수 인생 중 얼마나 많은 일을 겪어왔을까. 그런데 가수로서 가요계를 호령하는 걸 보면 대단하다. 조용필은 이름 석자로 그저 ‘태양’ 같은 존재다.. 저런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가수 이승철의 롱런 비결은.하늘만이 안다.
-언제 시간이 빠르다고 느껴지나.생일 상 받아보기 전엔 모르는데 상차림이 시작되니 느낌이 온다. 우리 둘째 딸(원)이 8살이 돼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걸 보면 시간이 참 빠르다고 느껴지는 거 같다. 음악할 때의 정신적 연령은 늘 똑같은 것 같은데 음악 외적으로는 시간이 빠르다.
-30년후의 이승철을 생각해 본다면.머리가 하얗게 되고, 깊게 주름이 잡혀있는 얼굴을 가지게 되더라도 목소리만은 지금 같으면 좋겠다. 나중에 대학로 같은 곳에 흉상 하나 세울 수 있는 가수가 되고 싶다.
이지석기자 monami153@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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