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_420556
천안 우정힐스 컨트리클렙에서 펼쳐진 한국오픈에서 안병훈이 티샷을 하고 있다. <천안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2009.9.11

승부세계에서 단련된 직감은 무섭다. 유럽프로골프투어의 메이저대회로 불리는 BMW PGA챔피언십 정상에 오른 안병훈(24)의 아버지인 안재형(50) 탁구 남자대표팀 코치의 눈은 정확했다. 8년간 ‘골프 대디’로 물설고 낯선 이국 땅에서 아들과 함께 생활했던 그는 지난 3월 마침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탁구계로 돌아와 남자대표팀 코치로 부임한 그는 당시 복귀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제 아들이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시점이 됐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결국 아버지의 직감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태릉선수촌에서 생활하는 안 코치는 아들 병훈의 우승 소식이 알려진 25일 오전부터 축하 인사를 받느라 바빴다. 이날도 어김없이 탁구 대표팀을 지도하느라 구슬땀을 흘린 안 코치는 “우승직후 아들과 통화했는데 글쎄 그 녀석이 ‘이제 아버지만 잘 하면 된다’고 하네요”라며 싱긋 웃었다. 다음은 안 코치와 일문일답.

-아버지의 직감대로 마침내 아들이 홀로서기를 한 것 같은데.
이렇게 빨리 우승할 줄은 몰랐다. 아버지의 얼굴을 세워주려고 힘을 냈나? 경기내용도 좋아 기분이 너무 좋다. 오늘 새벽에 TV를 통해 아들의 우승을 지켜본 뒤 ‘카카오톡’으로 문자 메세지를 보냈다. “우승을 축하하고 (너 같은 아들을 둬서)고맙다”고 격려한 뒤 “멋진 경기로 우승한 만큼 챔피언으로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아버지의 뿌듯한 마음도 전해줬다.
-‘골프 대디’로 힘들었을 때는.
공이 잘 안맞아 슬럼프에 빠진 얘를 옆에서 지켜보는 아버지의 심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을 잘 모를 것이다. 저 또한 경기인 출신이라 아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줄까봐 될 수 있는대로 기술적인 부문에선 터치를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들이 골프에 자질이 있었는가.
가능성을 보고 골프를 시킨 게 아니라 7세 때 나를 따라다니며 취미로 골프를 시작했다. 골프 유학은 중학교 2학년 때 주변환경이 좋은 미국 플로리다로 떠나게 됐다.
-아버지가 8년만에 탁구 지도자로 복귀하자마자 아들도 우승을 차지했는데.
거짓말처럼 겹경사가 생겼다. 유럽 2부투어에서 3년간 뛰다가 올해 1부투어에 올라오면서 ‘이제 혼자서도 되겠다’고 판단한 뒤 나 또한 탁구계 복귀를 맘 먹었다. 아들이 우승했으니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될 일만 남았다. 나도 분발해 남자 탁구의 부활을 이끌고 싶다.
-아들의 우승은 언제 예감했나.
맘을 졸이며 새벽까지 TV를 계속 시청했다. 12번 홀(파5) 이글로 멀찍이 달아나기는 했지만 17번 홀(파5) 버디를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우승을 예감했다. 아버지의 마음은 그런 모양이다.
-골퍼로서 아들의 장점과 보완해야 할 점을 꼽는다면.
장점은 역시 비거리가 아닐까 싶다. 드라이버 평균 거리가 300야드를 훌쩍 넘기는 장타는 골퍼로서 유리할 수밖에 없다. 다만 병훈이가 멘털적으로는 좀 약하다는 게 아버지의 냉정한 판단이다. 기술적인 부문은 잘 언급하지 않지만 경기인 출신으로서 아들에게 “정신적으로 좀 더 강해지라”고 늘 주문하고 있다.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 중 누굴 닮은 것 같나.
당연히 둘 다 닮지 않았겠느냐(웃음).
-탁구를 시킬 걸 후회한 적은 없나.
요즘도 체중을 줄일 요량으로 병훈이와 가끔 탁구를 치는데 그건 영 아닌 것 같다. 몸이 너무 둔해 탁구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골프를 택한 건 정말로 잘한 것 같다.
-부모님이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라 부담감 같은 것도 있을 법한데.
다행스럽게 아빠 엄마가 운동을 어느정도 잘 했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적어도 아들한테 우리 부부의 존재가 부담이 됐다고는 보지 않는다.
-아들의 우승이 아버지에게도 큰 자극이 될 법한데.
전화통화에서도 벌써 부담감을 ‘팍팍’ 주고 있다. 오랫동안 현장을 떠나 있다가 국가대표팀 코치로 복귀해보니 한국 탁구가 많이 침체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경기력을 떠나 자신감이 많이 결여돼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정신적으로 강해지지 않으면 한국 특유의 색깔있는 탁구가 발휘되기 힘들다.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기 위해선 한국 탁구의 부활을 이끄는 수밖에 없다.
고진현기자 jhkoh@sportsseoul.com

기사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