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지나온 시간과 쌓아온 내공이 지금의 김유정을 만들었다면, 티빙 오리지널 ‘친애하는 X’는 그 거대한 궤적을 증명하는 최신 좌표다.

화면 속 김유정은 더 이상 ‘성인 배우로 성장한 아역 스타’라는 익숙한 말로 규정되지 않는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캐릭터의 뼛속까지 파고든다. 정교한 표현력으로 ‘김유정이라는 배우’를 새롭게 다시 쓰고 있다.

김유정이 연기한 백아진은 타고난 아름다움과 뛰어난 연기 재능으로 ‘정상’을 목표로 직진하는 신예 배우다. 겉으로는 밝고 사교적인 에너지를 지닌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반사회적 성향의 인물이다.

사람의 감정·관계·신뢰를 ‘서사적인 가치’로 보지 않는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이자 변수로 판단한다. 주변 인물이 자신에게 어떤 이익을 줄 수 있는지 먼저 계산한다. 결과가 불리하면 관계를 끊는 데도 주저가 없다.

백아진은 작품 초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했던 인물에게 억지스러운 사과를 받게 되는 상황을 맞는다. 사과는 갈등을 봉합하려는 진심이 아니라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형식적 행동에 가깝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김유정은 소시오패스적 성향을 어떻게 연기할지에 대한 해석을 명확히 보여준다.

상대의 사과를 들은 백아진은 처음부터 화를 내지 않는다. 먼저 상대의 표정과 눈빛을 분석하듯 천천히 살피고, 입술을 굳게 다물어 표정의 힘을 미세하게 조절한다.

라이벌 레나와의 대치 장면에서는 소시오패스적 성향을 가진 인물이 ‘상대의 감정’을 어떻게 계산하는지를 보여준다. 레나가 감정적으로 흔들리며 공격적인 말투를 보이자, 김유정은 오히려 움직임을 더 줄인다.

어깨의 각도·눈동자의 높이·말 속도 모두 일정하게 유지되며, 상대가 크게 흔들릴수록 백아진의 정적은 더 단단해진다. 이는 공포나 경계가 아닌 ‘지켜볼 가치가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는 방식이다.

김유정은 말이 아닌 시선의 밀도로 이를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상대가 말을 멈추는 순간 그제야 아주 약하게 고개를 기울이는데, 이 짧은 동작만으로도 백아진의 우위가 명확히 드러난다.

이러한 활약은 ‘친애하는 X’에서 갑자기 나타난 기량이 아니다. 김유정은 데뷔 초부터 한 장르에 머무르지 않았다. 감정의 깊이와 결이 다른 캐릭터들을 선택하며 스스로의 스펙트럼을 넓혀 왔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외모 중심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서사 중심의 인물을 꾸준히 택했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의 따뜻한 청춘, ‘홍천기’의 강단 있는 화공, ‘마이 데몬’의 냉정한 재벌 상속녀까지 각각의 작품에서 다른 감정의 온도와 서사를 보여주며 자신만의 결을 쌓아왔다.

이번 ‘친애하는 X’는 그가 쌓아온 선택의 역사가 하나의 방향으로 모인 작품이다. 단순한 이미지 변신이 아니라, 감정의 구조·서사의 밀도·인물의 심리까지 전부 배우의 언어로 재해석한 결과물이다.

장면마다 감정을 설계하는 방식, 의도적으로 비워두는 표정의 질감, 상대 감정을 읽고 활용하는 리듬 모두는 김유정이 예측 가능한 배우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음을 보여준다.

‘친애하는 X’는 김유정이 앞으로 어떤 서사를 선택하든, 그 서사 안에서 또 다른 얼굴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강화하는 작품이다.

그간 매 작품마다 새로운 결을 보여줘 온 김유정이 앞으로 어떤 장르와 캐릭터로 또 한 번 변신을 감행할지, 기대할 수밖에 없다. khd998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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