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경험이 없으니 국회를 안고 가는 일이 가장 큰 난관이 될 것”
전직 대통령으로서 최소한 책임을 인정하는 그 한마디... “내 탓이요”

[스포츠서울 | 글·사진 이상배 전문기자] “전무님! 지금 계엄이 선포됐는데 어디 계세요?” “뭐라고? 계엄이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1년 전, 12월 3일 밤 10시 반 편집국장의 다급한 전화가 단잠을 깨웠다. 지인과의 저녁 식사에 곁들인 반주로 일찍 눕던 참이다. 전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마침 거실 TV가 켜져 있어 화면을 보니 속보가 이어지고 있었다. TV 화면 속 국회 장면이 어슴푸레 겹쳐 보였다.
“지금 당장 가야 한다!”
계엄 하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두꺼운 옷을 챙겨입고 다급히 택시에 올라 국회로 향했다. 정문은 이미 폐쇄됐고, 담장 주변에는 촘촘한 경찰 감시망이 처져 있었다.

국회 외곽을 반바퀴 정도 돌아 후문 근처 담장을 넘어 들어서자 헬기를 이용 국회 운동장으로 강습한 계엄군이 본청 쪽으로 이동하는 장면과 마주했다. 계엄군의 동향을 살피다 필자는 본회의장과 로텐더홀을 오가며 그 밤을 꼬박 새웠다. 상상을 초월한 불법계엄의 현장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 기록을 남긴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필자는 尹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칼럼에 이렇게 쓴 바 있다.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쉽게 대통령이 되었으니, 대통령직만큼은 가장 어렵게 수행해야 한다” 또한, “의정 경험이 없으니 국회를 안고 가는 일이 가장 큰 난관이 될 것”이라며, “자세를 낮추고 국회와 원만히 소통해야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드러난 내란 특검팀 공소장 내용을 보면, 대통령 취임 불과 반년이 지난 시점부터 이미 ‘비상대권’을 운운하며 “내가 총살당하더라도 싹 쓸어버리겠다”라는 식의 발언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뿐만 아니라 ‘23년 가을 강서구청장 재·보궐 선거, ’24년 봄 22대 총선 참패의 원인분석과 향후 대비보다는 여소야대 난국 해법으로 ‘비상대권’을 떠올렸다는 수사 기록도 공개되고 있다.
지난해 ‘12·3 불법계엄’은 국내를 넘어 외신까지 송두리째 흔들었다. 주변국은 “민주주의의 퇴보”라며 우려와 조롱을 동시에 보냈고, 사회 불안과 경제적 손실은 깊어졌다.
무엇보다 아무 생각 없이 투입됐던 장병들이 겪는 트라우마와 정신적 피해에 대해 책임지는 당사자가 없다는 사실이 더욱 참담할 따름이다.

재판 과정에서 관련자들의 증언을 듣노라면 실망과 개탄이 커져만 간다. 증언을 회피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은 더욱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차라리 아무런 기억도 없다고 하는 편이 나을 만큼 답답하다.
지난달 말경 한국갤럽이 발표한 ‘전직 대통령 개별 공과 평가’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잘했다는 평가’는 68%로 1위를 차지했고, 박정희·김대중 대통령이 뒤를 이었다.
그런데 尹 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보다도 낮은 12%로 역대 최악의 평가를 받았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대통령의 평가는 국정·의정 관록, 헌법수호 의지, 통찰과 추진력, 포용과 화합이 결합될 때 비로소 국정의 시너지가 발휘됨을 보여주는 결과다.
필자는 ‘12·3 불법계엄’의 밤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본 사람 중 하나다. 본청 입구의 아수라장이며, 국회 정문 앞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분노와 놀라움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누가 뭐라 해도 불법의 현장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12·3 불법계엄’선포 9일 후, 尹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탄핵이든 수사이든 당당하게 맞서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모습이 과연 그 ‘당당함’과 일치하는가?
국민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어렵지 않다... “내 탓이요.”
전직 대통령으로서 최소한 책임을 인정하는 그 한마디가, 지금의 12%를 조금이나마 바꿔놓을 수 있는 시작일지도 모른다.

sangbae0302@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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