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올림픽 본선은 한국 축구를 세계에 처음으로 알린 무대였다. 1948 런던 올림픽 본선에서 한국은 멕시코를 5-3으로 따돌리는 이변을 일으키고 8강에 올라 화제가 됐다. 월드컵 첫 진출이 1954년 스위스 대회에서 이뤄졌으나 한국 축구는 그보다 6년 빠르게 올림픽 본선 경기장을 밟은 셈이었다. 1964년(도쿄) 1988년(서울) 1992년(바르셀로나) 1996년(애틀랜타) 2000년(시드니) 2004년(아테네) 2008년(베이징) 2012년(런던)까지 한국은 올림픽 본선에 총 9차례 얼굴을 내밀어 한 차례 동메달과 두 차례 8강 성적을 냈다.
흥미로운 점은 외국인이었던 1996년 아나톨리 비쇼베츠(우크라이나) 감독을 제외한 나머지 8개 대회 감독이 모두 ‘축구 양대 명문’으로 불리는 연세대와 고려대 출신이었다는 것이다. 1948 런던 올림픽 감독은 지금 ‘이영민 타격상’으로 야구계에서 더 유명한 이영민 감독이었다. 연세대 전신 연희전문학교 출신 이 감독은 당시 조선야구협회 사찰단 자격으로 런던에 갔으나 경.평축구에 서울 대표로 나서는 등 축구 실력도 걸출했다. 당시 축구대표팀 내분을 수습하기 위해 지휘봉을 얼떨결에 잡고 멕시코전 승리까지 이끌었다. 두 번째 출전인 도쿄 올림픽 때 사령탑도 연희전문학교를 나온 정국진 감독. 24년 만에 다시 출전한 서울 올림픽에선 고려대 출신 김정남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김삼락(1992년.연세대) 허정무(2000년.연세대) 김호곤(2004년.연세대) 박성화(2008년.고려대) 홍명보(2012년.고려대) 등 이후에도 공교롭게 연.고대를 나온 이른 바 ‘주류’들이 올림픽 무대에서 지도력을 발휘했다.
그런 면에서 신태용 신임 올림픽대표팀 감독 부임은 의미가 깊다. 대구 영남대 출신인 그가 내년 여름 리우 올림픽 본선에 나설 경우, 연.고대를 나오지 않은 ‘비주류’ 축구인이 처음으로 올림픽 본선 벤치에 앉기 때문이다. 그는 17세부터 각급 대표를 거치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으나 때때로 ‘비쥬류’의 아쉬움을 곱씹기도 했다. 이를 이겨내기 위해 실력을 키웠고, 은퇴 뒤 K리그 성남 감독으로서 아시아챔피언스리그 및 FA컵 우승을 챙겼다. 그리고 이번에 올림픽대표팀 감독직에 올랐다. 신 감독은 “당면 목표는 일단 내년 7월 리우 올림픽 본선행”이라고 했다. 그의 도전이 또 다른 각도로 조명받을 수 있는 이유다.
김현기기자 silva@sportsseoul.com
기사추천
1
![[SS포토]올림픽대표팀의 새 사령탑, 신태용 감독](https://file.sportsseoul.com/news/legacy/wyzmob/timg/l/20150210/l_201502100100055160003429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