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우걱우걱 초콜릿만 씹는다. 다른 건 입에도 못 댄다. 고기 한 점만 먹어도 위가 뒤집히기 때문이다. 이가 썩어들어가도 어쩔 수 없다. 이가 썩는 게 죽는 것보다 나으니까. 어쩌면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교통사고로 남편과 자식을 잃은 연희(임채영 분)의 삶은 지금도 앞으로도 희망이 없다. 고기 공장 에이스지만, 버는 족족 사채업자들에게 뺏겨서다. 생활비는 대리운전으로 감당한다.

삶의 유일한 낙이 치과의사 서진(김선혁 분)에게 받는 진료다. 다정다감하게 챙겨주는 서진을 흠모한다. 서진은 죽은 남편의 친구다. 아내도 있고 자신에게 관심도 없지만, 유일하게 치과를 가는 것이 행복이다. 이가 썩어가는 건 그래서 꼭 나쁜 일이 아니다. 점점 서진에게 빠져들어갈 때쯤, 우연히 남편의 죽음과 연관된 비밀을 알게 된다. 그리고 돌변한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양지은 감독의 연출작 ‘초콜릿’의 대략적인 얼개다. 희망도 미래도 없는 한 여성의 뒤틀린 사랑을 그린다. 연희를 중심으로 연희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광기와 독기, 오묘한 유머, 생각하게 만드는 연출 등 거칠고 투박한 맛이 달콤쌉싸름하게 담겨 있다. 저예산 영화임에도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

특히 연희 역의 임채영의 연기가 독보적이다. 인간의 모든 감정을 온 몸으로 전한다. 그 안에 광기와 처연함이 묻어있다. 감정을 내뿜을 만한 상황에서도 철저하게 절제된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선다. 그 공백을 관객이 상상으로 채우게끔 한다. 건조하고 무표정한 얼굴,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더 큰 감정을 만든다. 중간중간 표정만으로도 큰 웃음을 만든다.

20대 여배우가 감당하기엔 매우 난이도가 높다. 감정의 기복도 크며 촬영 전반적으로 환경이 썩 좋지 않다는 게 느껴짐에도 여러 난관을 다 이겨냈다. 다소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조차도 묘한 매력과 개인기로 뚫어냈다. 기획 의도가 뚜렷한 감독의 편집과 센스 덕분이겠지만, 배우의 역량도 무시할 수 없다.

주제의식은 심리학적으로 접근했다. 부러운 타인의 인생을 무참히 박살낸 뒤 비로소 자신은 삶은 정상화가 된다는 내용이다. 옳고 그름과 무관하게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날 것 그대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독립영화의 맛이 살아있다.

1억원 가량 되는 제작비로 만든 작품이다. 원하는 것을 모두 찍기는 커녕 없는 살림에 최대한 이어붙여 분량을 만들기도 어려운 수준인 셈이다. 그런데도 이야기가 물 흐르듯이 이어질 뿐 아니라 원하는 주제의식도 최대한 담았다. 조금 더 예산이 여유가 있었다면 더 높은 완성도를 보였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양지은 감독의 연출력이 극히 발화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면 아쉽다.

영화는 카메라를 쳐다보는 연희의 광기 서린 미소로 끝난다. 타인의 것을 탐하고 모든 것을 얻어낸 뒤 신난다는 듯 웃는 미소가 소름끼친다. 차갑게 혀끝에 닿아 묘한 풍미를 일으키는 육회와 닮았다. 날 것의 광기, 초콜릿처럼 씹어먹을만 하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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