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프로에서 김재박과 류중일의 성적은 엇비슷하다. 전성기를 지난 나이에 프로에 입단한 ‘타격의 귀재’ 김재박과 공격보다 수비에 강점이 있던 류중일의 특성이 극명히 드러난 때문이다. 그래도 우위를 따지면, 김재박의 판정승 정도 되겠다. 김재박은 1985년 50도루, 1986년 67득점으로 두 차례 타이틀홀더에 올랐다. 류중일은 전대미문의 11연속타수 안타 기록을 작성했지만, 리그에서 타이틀홀더 등극에는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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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박(LG, 앨범)

◇그라운드의 여우 그래도 우승은 했다
사실상 프로 데뷔시즌이던 1983년 김재박은 1, 3, 4, 5번을 오가며 MBC 간판스타로 실업시절의 명성을 이어갔다. 97경기에서 108안타 46타점 34도루 타율 0.290으로 후기리그 우승을 일궈낸 것.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한 해태와 한국시리즈에서 1무 4패로 쓴잔을 마셨지만 ‘노장이라 제 기량을 발휘하겠는가’라는 세간의 의혹을 비웃는 활약을 펼친 것이다. 같은 해 골든글러브를 따낸 김재박은 86년까지 4연속시즌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김재박이 있어도 한국시리즈 우승은 못한다”는 얘기가 나와 김재박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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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감독 시절 김재박

플레잉코치로 신생팀 LG를 맞이한 김재박은 1990년 꿈에 그리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 신생팀 첫 우승이기도 했고, ‘서울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위대한 선수라는 직함을 받은 결정적인 계기였다. 1992시즌을 앞두고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싶어 했던 김재박은 프로야구 사상 초유의 ‘무상 트레이드’로 태평양으로 자리를 옮겨 은퇴할 때까지 11시즌 동안 프로무대를 밟았다. 통산 972안타 321타점 512득점 284도루 타율 0.273의 기록을 남겼다.

프로에서 김재박을 상대해 본 후배 투수들은 “1980년대 후반이면, 은퇴를 생각하실 시기였는데, 당시에도 굉장히 까다로운 타자였다. 단타, 작전수행능력, 장타, 주루플레이 등 타격에 관한 경이적인 기술을 가지신 분”이라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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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시절의 류중일

◇그라운드의 살구꽃 우승 못한 게 한

데뷔 시즌에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차지한 류중일은 공교롭게도 김재박의 5연속시즌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저지한 인물로 남았다. 1990년 120경기에 출장해 132안타(3위) 45타점 70득점(5위) 23도루(4위) 타율 0.311(5위)로 현역생활 중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 류중일은 우승 문턱에서 고배를 마시게 한 해태를 플레이오프에서 일방적으로 누르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김재박과 류중일이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첫 번째 무대였다. 김재박의 5연속시즌 골든글러브 수성을 저지한 류중일은 그러나 우상이자 라이벌이던 김재박의 프로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분루와 함께 지켜봐야 했다.

한국시리즈 우승에 가장 근접했던 시즌이기도 한 1990년 이후로도 류중일은 삼성의 내야를 굳건히 지키며 9시즌을 더 뛰었다. 김용국 강기웅 김성래(이상 삼성 코치) 신경식(LG 코치) 박승호(NC 코치) 양준혁(MBC스포츠+ 해설위원) 이승엽(삼성) 등 기라성 같은 선수들을 진두지휘하는 야전 사령관으로 철벽 내야진의 전통을 세운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동료들은 “수비 하나만 놓고보면, 전성기 시절의 류중일은 김재박보다 한 수 위였다. 위기상황이 되면 의도적으로 유격수 땅볼을 유도할 정도로 투수들에게 신뢰를 주는 유격수”라고 소개했다.

프로 13년 통산 1095경기에 출장해 45홈런 874안타 359타점 475득점 109도루 타율 0.265의 통산 기록을 남기고 1999년 시즌 후 은퇴했다. 류중일은 “현역 때 우승 한 번 못한 게 두고두고 한이 되더라”며 진한 아쉬움을 표했다. 현역 은퇴 후 김재박과 라이벌구도는 시대를 초월해 다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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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의 류중일

◇왕조 구축한 ‘감독’ 김재박과 류중일

사령탑이 된 김재박과 류중일은 우승 청부사로 자리매김하며 ‘스타 플레이어 출신은 명장이 될 수 없다’는 야구계 속설을 비웃었다. 1996년 신생팀 현대 초대 사령탑으로 또 신생팀 인연을 이어간 김재박은 감독 데뷔시즌부터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해 한국시리즈 준우승 위업을 달성했다. 1990년 신생팀 LG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지 6년 만에 다시 신생팀을 최후의 무대까지 이끈 것이다. 1998년 첫 우승을 이끈 뒤 2000년 2003년 2004년 등 통산 네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견인했다. 김재박은 2004년 삼성과 9차전까지 치른 한국시리즈를 ‘가장 기억에 남는 시리즈’라고 회상했다.

2011년 삼성 사령탑에 부임한 류중일은 지난해까지 4연속시즌 통합챔피언(정규시즌, 한국시리즈 동반 우승)을 이끌며 ‘왕조’를 구축했다. 2013년 336경기 만에 200승을 따내 역대 최소경기 감독 200승 기록을 세운 류중일은 지난해 8월 493경기 만에 300승을 달성해 1986년 당시 삼성 김영덕 감독이 작성한 495경기 300승 기록을 두 경기 단축하는 등 감독으로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류 감독은 “현역 시절 우승 한 번 못해 본 한 때문에 우승반지에 대한 염원이 너무 강했다. 코치로 우승해보고, 감독으로 우승해봤지만, 아직 성에 안찬다. 매년 우승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자신감과 자부심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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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유중일 감독이 27일 두산전에 승리하면서 페넌트 레이스 우승을 확정지은 후 환호하는 팬들에게 답례를 하고 있다.잠실|최재원기자shine@sportsseoul.com 2011.09.27

김재박에게 두 번이나 통한의 고배를 마신 류중일은 그와 함께 역대 감독 두 번째 최다인 4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어깨를 나란히 했다. 김재박의 그늘에 가려 ‘2인자’로 여겨졌던 류중일은 여전히 우승을 노리며 삼성을 지휘하고 있다. 다섯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날, 류중일은 처음으로 김재박보다 위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장강훈기자 zzang@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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